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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러브스토리와 포르노

핵심만 말하라면 러브스토리가 포르노가 된다

   - 영희야, 핵심만 얘기해라.

  교사로 퇴직한 고등학교 동기가 내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다그쳤다.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냥 결과만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어떤 사건이든 자세하게 말하고 싶은 걸까. 그 때의 바람의 방향이라든가 그 때의 냄새라든가, 그 때 멀리서 들리던 헬리콥터 소리라든가, 그 때 그 사람의 차림새와 신발과 장신구와 립스틱 색과 표정과 심리와 눈빛 등을 말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 A가 있다. 물론 대학 때 전공은 달랐다. A는 노래를 잘해 성악과에 들어갔고, 30년 가까이 음악선생을 하다 조금 일찍 퇴직을 하고, 일주일에 골프를 치러 세 번 쯤 나가며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친구였다. A는 7살 때부터 53살까지 학교를 다녔다고 말했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30년 교직생활을 했으니 맞는 말이다. 무공해 음식과 몸에 이로운 것만 찾아 건강을 챙기던 A가 쓰러져 119에 실려 갔다.


  그 일주일 전에 호주에서 10년 살다 온 친구 B의 집들이 간 날이었다. 75평짜리 고급빌라는 속이 시원할 정도로 넓었고 인테리어도 근사했다. 솜씨 좋은 B의 요리를 잘 대접 받고, 거실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A가 뒷담화를 좀 해도 되냐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뒷담화? ‘뒷담화의 효능’이란 칼럼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A가 그 칼럼을 읽었기 때문에 나를 쳐다보며 물은 것이다.


  ‘뒷담화의 효능’은 한마디로 뒷담화를 해야지만 우리 몸속의 오행, 목, 화, 토, 금, 수(木, 火, 土, 金, 水)기운을 골고루 사용하게 되어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는 칼럼이다. 뒷담화는 꼭 남을 헐뜯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감력을 주고받는 행위이다. 뒤에서 남을 칭찬하는 것도 뒷담화에 속한다. 오행은 별들의 운행 리듬이고, 별들의 운행에 따라 사계절이 있다. 또한 우리 몸속에도 오행이 내재되어 있는데, 이 오행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어느 한 오행이 태과(太過)하거나 혹은 불급(不及)하면 몸이나 마음에 병이 온다.


  누군가의 일생을 치유 불가능하게 만드는 뒷담화는 금물이다. 그렇지 않은 이상 ‘토킹하는 자’와의 우의(友誼)를 돈독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벼운 품평 정도는 우리 몸속의 기(氣)의 흐름을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반드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이러한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고 칭찬으로 마무리를 해야 개운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누군가와 즐겁게 뒷담화를 하는 것은 우리 몸속의 ‘목화 기운’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목화 기운을 사용해야지만 ‘금 기운’이 약화 된다. 금 기운이 성(盛)하면 세상이 슬퍼 보이기 시작하고, 급기야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금 기운이 너무 약해도 나타날 수 있다. 사주 전체를 봐야 정확하다. 이 사실은 명리학 공부를 해서 알기도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 본 결과이기도 하다.


  한 스푼의 우정이면 될 친구에게 한 바가지의 우정을 퍼 준 결과 내 진심은 오래도록 아팠다. 한 삼 년을 책 보고 글만 쓰며 묵언수행(黙言修行)하듯 지냈다. 어느 날 살짝 우울증이 와있음을 알았다. 일로 만나는 사람 외에는 사람을 만나는 게 싫어질 때쯤이었다. 뉴욕에 사는 절친과 통화를 하다 대학 때 가톨릭 학생회 선배 얘기를 한참 했다. 문득, 우울한 마음이 사라져 있음을 알았다. 누군가에게 받은 모욕감을 뒤늦게라도 토로(吐露)하다 보니 우울증이 퇴보하는 걸 경험했다.


