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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시네리뷰]달콤한 인생

고독한 남자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느와르

  또 영화 얘기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야만 한다. 며칠 째 내 머리 속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일 111년의 기록을 갱신하며 폭염주의보가 온 국민의 휴대폰을 아우성치게 했다. 체감온도 40도를 웃도는 폭염을 피해 피서하는 나의 방식이 있다. 에어컨을 28도에 맞춰 두고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이다. 느와르란 비정한, 어두운, 우울한, 검은색 등의 뜻으로 주로 암흑가를 무대로 한 영화 장르를 말한다.


  언제부턴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지 않는다. 영화를 누구와 같이 본 기억은 별로 없다. 아들이 어릴 때 데리고 간 것 말고는.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곧 집에서 볼 수가 있는 세상이 되었다. 가끔 예술 영화를 보기 위해 광화문 쪽으로 나가기는 한다.  


  작년 여름에는 중국 무협영화와 ‘징기스칸’ 영화만 골라 보았다. 대나무 숲을 날아다니고 장풍(掌風)을 쏘는 중국 무협영화가 나는 너무 재미있다. 그들은 대개 스승이나 부모의 원수를 갚거나 권법(拳法)의 비기(秘技)가 기록된 책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중국 사람들은 참 허풍도 대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기 다른 감독의 그러나 같은 제목의 영화 ‘징기스칸’을 네 편이나 보았다. 감독의 시선에 따라 징기스칸을 다르게 해석한 게 흥미로웠다. 내 머리 속에는 네 감독이 바라본 징기스칸이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칸이 되었다.

  다 알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은, 이런 멋진 말들이 나는 좋다.

  올해는 느와르다. 최근 액션 혹은 느와르 영화는 거의 다 보았다. ‘아수라’, ‘마스터’, ‘베테랑’, ‘범죄도시’, ‘독전’... 재미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사이사이 다른 쟝르의 영화도 보았다. 아무리 나홀로 휴가라도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있을 수는 없다. 하루 한 편 혹은 두 편 정도 본다. 그러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을 발견했다. 2005년 개봉작이다. 포스터에 이병헌이 권총을 들고 멋있게 서 있길래, 그냥 보기로 했다.


  아, 난 왜 이 영화를 이제 봤단 말인가. 이 영화는 이병헌의, 이병헌에 의한, 이병헌을 위한 영화였다. 그의 얼굴엔 고독이 묻어 있다. 고독한 남자의 아름다움을 아시는가.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이 있다면, ‘에덴의 동쪽’의 제임스 딘이 있고, ‘길버트 그레이프’의 조니 뎁이 있고, ‘가을의 전설’의 브래드 피트가 있고, ‘대부’의 알 파치노가 있고, ