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의 밤 ep.33
"세상은 나의 표상이다."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한 것을 뇌에서 인지하는 것은 사물의 실재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눈 앞에 있는 나무를 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무가 아니라 내 뇌가 해석한 나무, 즉 나에게 나타난 나무라는 것. 이것을 그는 표상이라고 부른다.
이 말을 들으면 무라카미하루키의 소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이 생각난다. 한 세계에서는 데이터 분해가로 존재하고 다른 세계에서는 '나'의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두 세계는 하나의 자아 속에서 갈라진 두 개의 표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세계의 끝에는 자아의 고요한 침묵이 놓여 있다. 또한, 영화 <트루먼 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트루먼이 살아온 세상은 거대한 세트장이고 그가 진실을 마주한 순간은 표상의 틀을 깨고 '자신만의 의지'로 나아가는 순간인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세계가 표상이라면 도대체 그 배후에서 우리를 추동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쇼펜하우어는 그것이 바로 '의지'라고 말한다. 목적과 도덕적 가치와도 무관한 맹목적인 생의 추동. 그는 그것을 의지라고 보았다.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서 끊임없이 욕망하며 그 욕망은 끝이 없다는 데 우리의 좌절이 있다. 충족은 더 큰 결핍의 문을 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그렇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고통 속에 살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이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방법으로 일시적이더라도 예술과 철학에 힘이 있다고 말하며 금욕과 고요한 삶을 통해 의지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단순한 현실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인 자기 존재의 존엄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방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길을 걸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삶은 끊임없는 결핍의 연속이고 우리는 욕망과 좌절을 반복하며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고통은 늘 우리의 삶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거울을 마주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의 나를 반추하며 끝없이 욕망을 비워내는 일. 그리고 삶의 순간마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가까이하며 무위를 누리는 것. 그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고통에서 좀 더 느슨해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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