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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건 축복일까 고통일까』

한그루의 밤 ep.24

by lala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일까, 고통일까. 산책을 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삶은 너무 자주 어긋난다. 조금 나아질 만하면 다시 엉켜버리고, 아무 일도 없던 하루조차도 마음 어딘가엔 잔잔한 슬픔이 고여 있다. 내게 있어 삶은 축복이라기보다 더 자주 고통과 부조리로 채워진다. 불현듯 마주친 날씨처럼, 어떤 날은 유난히 선명한 슬픔이 내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 모든 시간이 지나간 후, 우리는 다른 차원에 닿게 될 거라고. 이 생의 유한함 너머에 어떤 흐름이 있다고, 나를 잊지 않은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그 존재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지만, 한 번도 멀어진 적이 없는 듯한 느낌으로 내 옆을 지킨다. 그래서 지금을 사는 이유는, 이 짧은 소풍 동안 내가 찾은 몇 편의 아름다움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꽃이 져도 다시 피듯, 어둠 속에서도 분명히 빛나는 찰나가 있다. 나는 그 찰나를 기억하고 싶다.


삶의 본질을 ‘고통’이라 말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이렇게 썼다. “삶은 끝없는 갈망이고, 충족은 또 다른 결핍으로 이어진다. 만족은 고통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는 인간 존재가 본래 괴로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욕망이 있는 한 고통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의미는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가는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에밀리 디킨슨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생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통이 내재된 삶 속에서도 경이로움을 발견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그녀의 시구 “그녀는 천국을 하늘에 숨겨두고, 땅에는 불안을 가득 남겼다”는 말처럼, 삶은 고요한 고통 위에 놓인 눈부신 장면이기도 하다. 슬픔과 아름다움이 늘 함께 있고, 그 교차점에서 우리는 때로 시인이 되고, 때로 사랑하는 존재가 된다.


살아 있다는 건, 축복과 고통이 엉켜 있는 상태다. 그것은 절대적인 환희도, 완전한 절망도 아니다. 우리는 매일 작은 찰나 속에서 둘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어떤 한순간을 마음에 품는다.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 아무 말 없이 내민 손,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 그 순간들이 우리를 버티게 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언젠가, 아주 먼 자리에서 꺼내어 고백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은 그저, 내가 찾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 중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누군가에게 그것들을 조용히 건네고 싶어서. 내게 이 삶은 짐이자 축복이며, 동시에 견디는 방식이다. 고통은 생각보다 오래 남지만, 아름다움은 그보다 오래 기억된다. 그렇다면 이 생은, 그 기억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 매일 밤, 문학과 철학의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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