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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시네리뷰]냉정과 열정 사이

음악은 냄새 같고, 영화는 마약 같다

  일찍도 찾아온 무더위. 먼 산의 구름이 빠르게 흘러간다. 우릉우릉 하늘이 운다. 시간당 76mm 폭우. 극한호우 경보가 울린다. 세상이 물에 잠기고 있다. 침침해지는 눈, 현저히 줄어든 독서량. 읽던 책을 덮고, TV를 킨다. 세상에 영화가 없다면 이 지루한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전쟁과 범죄는 더욱 기성을 부릴 것이다. 넷플릭스로 들어가 영화를 고른다.


  예고편에서 흘러나오는 잠깐의 영상과 음악으로 주로 영화를 선택한다. 아, 저 피아노 멜로디와 첼로선율. 오래 전 내 감성을 자극했던 선율. 금세 아득해지는 마음. 음악은 냄새 같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드리드 한조각의 냄새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방대한 량의 소설을 썼듯이, 저 멜로디는 내 기억의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누워 있던 첫사랑의 화인(火印)을 와락 햇살 아래로 끄집어 올린다.  


  20년 전에 본 일본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2003. 나카에 이사무 감독). 일본의 남녀소설가가 공동 집필한 소설이 원작이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이별 후 다시 만나는 8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대학 일학년 때 만난 첫사랑, 준세이(다케노우치 유타카 분)와 아오이(대만배우 진혜림 분). 둘은 아오이가 서른이 되는 생일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 같이 올라갈 것을 약속한다. 두오모 성당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성지다. 그러나 둘은 집안의 반대와 사소한 오해로 헤어진다. 


  할아버지가 유명화가인 준세이는 대학을 졸업 후 피렌체에서 명화 복원사 공부를 한다. 우연히 3시간 거리의 밀라노에 아오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에겐 각자 새로운 애인들이 있는 상태였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아오이의 서른 살 생일 날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재회한다. ‘러브 어페어’와 비슷한 스토리다. 이런 러브스토리는 보고 또 보아도 좋다. 사랑하는 그 순간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영원하다는 건, 시간의 길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순간이 황금처럼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 순간을 조금씩 떼어먹으며 평생을 견딘다. 


  간단한 스토리에 입혀진 영상과 음악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답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둥근 자주색 돔을 한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은 유럽의 어떤 대성당보다 사랑스럽다. 거만하지 않고, 홀로 독보적이지 않고, 겸손하고 순종적인 자그마한 동양 여인 같다. 어디에서든 두오모 성당이 보이는 피렌체의 풍광. 그림엽서 같다. 꼭 저 도시서 한 백년은 살았을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 파리에 갔을 때도 고향에 돌아온 듯한 벅찬 감격이 있었다. 유럽 여러 도시를 다녀봤지만, 파리 다음으로 피렌체가 야릇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골동품 같은 피렌체의 골목길과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그 다리를 낡은 자전거를 타고 공방으로 출퇴근하는 준세이. 도시 전체가 복원해야할 명화 같다.   


  20년 전에는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던, 다케노우치 유타카의 눈빛이 며칠이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는 누구에겐가 버림받았을 때의 그 아프고 막막한 표정을 저렇게 잘 표현해 내다니. 배우들은 참 좋은 직업인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그들은 영화 속에서 불멸하지 않는가.


  1966년 일어난 기록적인 대홍수로 피렌체의 문화유산이 손상된다. 복원기술의 혁명으로 피렌체 거리 전체가 복원 공방 같다. 준세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조반나 선생 덕에, 준세이는 치골리 작품 복원을 맡게 된다. 복원을 거의 마쳤을 무렵, 오랜 망설임 끝에 준세이는 아오이를 만나러 밀라노로 간다. 그녀 옆에는 돈 많은 남자가 있음을 안다. 냉정하게 변한 아오이.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오이를 바라볼 때 준세이의 표정. 버림받은 자의 슬픈 눈빛. 그때부터 눈앞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준세이는 피렌체 공방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치골리 그림이 훼손되어 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조반나 선생이 치골리 그림을 훼손 한 것이다. 


  - 이 도시는 점점 노후화 되고 있어. 아무리 복원해도 계속 망가져가고, 이곳 사람들은 과거에 살고 있지. 젊은이들에겐 새로운 일자리가 없어. 관광업이나 문화재를 보호하는 직업뿐이지. 준세이, 질투에 지지 마. 네겐 미래가 있으니까.


  조반나 선생이 준세이와 헤어지며 한 마지막 말이다. 치골리 그림 훼손으로 공방은 문을 닫고 준세이는 일본으로 돌아간다. 조반나 선생의 저 말은 의미심장하다.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다. 더 이상 희망이 없어진 삶. 준세이를 짝사랑한 그녀는 준세이의 복원 기술을 질투한 걸까, 준세이의 젊음을 질투한 걸까, 준세이의 사랑을 질투한 걸까. 예전에 보이지 않던 조반나 선생의 아픔과 외로움이 보인다. 아무튼 그녀는 질투에 졌다. 조반나는 권총자살을 한다. 


  - 복원가는 죽어가는 생명을 되살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는 유일한 직업 같아요.

  조반나 선생의 부고를 듣고, 준세이는 할아버지에게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가서 복원사가 되겠다고 말한다. 아오이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는 미술품 복원사 준세이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자신의 첫사랑도 천천히 복원해 간다. 


  첫사랑이란 얼마나 위험한가. 안 이루어져도 위험하고, 이루어지면 더 위험하다. 안 이루어지면 일생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어 현재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루어지면 첫사랑이라는 달콤한 환상은 깨지고, 죽을 때까지 그 때 그 어느 지점에서 헤어졌었어야 한다고 내내 후회하며 산다. 또한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리워할 누군가가 없어, 삶이 지루하고 재미없다. 


  이 영화는 애물단지 첫사랑의 딜레마를 다 충족시켜준다. 헤어졌다가, 다른 이를 만나 사랑하려 노력해 보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보석 같은 첫사랑과 다시 재회한다.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믿었던 것이다. 이 영화가 불멸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가끔 가슴 아픈 사랑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순수성을 의심해 볼 일이다. 속물들에게 ‘사랑의 아픔’이라는 선물까지 하기엔 불공평하지 않은가. 왜 사랑이 아픔인지 깨닫고 나면, 세상의 비밀을 하나 풀은 듯이 눈앞이 환해진다. 사랑의 속성은 소유욕이다. 소유욕은 집착이다. 그게 집착인지 알고 놓는 순간, 너는 프리덤이다. 하여, 사랑의 아픔은 선물이다. 


  음악은 냄새 같고, 영화는 마약 같다. 매일 아침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가 사과 향을 맡고 몸을 움직이듯 음악을 들으며 일어난다. 아직도 내 앞에 누워 있는 길고 긴 시간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멈춰버린 지루한 삶. 무엇을 할 것인가. 약쟁이가 마약을 찾듯, 영화광인 나는 영화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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