1. 곰브리치의 <세계사>를 읽게 됐는데,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 책을 쓴 작가 곰브리치는 독일어로 최초 원고를 작성했다. 이후에 세계 각 언어로 번역이 됐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단 한 가지의 언어, 영어로는 번역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영어 번역을 해야 한다면 원작자인 곰브리치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고 고집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 번역에 대한 신념이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2. 최근 고전문학을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비문학을 선호하던 나에게 문학, 그것도 고전 문학은 왠지 박물관에 전시되어 *만지지 마시오*같은 경고문이 붙어있는 멋지고 고상하지만 그저 지나치게 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풍경화 같은 느낌이다. 한마디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분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스 핸디의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책에서 톨스토이(를 비롯한 위대한 고전과 역사)를 꼭 읽어보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시대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대가들은 늘 고전 읽기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때문에 직접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안나 카레니나>를 찾아보게 된 것이다. 과연 이 작품은 위대한 고전이 맞나 보다. 많은 출판사에서 다양한 번역본을 출판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여러 버전의 <안나 카레니나>를 비교할 수 있었다. (직접 찾아본 버전만 절판된 것까지 6종이다.) 이렇게 같은 내용을 여러 다른 버전으로 보게 되니 번역의 중요성이 한층 더 크게 느껴졌다.
3.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워낙 강렬하기에 이 소설을 알기 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정말 재밌게도 각 출판사의 번역본마다 스타일이 확연하게 달랐다. 분명 같은 내용이고 같은 뜻인데 사용하는 어휘, 문체 모든 것이 달랐다.
이쯤 되니 내가 고른 책은 톨스토이의 글인지, 각 출판사의 번역가의 글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글이란 게 단어 하나에 따라서도 문체가 바뀌고 문장 구조가 바뀌는 미묘한 세계 아니던가. 이렇게 생각하니 곰브리치가 영문 번역을 직접 하겠다며 고집한 이유가 납득이 된다.
4. 한글 번역된 외국 서적의 리뷰에는 늘 '번역이 이상해요.'라는 내용이 있다. 정말 그 번역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원서와 번역문을 직접 비교할 수 없다면 번역만의 잘못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의 수필집들은 하루키의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알고 보면 나는 하루키를 읽어본 적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었던 하루키의 책들은 하루키의 리메이크 '맛' 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