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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시네리뷰]성난 사람들

진실은 아프다. 이 영화를 보는 당신도 아프길

  우수(雨水)다.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이다. 종일 는개가 내린다. 는개는 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 조금 가는 비다. 마들렌 한 조각과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영화를 보기에 딱 좋은 날이다.

  

  그 동안 너무 바빠 미처 못 본 넷플릭스 미국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 2023년, 이성진 감독)’이 낙점되었다. 골든 글로브에 에미상까지 석권했다. 당연 남우주연상(스티브 연)과 여우주연상(앨리 웡)까지 받았다.


  ‘성난 사람들’은 계층이 다른 아시아계 남녀, 가난한 설비업자 대니(한국계)와 성공한 사업가 에이미(베트남계)가 마트 주차장에서 ‘사고가 날 뻔한’ 사소한 일로 복수전을 벌이는 과정을 담은 10부작 드라마다. 그들은 파멸을 향해 끝까지 간다. 그들을 끝까지 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분노다. 원래 제목은 비프(Beef)다. 비프는 고깃덩어리이란 뜻도 있지만 불평불만, 분노란 의미도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화가 나 있다. 누가 한국 제목을 ‘성난 사람들’이라고 했는지,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전기나 배관이나 보일러 따위를 설치하거나 고쳐주며 사는 설비업자 대니는 백수 동생 폴과 살고 있다. 부모님은 사촌형의 불법적인 일에 엮여 모텔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 있는 상태다. 대니는 부모님의 집을 지어 다시 미국으로 모셔오기를 꿈꾼다. 그러나 하는 일 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급기야 마트에서 숯불을 사서 일산화탄소를 마시고 자살하려고 한다. 마음이 바뀌어 환불하러 갔는데 영수증이 없으면 환불이 안 된다고 한다. 세상은 자신이 없어지길 바라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비프(Beef, 분노)가 목까지 찬 채 낡은 트럭으로 후진을 하는데 하얀색 Suv 벤처가 끼어든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흰색 벤처가 빵빵 거리며 창밖으로 손가락 욕설을 하고 간다. 그때부터 대니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섰고 분노의 질주가 시작 된다. 


  한편 흰색 벤처를 타고 있던 에이미는 ‘고요하우스’라는 식물원을 성공적으로 운영한다. 현대인에게 힐링이 된다는 식물을 거대기업마트가 인수하기로 했는데, 번번이 보류된다. 하필 인수가 또 보류된 날, 왠 낡은 트럭이 후진을 하다 자신의 차를 박을 뻔 한다. 그녀의 분노도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였다. 그녀는 클랙슨을 심하게 울리며 손가락 욕설을 하고 가는데, 그 트럭이 계속 따라온다.


  이 영화에서 가장 속물로 묘사된 여자가 거대기업 오너다. 거대기업 오너는 예술을 사랑하는 여자다. 물론 모든 예술품을 돈으로 환산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건 그 예술품에 매겨진 돈 때문이다. 에이미의 고인이 된 일본인 시부(媤夫)는 의자 만드는 유명 예술가고, 남편은 괴상한 꽃병을 만드는 멍청한 예술가다. 시모(媤母)는 자기 남편의 작품을 과대평가 하고 우아한 척은 혼자 다 하지만, 대화할 친구가 한 명도 없고, 쇼핑광으로 늘 카드빚에 쫓긴다. 거대기업 오너가 사고 싶은 의자를 값으로 매길 수 없다며 시모는 거절한다. 그러자 오너는 에이미에게 그 의자를 자신에게 파는 조건으로 ‘고요하우스’를 인수하겠다고 교묘하게 말한다.


  - 모든 건 잊혀 져요, 에이미. 사람, 사물, 경험. 그러니 계속 움켜줘어야 돼요. 그게 인생을 멋지게 해주는 거예요. 꼭 뭔가가 있죠.


  에이미에게 온갖 사치와 향락을 제공하며 탐욕을 가르친다. 저 대사를 듣는 순간 저 여인의 종말이 보였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사라진다. 인생은 무상하므로 탐욕도 집착도 놓아야 마음의 평화가 온다. 그런데 그녀는 정 반대의 말을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사라지니, 계속 움켜줘어야 한다고.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어느 순간 멈추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에게 나눔의 성찰이 없다면, 감사의 성찰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끝없이 자본만 증식하려는 자본주의의 속성은 결국 파멸이다.


