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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시네리뷰]미나리

지구의 모든 유랑민에게 바치는 연가

  악착같이 기다려 집에서 유료tv로 영화 ‘미나리(정이삭 감독. 2021)’를 봤다. 개봉하고 50일 쯤 기다리면 집에서 볼 수 있는 시대다. 오래간만에 해피엔딩 영화를 본 것 같다.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괜히 울컥해서 눈물 훔치는 소녀처럼 코를 풀어가며 봤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이점이다. 마음껏 울 수 있다는 거.


  희망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 가족의 고군분투기다.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시골 촌구석 아칸소에서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는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한다. 딸 앤과 심장병을 앓는 아들 데이빗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할머니(윤여정 분)가 날아온다. 고춧가루, 멸치, 한약과 물이 있는 어디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씨를 가지고 온다. 우물이 말라 농장의 작물이 말라버리고 급기야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할머니의 실수로 불이 난다. 위태위태하던 가족은 고난 앞에 다시 힘을 모으는 해피엔딩이다.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 원조 같다. 


  얼핏 스토리가 너무 밋밋해 한국에서 제작되었더라면 주목을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일단 첫 화면에 흐르는 음악이 단비처럼 가슴을 촉촉하게 만든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의 연기, 저 정도야 윤여정의 평소 실력이다. 저들이 놀란 것은 ‘한국의 할머니’라는 정서에 숨을 멈춘 거다. 


  할머니는 6.25 전쟁 때 남편을 잃고 딸 하나를 키운 여인이다. 글자도 모르는 문맹이다. 오직 자식 하나 바라보고 살아온 여인이다. 시대 배경이 레이건(1981~1989) 대통령 시절이니 1980년대다. 그 때 우리나라는 전두환(1980~1988)이 대통령인 군부 독재 시절이었다. 거의 40년 전 이야기다. 그 시절, 코리안은 일 년에 3만 명씩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주했다. 민주화의 봄이 있기 전, 그들은 추방당하듯 유랑을 떠났다. 망명이라 해도 될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낯선 땅으로 왔다. 


  2021년 현재 미국 이민자가 186만 명이나 된다. 2백만 명 쯤 되는 우리나라 중소도시의 인구가 통째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셈이다. 그들은 미나리처럼 그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피땀을 흘렸다. 바로 그 이야기다. 정이삭 감독이 어린 시절 목도한 그 풍경.


  눈물이 빵 터지기 시작한 건 엉뚱한 곳이었다. ‘십자가 아저씨’ 폴(윌 패튼 분)이 등장 하면서다. 폴은 제이콥이 주문한 트랙터를 배달하러 왔다. 폴은 6.25 전쟁에 참전했다고 한다. 그 때의 한국 지폐를 간직하고 있다가 아들 데이빗에게 선물하며, 자신은 일을 잘 한다고 말한다. 일꾼을 고용할 여력이 없던 제이콥은 어쩔 수 없이 그를 고용한다. 폴은 제이콥을 보는 순간 친구가 될 줄 알았다며 포옹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친구를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폴은 제이콥에게 도움이 되었다.


  폴을 연기한 ‘윌 패튼’의 눈빛 때문이다. 겁 먹은듯한 선량한 눈빛. 상처받을까봐 수다스런 말로 미리 연막까지 친다. 일꾼으로 승낙하자, 할렐루야를 찬양하는 몸짓. 단박에 상처받은 외톨이 영혼임을 직감하게 된다. 기가 막힌 캐스팅에 기가 막힌 연기다. 


  주일에 모두 교회를 갈 때 그는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하고 무거운 통나무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처럼 끝도 보이지 않는 외길을 걷는다. 자기만의 믿음, 자기만의 십자가의 길. 


  폴 아저씨는 소설 ‘좀머씨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를 떠올리게 한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좀머씨는 빈 배낭을 메고, 이상한 호두나무 지팡이를 쥔 채 끊임없이 길을 걷고 걷는다. 좀머씨는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걷기만 한다. 걷고, 걷고, 걷다, 어느 날 호수로 걸어 들어간다. 폴 아저씨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걷고, 걷고, 걷다, 그 십자가에 못 박힐지도 모른다.


