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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나보다 먼저 아는 것들』

메를로퐁티와 감각의 철학| 문학과 철학의 밤 산책 – 한 그루의 밤

by lala

『내 몸이 나보다 먼저 아는 것들』 – 메를로퐁티와 감각의 철학


우리는 때때로 생각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누군가의 낯선 시선 앞에 어깨가 움츠러들고, 어린 시절 다쳤던 놀이터 근처를 지날 때 손에 식은땀이 맺힌다. 감정은 늘 말보다 앞서며, 기억은 머리가 아닌 몸을 먼저 찾아간다. 그런 순간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된다. ‘아, 내가 아직 이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구나.’


프랑스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그런 몸의 반응에 철학적 가치를 부여한 인물이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이성이나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우리는 지각을 통해, 몸의 감각을 통해, 세계와 맞닿아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인식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지각의 현상학』에서 그는 지각이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태도라고 말한다.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보기 이전에 이미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살고 있으며, 그 ‘살’의 감각 속에서 존재를 구성하고 있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살(flesh)’은 단지 피부나 근육의 덩어리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와 세계가 서로 만나는 지점이며, 보이는 자이자 동시에 보여지는 자, 만지는 자이자 동시에 만져지는 자로서의 인간을 구성한다. 이 개념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객관적 인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소 모호하고 감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메를로퐁티는 그런 모호함 속에서 진실의 틈을 발견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감지되는 어떤 진동. 그것은 실존적인 무게를 지닌 채, 우리의 몸에 스며든다.


문학은 이 감각의 철학과 깊은 친연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쥐스킨트의 『향수』에서 주인공 그루누이는 후각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는 냄새를 말보다 앞선 진실로 여긴다. 어떤 냄새는 유년기의 상처를 되살리고, 어떤 냄새는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문학 속 인물들이 감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메를로퐁티가 말한 ‘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루누이처럼 우리 역시 감각의 층위를 따라 세계를 해석하며, 때로는 말보다 더 정확한 방식으로 존재를 느낀다.


이러한 철학은 실존의 문제로도 확장된다. 우리는 몸을 통해 기쁨을 느끼고 슬픔을 겪으며, 존재의 고통을 감각한다.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흐르고,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위장이 조여오며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난다. 감정은 머리보다 몸에 먼저 각인되며, 그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그런 감정의 이력들을 정당한 인식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지각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정의 호흡이며, 우리의 존재 그 자체다.


세상은 점점 더 말과 논리, 이미지로 포장된 표면 위에서 작동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너머에서 여전히 몸은 세계와 만나는 가장 민감한 창구다. 누군가의 말보다 먼저 그 말의 의도를 읽어내는 눈빛, 어떤 공간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싸한 기운, 그리고 익숙한 향기 앞에서 터져나오는 눈물. 그런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감각의 중심, 살아 있는 몸으로서의 나 자신을 다시 만난다.


메를로퐁티는 말한다. “몸은 나의 중심이며, 나는 내 몸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는다.” 존재란 머리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감각으로 존재하고, 몸으로 세계를 읽으며, 감정으로 기억한다. 오늘 하루, 당신의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길 바란다. 논리보다 감각이, 말보다 떨림이 먼저 오는 그 순간, 당신은 분명 살아 있는 존재다.


� 매일 밤, 문학과 철학의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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