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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꺼내려다 목이 멜 때”

한 그루의 밤 ep.32

by lala

우리는 종종 진심을 말하려다가, 끝내 입을 다물고 만다. 목이 메고, 말끝이 흐려지고,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겠다 싶은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의 문장을 따라, 그런 ‘말’의 감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위선적인 학자들처럼 겉멋 부리는 말, 상투적인 문장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자고 말한다. 완벽한 문장 하나를 고심하는 대신, 불완전한 감정의 조각이라도 내어놓는 것이 더 낫다고. 말을 너무 조심하면, 말은 오히려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진실을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어렵고, 때론 위험하다. 쌍소는 그래서 이런 문장을 남긴다. “친구의 실수를 증명하려 하지 말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라. ‘네가 착각한 거야’ 혹은 ‘네가 맞을지도 몰라.’” 이 짧은 말에는 언어의 무게와 진심의 방향이 모두 담겨 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와 의견이 다르면, 옳고 그름을 가리려 한다. 논리로 이기고 싶고, 내 말이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쌍소는 증명하려 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내가 옳다는 것을 말하려 애쓰기보다, 내가 느낀 것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말이 더 진실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내게 상처를 줬을 때, 우리는 흔히 분노하거나 침묵한다. 하지만 쌍소는 그 중간에 머물라고 한다. “당신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어.” 이 말은 결코 세련된 말은 아니지만, 그 안에는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 담겨 있다. 우리는 너무 말을 잘하고 싶어 한다. 말을 고르고, 정리하고, 완성된 문장을 찾다가 결국 말을 미뤄버린다. 쌍소는 그런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와 말한다. 말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말이 진실하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고.


그는 말의 본질이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에 있다고 본다. 그 움직임은 언제나 조금 불편하고, 조금 부끄럽고, 때론 무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를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진흙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진흙은, 우리 안의 혼탁함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심으로 말하려 할 때, 떠오르는 것은 찬란한 진실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은 감정들, 얽히고설킨 말의 덩어리들이다. 때로는 부끄러움이고, 말끝을 흐리게 만들고, 차라리 침묵하게 만드는 고요다. 그러나 쌍소는 그 진흙을 밀어 올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말은 진흙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라도 자신을 말하려는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오늘 밤, 말을 미루고 있던 감정이 있다면, 조금씩 소리 내어 말해보자. “사실 나는 그 말이 서운했어.” “그때 나는 외로웠어.”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계속 생각나.” “나는 틀릴지도 몰라, 그래도 말하고 싶어.” 이런 문장들은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의 존재를 증명한다. 말은 문장의 완성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말하려는 진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말하려다 삼켰던 감정이 있다면, 오늘 밤은 용기 내어 꺼내보자. 그 말의 어눌함마저 당신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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