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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시네리뷰]하우스 오브 구찌

인간의 욕망은 어디 쯤에서 멈추어야 할까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2022년 작)’는 명품 브랜드 구찌가의 비가(悲歌)다. 또한 인간의 욕망과 파멸에 관한 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생각났고, 영화 ‘레이디 맥베스’가 연상되었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쯤에서 멈추어야 할까. 어디쯤에서 멈출 수나 있는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사라 게이 포든의 실화소설 ‘더 하우스 오브 구찌’를 그대로 각색한 거다. 브랜드 구찌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나이든 여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명품 브랜드 티가 나게 로고가 드러나 있는 건 질색이다.


  입춘이 지났건만 칼날 같은 날씨는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그러나 햇살은 이미 거실 깊숙이 쳐들어 왔고, 해는 길어졌다. 무료한 휴일, 유료채널의 스쳐지나가는 예고편에 그들이 나왔다. 제발 오래오래 살아있기를 바라는 두 거장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와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와 처음 만나건 ‘미션’이고, 알 파치노를 처음 만나건 ‘대부1’이다. 미션에서 가브리엘 신부로 분한 제레미 아이언스의 눈빛은 엔니오 모레꼬네의 그 음악과 함께 가슴에 박혀 있다. 알 파치노는 대부1에서 아버지의 정적을 죽이고 시칠리아 섬으로 피신했을 때 그곳 아가씨와 결혼을 한다. 그 결혼식 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춤을 출 때 햇살에 팔랑대든 그 금빛 머리카락은 지금 보아도 가슴이 뭉클하다. 그 아름다움은 비극을 담고 있기 때문일까.


  ‘죽여서라도 갖고 싶은 이 이름 구찌는 부유함, 스타일, 권력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저주를 뜻하기도 한다.’는 나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피렌체의 작은 가죽공방에서 40년 만에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된다.


  평범한 트럭 운수업자의 딸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 분)는 어느 파티에서 마우리치오 구찌(아담 드라이버 분)를 만난다. 마우리치오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순간 파트리치아의 욕망은 머리를 뚫고 나온다. 거실에 걸린 클림트의 ‘키스’를 피카소 그림이라 말함으로서 그녀의 지적 수준은 들통 난다. 지성은 훈련되어지는 거다. 누구든 태어나면서부터 이발소 그림과 샤갈을 구분할 수는 없다. 감각과 본능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지성이다. 그녀는 감각과 본능이 발달한, 성(性)이 무기란 걸 아는 여자다. 위험하다. 그런 여자를 우리는 천박하다고 한다.  


  클림트와 피카소도 구별 못하는 파트리치아는 몸으로 마우리치오 구찌를 유혹해서 결혼을 한다. 마우리치오의 아버지로 나오는 사람이 제레미 아이언스다. 그는 단번에 파트리치아가 돈 때문에 아들에게 접근한 걸 알고, 그녀와 결혼하면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다. 병들고 늙고 까칠한 속물 노인으로 나와도 눈빛 살아있는 그가 나는 멋있다.


  그러나 그녀의 욕망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 욕망은 끝없이 자라는 콩나무처럼 하늘을 찌른다. 온갖 수단과 편법을 동원해서 큰 아버지와 사촌까지 그룹에서 잘라내며 구찌를 장악한다. 잠시 성욕에 눈이 멀었던 마우리치오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얼간이 취급하는 거만하고 천박한 파트리치아와 13년 만에 이혼을 한다.


  - 난 당신과 결혼한 사람이야.

  집착하는 파트리치아.

  - 아니, 당신은 구찌와 결혼한 거지.

  싸늘한 마우리치오는 이미 지적인 금발여인과 사랑에 빠져 있다. 파트리치아는 ‘죽여서라도 갖고 싶은 그 이름’을 위해, 1995년 청부살인을 한다.


  제레미 아이언스(로돌포 구찌)의 형으로 나오는 사람이 알 파치노(알도 구찌)고, 알 파치노의 아들이 자레드 레토(파올로 구찌)가 분한다. 구찌가의 모든 사람은 욕망덩어리들이다. 그들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동승하고 달리는 전차에서 서로 발로 차서 전차에서 떨어트려 죽이려 한다. 알 파치노의 천연덕스런 속물연기는 과연 탑이다.