  그 선배도 뉴욕에 사는데, 첫사랑인 남편이 군에 갔을 때 나타나 졸업할 때까지 내게 눈물로서 구애를 하다, 농축산 대 나온 여자와 결혼해서 딸 아들 낳고 뉴욕에서 산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 수 있게 된 글로벌한 세상이다. 어느 날 친구가 아닌 사람의 톡이 떴다. 장편소설 ‘아키코(2011년)’가 나온 해였다. 비즈니스로 서울에 오전 7시에 도착해서 오후 4시 상해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 사이에 나와 점심을 먹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혼자 짝사랑하다 내게 엄청 상처를 받고, 다른 여인과 결혼해 뉴욕에서 사는 그 선배였다. 잠시 생각하다 그러자고 했다. 30년 전 너무 잔인하게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인사동 수도약국 앞에서 오전 11시에 만나 커피를 마시고, 전주비빔밥을 먹고 나니 낮 12시 반이었다. 주로 대학 때 선후배 소식들과 자식 얘기를 했다. 딸이 미국 고등학교의 교사라고 했다. 세월이 너무 흘러 공통 화제가 금세 바닥이 났다. 4시 상해 비행기니 2시까지는 공항에 가야 했다. 나는 어쩜 이번 생에서는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에 공항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얼마 전에 나온 장편소설 ‘아키코’를 선물로 줬다. 그러자 그 선배는 ‘또 책 냈나? 이런 거 귀찮다.’라고 말하며 내 차 뒷좌석에 아키코를 던져 버렸다. 아, 이 선배는 30년이나 흐른 아직도 내게 앙금이 남아 있구나 싶었다. 미대생이 소설에 당선되어 신문에 나자, 그때부터 나를 쫒아 다녔으면서. 아키코는 공항 쓰레기통에 버렸어도 되었다. 내가 왜 그 선배를 선택하지 않았는지 확연해졌다. 그 후 그 선배와 조금이라도 연결되는 네트워크는 다 차단했다. 


  그러나 고맙게도 우울증이 왔을 때 그 선배의 저급한 인격을 평하다 보니 우울증이 사라졌다.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더니. 그날 이후 나온 칼럼이 ‘뒷담화의 효능’이다. A가 그 칼럼을 읽었고, B의 집들이 날 나를 쳐다보며 ‘뒷담화’ 좀 해도 되냐’고 물었다. 물론 되지. A는 30분 쯤 골프매너가 없는 어느 여인을 후식 담화로 올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착한 A는 괜히 뒷담화를 했다고 후회했다. 가슴이 조인다며. 그리고 일주일 후 죽다가 살아났다고 톡이 올라왔다. 가슴이 조여 119를 부르고 쓰러졌다고. 응급실로 실려가 심장에 스탠스를 끼웠다고, 그래서 살아났다고. 그러니까 B의 집들이  날 뒷담화를 할 때 이미 전조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핵심만 얘기하라니. 핵심만 얘기하면 ‘A가 쓰러졌는데 가슴에 스탠스를 끼우고 살아났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단발마나 울음소리로 신호를 주고받기만 하면 된다. 암컷 늑대의 울음소리를 듣고 수컷 늑대가 찾아오듯이. 


  세상은 말씀(logos)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경도 말씀이고, 불경도 말씀이고, 코란도 말씀이고, 도덕경도 말씀이고, 논어도 말씀이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한다, 고로 존재 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핵심만 말하라면, 원수 집안끼리 사랑했다가 여자가 자살하는 이야기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핵심만 말하라면 불륜녀가 자살하는 이야기다. 핵심만 이야기하면 세상의 모든 문화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늑대 무리처럼 산다. 배고프면 먹고, 교접하고 싶으면 교접해서 새끼를 낳고, 자라면 뿔뿔이 흩어지고.


  우리 삶의 핵심은 태어나서 죽는다, 이다. 그 사이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문화고 예술이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언어가 아니면, 스토리가 없다면, 문화 예술이 아니면, 인간이 인간임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핵심만 이야기 하라고 하면 러브스토리가 포르노가 된다. 남녀가 처음 어디서 만나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랑을 하고 결혼했는데 여자가 암으로 죽는다, 로 이어지는 러브스토리가 핵심만 말하라고 하면, 남녀가 만나 섹스를 했는데 여자가 암으로 죽는다, 이다.


  그래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와 내 뺨의 솜털을 스칠 때 가을이 옴을 오감(五感)으로 느낄 수 있다고 ‘표현’ 할 수 있는 게 문화고 예술이다. 아무도 내 말을 자세히 듣지를 않으니, 이렇게 글쟁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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