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를 쓸모없다고 느낄까

문학과 철학의 밤 산책 – 한 그루의 밤 ep.9

by lala

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쓸모없을까.”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지고,
세상 속에서 조용히 잊히고 있는 기분.

어떤 역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같고,
내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이럴 땐 스스로에게도 미안해집니다.
내가 나를 안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
내가 나를 외면하고 있다는 감각.

‘존재감’이 사라졌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자주 ‘쓸모’를 먼저 따지게 됩니다.
무엇을 해냈는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그것이 없다면 나는
과연 ‘존재’하는가, 하고요.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말합니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대상화한다.

다시 말해,
타인의 시선이 우리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쓸모 있는 대상’처럼 정렬하게 됩니다.
그 시선이 빠져나가면,
곧 무기력함이 밀려옵니다.
나는 이제 필요 없는 사람일까?

그렇지만,
존재는 결코 ‘기능’으로만 정의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품이 아니니까요.
생산성과 효율성으로만 존재의 가치를 재단하는 건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문학가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말합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쓸모없음은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깨뜨리려는 과정일지 모릅니다.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유용한 인간’이라는 틀에서 빠져나오는 중.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딘가에 적응하기 위해
억지로 꾸려온 껍질이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그 껍질이 금이 갈 때
우리는 쓸모를 잃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다른 존재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사르트르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본질보다 존재가 앞선다.

우리는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그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한 것 같고,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한 것 같아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자기 안의 침묵을 감싸 안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나무가 자라기 전엔
오랜 침묵을 지나고,
꽃이 피기 전엔
오랜 움츠림을 겪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간일 뿐.
무너지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조용히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고 있는 시간.

『데미안』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전쟁 속에서 쓰러지며,
비로소 자신을 향한 여정을 받아들입니다.
그 여정은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쓰러진 자리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단단해집니다.


지금,
당신은 살아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곧 존재의 증거입니다.

“쓸모없다”는 생각은
어쩌면 존재가 내게 보내는 신호일지 모릅니다.
“지금 괜찮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네 안엔 무언가가 자라고 있어.”

그 말을 기억해 주세요.


이 밤도,
당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다음 밤에도, 함께 걸어요.


– 한 그루의 밤, 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