  분노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을 때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나, 억울할 때 혹은 누구와도 소통이 되지 않을 때 화가 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실존주의 영화이기도 하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없게 하는 사회. 끝없이 노동과 화폐만을 쫒아가는 사회. 노동자는 노동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자본가는 자본을 가져도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자 앞에서 비굴해진다. 또 다른 자본주의는 없단 말인가.       

  종일 는개가 내리는 우수 날에 심심풀이 땅콩처럼 볼 요량으로 고른 이 드라마는 점점 횟수가 거듭 할수록 가슴에 울음이 고이기 시작했다. 심심풀이로 볼 드라마가 아니었다.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 감독은 여자들의 심리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이 영화에서 가장 교활한 여자는 에이미의 옆집여자다. 옆집 여자는 취업을 못해 집에서 창밖만 바라보며 시간을 죽인다. 옆집의 에이미가 잘 나가는 게 배가 아프다. 질투는 매우 위험하다. 어느 날 자신의 정원으로 로드 레이지(road rage, 난폭운전)하는 흰색 Suv 차와 붉은색 트럭을 발견하고 영상울 찍어둔다. 옆집 여자는 에이미에게 거대기업에 취직하게 자신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에이미가 거절하자, 그 동영상을 거대기업오너에게 보이겠다고 협박한다. 이 교활한 여자는 거대기업 오너 집에서 아부를 하다 강도가 들자, 결국 저만 살겠다고 차단 문 버튼을 빨리 누르는 바람에 그렇게 모든 걸 움켜쥐고 사치와 향락을 즐기던 거대기업오너의 허리를 두 동강 내고 만다.


  이 영화는 종합선물세트처럼 세상의 모든 문제점을 건드린다. 미국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문제와 뿌리 뽑힌 이민자들의 비애를 그리는가 했더니, 상처받은 영혼들의 외롭고 쓸쓸함을 얘기했고, 빈부격차로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서로를 증오하는 걸 보여준다. 무능한 예술가도 나오고, 예술을 사랑하는 부자는 정작 모든 예술품을 돈으로 환산해서 생각하는 저질이다. 주인공은 인간을 이렇게 만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도 한다. 심지어는 1980년대 태어난 대니와 에이미는 자신들이 패스트푸드와 인터넷의 폐해, 포르노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성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더 자극적인 성관계를 꿈꾼다는 것이다.


  초연결 시대에 살면서 얼마나 모래알처럼 살아가는지 잘 보여준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서로 엄청 친밀한듯하나 아무와도 진지한 대화를 하지 않고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는다. 부부문제로 정신과에 가서조차 그들은 가식으로 화해를 하는 솔루션을 한다. 그들은 자신 안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것 또한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받은 트라우마 때문이다. 트라우마의 세습. 상처받고 자란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또 그 트라우마를 물려준다. 스위트 홈이란 얼마나 사상누각인가. 남편과 딸과 별장까지 있는 에이미조차 행복하지 않다. 왜 행복하지 않은지 모른다.


  -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저런 선택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네.

  대니가 말한다. 대니와 에이미는 파국의 끝에 와 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다 둘 다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 휴대폰이 안 되는 곳에서 겨우 살아난 그들은 비로소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 누구랑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 보긴 처음이야.

  에이미가 말한다. 그들은 독초를 먹고 죽음을 향해 간다. 그러면서 서로가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는다.


  - 행복해지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대니의 이 대사에서 울컥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대니가 외딴 곳에 차를 세워두고, 끝없이 전화질을 하면서 커다란 햄버거 네 개를 먹는 신이다. 영혼이 허기진 현대인이 왜 먹방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착한 캐릭터는 없다. 현대판 지옥의 묵시록이다. 감독은 많은 걸 담으려 했고, 대부분 성공했다. 자잘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파국으로 향하는 디테일한 에피소드들이 압권이다.


  좋은 작품은 언제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나. 존재와 윤리의 문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슬펐다. 우리의 민낯을 바라보기란 참혹하다. 진실을 마주하기란 아픔이다. 이 영화를 보는 당신도 아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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