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의 밤 ep.29
‘권태’라는 감정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바쁘기 때문에 더 자주 떠오르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바쁜데도 허무하고,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 무기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권태를 단순히 심심함이나 나태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는 권태를 “현재 우리의 위치에 대한 현기증에서 비롯된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 말은, 우리가 단지 게을러서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자극 속에서 방향을 잃었기 때문에 권태를 느낀다는 뜻이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연결을 요구한다. SNS의 피드는 쉴 새 없이 업데이트되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 끝없는 콘텐츠를 권유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감각보다 타인의 속도에 휘둘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할까' 자책한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게으른 걸까, 아니면 너무 과하게 움직여서 무감각해진 걸까?
쌍소는 우리에게 '기분 좋게 하품할 수 있는 권태', '행복하게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권태'를 권한다. 즉, 권태는 우리가 인생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리듬이자, 숨 고르기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이 말은 익숙한 듯하지만, 언제 들어도 새롭다. 시간은 흘러가고, 존재는 매 순간 변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쌍소는우리의 주치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한다. “당신은 매일 같은 셈에서 같은 물을 길러 마십시오.” 그의 말은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다름’을 발견하라는 철학적 권유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매일 같은 산책길, 같은 커피잔, 같은 풍경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감각이 피어나는 순간들. 어제는 보이지 않던 나무 그림자가, 오늘은 유독 눈에 들어오고, 비슷한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이 전혀 다른 마음으로 다가오는 날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감각은 언제나 느린 속도 속에서 피어난다. 사실 나는 예전에는 권태를 두려워했다. 할 일이 없을 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무엇보다도 ‘이러다 도태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늘 따라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낸 후에야 깨달았다. 가장 솔직한 내 감정은 권태가 아니라, 무리하게 만들어진 ‘열심’에 지쳐 있었다는 사실을. 그 이후 나는 권태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단 열 분만이라도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 의미 없는 산책을 하며 발끝에 쌓인 흙을 관찰하는 시간,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감각을 회복하는 권태의 시간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느슨해져도 좋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성취가 아니라, 더 깊은 감각이다. 권태는 어쩌면 나에게 감각을 되찾으라고 속삭이는 작은 신호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져 있다면,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쫓아내려 애쓰기보다, 가만히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권태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온 내면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권태는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이고, 침잠이며, 다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일 수 있다.
언제나 분주하고 치열한 당신에게, 오늘만큼은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조금 지루해도 괜찮다고. 아무 일 없는 날이 오히려 가장 특별한 날일 수 있다고.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삶은 가장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하니까.
� 매일 밤, 문학과 철학의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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