  레이디 가가의 천박한 몸매와 천박한 옷차림과 천박한 화장, 줄담배와 여러 번 나오는  목욕 신, 무식해 보이는 이탈리아 억양이 들어간 말투까지 정말 압권이다. 몸 전체가 물질적 욕망에 허기진 아귀의 입 같다. 감각적 본능을 그녀처럼 잘 표현한 여배우가 또 있던가? 명품 구찌 옷이 그녀가 입으면 귀부인이 아니라 갑자기 창녀처럼 보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어떻게 레이디 가가를 캐스팅 했을까. 이 영화는 초호화 캐스팅만으로 반은 성공한 영화다.


  얼핏 보면 한 여인이 구찌가를 파멸에 이르게 한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구찌가의 저주는 잉태 되어 있었다. 로돌포 구찌와 알도 구찌 형제는 서로 뜻이 맞지 않고, 각자의 아들들과도 불화한다. 그들은 이미 패밀리가 아니라 서로 뜯어먹고 뜯어 먹히는 짐승의 세계로 추락해 있었다. 살해당한 마우리치오가 최대 피해자가 맞기는 하나, 그 또한 성욕에 눈이 멀어 욕망의 화신 파트리치아의 유혹에 넘어간 것 아닌가.


  이혼 후 정신을 차리고 경영을 잘 했으면 어쩜 구찌에 구찌 성을 가진 사람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방만한 사치로 구찌가 기우뚱하게 만든다. 그러다 피살당한다. 현재 구찌에 구찌 성을 가진 사람은 없다. 법인체제로 돌아간다. 2년 후 체포된 파트리치아는 26년형을 선고 받고, 18년을 복역하고 나왔다.


  그들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그런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그들은 거대한 부를 손에 쥐고 있어도 자신들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 스스로에게 한번이라도 질문을 던졌더라면 어땠을까. 어느 국제세미나에서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20세기 가장 특징적인 사건을 불교가 서양으로 유입된 일이라 했다. 그들이 붓다의 지혜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그들은 평생 탐욕과 갈애의 올무에 걸려 이전투구하다 죽은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추구한다. 그러나 자본만 추구하는 세계는 욕망의 세계, 짐승의 세계, 약육강식의 세계, 악(惡)의 세계로 추락하기 쉽다. 자본이 수단이고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 이런 세계에 한 방울의 맑은 물이라도 보태어 썩지 않게 하는 일은 종교와 예술일 것이다. 얼핏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종교와 예술이야말로 선(善)의 세계고, 인간의 세계고, 진정한 아름다움의 세계며, 삶을 충만하게 하는 세계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게 하는 세계며, 삶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성지(聖地)다. 세상은 쓸모없는 것, 부질없는 것 위에 세워져 있다.  


  서양의 문화는 정신적 성장이나 내적 통찰이나 영혼의 완성이나 영혼의 성숙 따위는 모두 절대자인 신(神)에게 맡기고, 이 생(生)에서는 오로지 세속적인 성공에만 전부를 걸어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 중심이 아니라, 부부가 중심인 사회니 늙든 젊든 모두 섹시하게 보이는 게 최대의 목표가 된다. 죽을 때까지 성적으로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눈물겹다. 가슴도 커야하고, 또한 쳐져서도 안 되고, 엉덩이도 빵빵해야하고, 속눈썹도 붙이고 손톱에도 늘 페인트를 칠한다. 성형수술도 서슴지 않는다. 성욕이 사라지면 곧바로 죽음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불교가 서양으로 유입되면서 사람들은 천국보다 더 많은 부와 물질을 소유하고도 왜 행복하지 않는지 눈치 채기 시작한다. 아무리 많은 부를 가지고도 늘 아귀처럼 허기진 사람들, 그들은 명상 센터를 찾기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도 명상을 했고, 유발 하라리도 명상을 한다.   


  그럼 이 들끓는 욕망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난 왜 다 가졌는데 불안하고 불행할까. 이 질문을 시작하면 비로소 주위를 돌아본다. 문득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된 거다. 탐욕과 집착을 내려놓으면 평화와 자유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힘들고 아픈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연민이 생긴다. 악마의 마음에서 천사의 마음으로 변한 거다. 우리 안에는 신성한 신(神)과 부처가 공존 한다.


  가난하면 수행하기 좋고, 부자면 베풀 수 있어 좋다. 돈(자본)만 추구하면 파멸이 기다리고, 정신(이념)만 추구하면 가난이 기다린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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