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철학의 밤 산책
살다 보면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지,
무언가에 뒤처진 채 멈춰 있는 기분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주변을 둘러보면
나만 뒤편에 서 있는 것 같고,
무대의 조명은 나를 피해 지나가는 듯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주
조용히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별볼일 없을까."
"도대체 나는 뭐지?"
자기비하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면 깊숙한 곳부터 천천히 무너뜨립니다.
잘해도 소용없고, 애써도 소용없고,
어차피 안 되는 사람이라고 결론짓게 만듭니다.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그러한 자기비하의 감정을 예리하고도 고요하게 문장으로 옮겼습니다.
그녀의 시 「거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거울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는 나의 충실한 추종자.
나는 그녀의 얼굴을 하루하루 나이 들게 한다.”
매일 거울 앞에 선 여인은
자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감각을 확인하며,
그 감정 속에서 조금씩 조용히 부서져갑니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기 전부터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는 감정.
우리 역시 그렇게
자기 자신을 몰래 놓아버릴 때가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망은 자기 자신이 되기를 원하지 않거나,
자기 자신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되지 못하는 상태다.”
우리는 자주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어집니다.
더 안정된 사람, 더 사랑받는 사람, 더 빛나는 존재.
그러다 보면 비교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그 비교는 곧 자기혐오로 이어집니다.
“왜 나는 쟤처럼 못하지?”
“나는 왜 이렇게밖에 안 되는 거야?”
하지만, 자기비하라는 감정 속에는
사실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가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나를 더 잘 살게 하고 싶고,
더 좋은 사람이고 싶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지금의 나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건 고장난 감정이 아니라,
너무 정직한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오늘,
자신이 너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셨다면
그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조용히 들어봐 주세요.
“나는 지금 조금 무너져 있어.
하지만,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니야.
나는 여전히 인간이야.”
자기 자신에게 그런 말을
다정하게 건네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작게 느껴지는 밤일수록,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할 수 있습니다.
다음 밤에도,
함께 걸어요.
– 한 그루의 밤, 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