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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울고 난 뒤,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한 그루의 밤 ep.31

by lala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느리게 사는 것’은 단순한 여유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인지도 모른다.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말한다. 빠르게 반응하려 애쓰는 대신, 인내하며 바라보는 태도 속에서야 비로소 진실은 자신을 드러낸다고. 이 문장을 읽고 나는 눈물이 다 마른 후의 얼굴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억지로 붙들지 않고, 어떤 감정도 밀쳐내지 않은 채, 그냥 끝까지 울고 난 다음 찾아오는 그 고요함 말이다. 마치 감정의 껍질이 벗겨지고 나서야 드러나는 투명한 본심처럼, 그런 순간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생긴다.

쌍소는 고요한 시간을 회복하지 못한 시대의 권태를 지적한다. 그는 권태를 단순한 무기력이나 나태함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권태는 지나친 자극과 과잉된 정보로 인해 ‘지금-여기’를 상실해버린 상태라고 말한다.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 언제나 무언가를 확인해야 하고, 반응해야 하며, 대답해야 한다. 그렇게 반응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스스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렇게 삶에서 밀려난 감정들은 조용한 불만과 권태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쌍소는 그 권태조차 우리가 다시 삶과 마주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말한다.

릴케는 “우리는 감정의 유예를 통해 비로소 감정의 본질에 도달한다”고 적었다. 감정은 즉각 반응하기보다 기다려야 보이는 것이 있고, 삶 또한 마찬가지다. 뭔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아도, 빠르게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낄 때, 오히려 더 깊이 통찰할 수 있다. 다 울고 난 뒤 고요 속에서 오는 자각처럼, 삶의 진실도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우리 곁을 지나간다. 한나 아렌트 역시 말했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 세계는 사라진다.” 즉, 고요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과 세계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존재로 다가온다.

나는 이제 그 고요함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조용히 기다릴 수 있는 사람, 빠르게 반응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가 빠르게 답하지 않아도, 결론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이 진실에 더 가까워지는 법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 느린 삶의 속도를 선택하고 싶다. 오늘도 내 감정의 끝을 지나 고요에 닿기까지, 기다려보려 한다.


� 매일 밤, 문학과 철학의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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