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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시네리뷰]듄1

욕망이 스토리를 만든다. 브라보 듄!

영화는 언제나 혼자 본다. 꽤 오래된 습관이다. 아들과 조조타임을 즐겨보곤 했지만 지금은 일열 일번밖에 없는 홈 시네마에서 혼자 본다. 듄은 55인치 TV로 보기엔 아까운 영화다. 사운드가 좋고 스크린이 아이맥스급(32m)인 영화관에서 봐야 할 장대한 스페이스 오페라다. 우주에서 펼쳐지는 모험과 전쟁을 소재로 다룬 작품을 ‘스페이스 오페라’, 라고 한다.


  듄은 1965년부터 20년간 쓴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모든 SF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듄(Dune)은 모래언덕을 뜻한다. 이 영화에서는 아라키스를 듄이라 지칭한다. 아리키스 행성은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이지만 우주에서 가장 비싼 신성한 환각 물질 스파이스가 생산된다. 스파이스는 환각제로 우주비행을 할 때, 시공간을 순식간에 계산할 수 있게 하는 물질이다. 컴퓨터 대신 뛰어난 계산력과 직관력을 가지게 하므로 우주비행에선 없어선 안 될 자원이다. 이 스파이스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


  - 듄을 지배하는 자가 우주를 지배한다. 10191년, 전 우주를 구원할 운명을 타고난 그의 여정이 펼쳐진다. 위대한 자는 부름에 응답한다. 두려움에 맞서라, 이것은 위대한 시작이다.

  유료채널 카피다.   


  듄2부가 안방에 상륙하기 전에 다시 한 번 그 장대한 모래언덕의 이미지를 내 뇌리에 인 메모리하기 위해 유료채널로 들어갔다. 시리즈물은 보통 전편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만큼은 훼손당하고 싶지 않다. 사막에는 이바드의 눈(파란눈)을 가진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원주민 프레멘 외에 거대한 모레벌레 ‘샤이 훌루드’가 산다. 길이가 400m나 된다. 거래한 파도처럼 일어서는 모래벌레는 숨을 멎게 한다.  


  - 창조자와 그의 물을 찬양하라. 그 분이 오고 가심을 찬양하라. 그 분께서 지나가신 곳은 세상이 깨끗하게 되고 그 분의 백성을 지켜주시리라. 내가 섬기는 황제는 오직 한 분, 그 분의 존함은 ‘샤이 훌루드’이시다.


  황제가 파견한 스파이스 관리 박사(프레멘인)는 황제를 배신하고 폴과 제시카를 탈출시켜주고, 자신은 모래벌레에게 장렬히 먹히며 주술을 왼다.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건 신적존재로 변하기 마련이다. 모래벌레가 프레멘에겐 그런 존재였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부터 듄은 SF영화가 아니라 기술문명이라는 당의정을 입힌 종교적인 중세영화로 보였다.   


  듄을 처음 본 건 2022년 5월, 튀르키예를 가기 위해 아부다비행 비행기를 탔을 때다. 아부다비를 거쳐 이스탄블로 갈 예정이었다. 여행 중 가장 힘든 건 역시 비행기 안에서의 긴 시간이다. 아부다비공항에서 파리행 비행기를 갈아탄다는 옆자리의 어여쁜 유학생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영화를 검색했다. 평소 SF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순전히 예고편의 음악과 주인공(티모시 샬라메) 때문에 고른 영화가 듄(2021년 10월 개봉, 드니 빌뇌브 감독)이다. 한국에서 개봉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비행기 등받이에 붙은 작은 TV로 보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난 사막을 본 적이 없었다. 아부다비에서 사막을 볼 예정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듄을 만난 것이다. 내용이 너무 어렵고 복잡했다. 아니, 그 얼개를 알고 싶은 마음보다 광활한 사막의 경이로운 장면과 음악과 의상들에 매료되어 그저 화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고 해야 맞다. 특히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 역의 티모시 샬라메는 신화 속의 미소년 같다. 저 유리알처럼 맑고 순수한 소년이 다치고 더럽혀질까 가슴이 아렸다. 배우들은 마스크 자체가 예술 작품 같다. 티모시 샬라메는 ‘델마와 루이스’에서 처음 본 브래드 피트보다 훨씬 강렬하게 각인되는 마스크다. 두려움이 가득 찬 눈빛이지만 전 우주와 맞서고도 남을 결연한 반항기. 그를 처음 만난 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년)’이다. 사랑에 눈뜨는 미소년 역이었다. 아픈 첫사랑(아버지의 남자 제자를 사랑한다)을 겪는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집에 돌아와 다시 보고, 이번에 세 번째로 본다. 세 번째 보니 이제야 스토리구성이 눈에 들어왔다. 듄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우주의 황제와 하코넨 남작 가문과 초능력과 예지력을 가진 베네 게세리트(종교집단)가 아트레이데스 공작 가문을 멸망시킨다. 공작의 후계자인 폴 아트레이데스가 가문의 복수를 위해 아라키스 행성의 푸른 눈을 가진 원주민 프레멘인들과 손잡고 반란의 전쟁을 일으키는 내용이다. 1부는 폴이 프레멘인들과 형제가 되는 것에서 끝이 난다. 이 얼개만 알면 그 다음부터는 그저 광활한 사막의 아름다움과 기술문명의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즐기면 된다.