  외로운 사람은 걷는다는 걸 나는 안다. 여고시절 학교에서 집까지 걸으면 두 시간 쯤 걸렸다. 물론 걷다보니 지름길을 알게 되어 큰 길을 피해 마을 골목길을 가로질러 다녔다. 적요한 골목길. 수국이 축축 늘어진 이층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늘 그 집 앞을 지나다녔다. 어느 날 그 집에서 심하게 다리를 저는 여고생이 나오는 걸 보았다.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끔 수국이 피는 계절이 되면, 외롭던 그 시절과 그 여고생이 떠오른다. 잘 살고 있는지.  


  폴은 6.25 전쟁 참전용사다. 역사의 거친 파도에 한번 휘말렸다, 마른 땅에 내동댕이쳐진 인물이다. 그는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게 자신의 죄인 냥 십자가를 짊어지고 속죄를 한다. 고행의 길 위에서 희미하게 안식의 기쁨을 찾는 폴. 그는 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야) 물러가라’고 외친다, 살아야 했으므로. 반면, 제이콥은 무신론자다. 자기 자신의 의지를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농장 일을 하다 잠시 폴이 가리켜 올려다 본 하늘. 구름 사이로 서광처럼 햇살이 비취는 걸 본다. 해서 교회를 한번 나가 보기도 한다. 


  편견 없이 모든 걸 껴안는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자들이다. 목마를 때 언제나 뛰어가 한 사발 떠먹을 수 있는 맑은 옹달샘을 간직하고 있으니.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비상구였다. 권위적이고 고집쟁이인 아버지를 피해 밤에는 몰래 할아버지 방에서 잤다. 


  남동생과 나는 할아버지의 팔 하나씩을 차지하고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매일 밤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해 줬다. 이야기를 듣다 잠들었다. 정이삭 감독의 일기장을 훔쳐보다, 불현듯 나의 유년기를 소환하게 되다니. 잊고 있던 할아버지가 그립다. 내가 글쟁이가 된 것도 할아버지의 공덕 때문일지도 모른다. 술을 안 드시는 아버지에 비해 할아버지는 애주가였고, 로맨티스트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중학생 때 왔던 별로 돌아갔다.


  그들은(아카데미) ‘한국의 할머니’를 처음 봤나보다. 모든 걸 내어주고, 희생하며, 삶을 달관한 듯 긍정적인 모습. 서구 자본주의와 핵가족제도, 더 나아가 개인주의자들인 그들의 눈에 ‘K-할머니’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일 것이다.    


  자연에서 뛰어다닌 데이빗은 심장이 좋아진다. 처음엔 할머니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던 데이빗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편이 되어주는 할머니를 차츰 사랑하게 된다. 할머니가 실수로 불을 내고, 얼이 빠진 채 정처 없이 어딘가로 걸어가자, 절대 뛰면 안 되는 데이빗은 태어나 처음으로 힘껏 달려 할머니에게 간다.


  - 할머니 어디가세요. 우리 집은 저쪽이에요. 같이 우리 집으로 가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사다.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미국적인 마인드. 스위트 홈. 가족이 자꾸 붕괴되어가니 가족주의를 강조해야 하리라. 아무튼, 너무나 폭력적이고 블록버스터한 영화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가슴을 청정한 ‘미나리깡(밭)에서‘ 한번 씻어낸 영화다. 이 영화 이후, 미나리는 미국이민자를 상징하는 풀이 될 것이다.


  미나리 미나리

  우리나라 풀

  미국 땅 어디든

  우리 미나리


  내가 동요 ‘무궁화(우리나라꽃)’라는 노래에 개사한 미나리(이민가) 노래다. 이 영화는 미국에 사는 186만 재미교포와 뿌리내리고 싶어 하는 지구상의 모든 유랑민들에게 바치는 연가(戀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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