  베네 게세리트는 일종의 종교 집단이다. 신권(神權)이 강했던 중세의 교황청 같은 역할이다. 귀족가문과 결탁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들은 수천 년 간 혈통을 교배해서 예지된 자, 강력한 정신력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나 미래를 볼 수 있는 자, 더 나는 미래를 인도할 사람을 만들어왔다. 때가 가까워졌고, 이미 예지된 자는 태어났음을 믿는다. 늘 예지몽을 꾸는 폴은 베네 게세리트의 시험을 통과한다. 어머니 제시카는 베네 게세리트 전사 출신이다. 제시카는 베네 게세리트의 계율을 어기고 아들 폴에게 그들의 힘을 구사하는 훈련을 시킨다. 제시카는 전 우주를 구원할 ‘퀴사츠 해더락(특별한 존재)’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프레멘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구세주를 기다렸다.

  - 리산 알 가입(외계의 목소리, 메시아라는 뜻)! 리산 알 가입!


  프레멘의 군중들은 폴과 제시카을 보며 메시아를 외친다. 그들은 어머니와 아들이 메시아로 올 것이라고 오랜 예언을 듣고 살았다. 사막의 창조자 샤이 훌루드(모래벌레)의 이빨로 만든 크리스나이프를 모자(母子)에게 준다. 크레멘인들은 성전에서 히잡을 쓰고, 묵주 같은 걸 돌리며 주문을 왼다.   


  여기까지 보고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성모마리아와 예수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움은 정신을 죽이며 소멸을 가져오는 작은 죽음일 뿐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서 흘려보내리. 두려움이 지나가면 마음의 눈으로 그 길을 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없이 나만 남으리.

  폴이 베네 게세리트에게 고통을 이겨내는 시험을 당할 때 외우는 주술이다. 실존주의 철학같다.


  - 두려워 말아라. 작은 사막 쥐도 살아남을 수 있어. 두려워 말아라. 두려움에 맞서야 해. 친구가 도와 줄 거다. 친구를 따라가라. 넌 배운 게 많아. 사막의 방식을 알려주마. 함께 가자. 생명의 신비는 경험해야 할 현실이다. 흐름과 하나가 되어 함께 흘러야 해. 내려놓고 흘러라.   


  잠자리 같이 생긴 비행체를 타고 모래폭풍에 휘말렸을 때 폴에게 프레멘인의 환상이 보인다. '내려놓고 흘러라‘. 얼마나 부디즘(Buddhism)적인가. 폴은 집착을 내려놓고, 모래폭풍의 흐름과 하나가 되어 모래폭풍을 통과한다. 그리고 프레멘인들을 만난다.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폴은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살인을 해야 한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퀴사츠 해더락이 깨어난다는 환청을 듣는다. 폴은 프레멘 전사를 죽이고 자신 속에서 퀴사츠 해더락이 깨어남을 느낀다.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타고 다니지만 정작 결투는 칼과 단검을 쓴다. 또한 로봇 전사나 AI(인공지능)나 컴퓨터는 그림자도 없다. 아마 인간의 지능과 유사란 로봇이나 AI는 인간을 멸종 시킬거라는 위기감에 일찌감치 개발을 중단했을 것이다. 2024년, 0.3초 만에 대답하는 AI가 나왔다. 듄은 지금으로부터 80167년 후의 미래다. 인간의 상상이 실현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그러니 팔천 년 후의 이야기니까 더욱 흥미롭다


  인간의 욕망구조와 종교적 세계관은 중세에 머물러 있는데, 욕망을 구현하는 방식만 고도로 발달된 기계를 사용한다. 다시 말해 하드웨어는 똑같은데, 소프트웨어만 다르다. 그래서 더 실감나게 재미있기도 하다.


  기계문명은 진화를 하는데 인간의 영혼은 조금도 진화하지 않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모른다. 정신은 진화하지 않고 늘 메시아를 기다린다. 오천 오백 년 전, 춘추전국시대나 만년 후의 우주나 돈과 권력을 위해 전쟁을 한다. 인간의 영혼은 태초에 만들어진 욕망덩어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 있지 않다. 하기야 모두가 붓다(깨달은 자)가 된다면 우주는 얼마나 재미없을까. 지루함과 무료함. 아무것도 하지 않는 좀비처럼 살 것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욕망에 찬사를 보낸다. 욕망이 스토리를 만든다. 브라보 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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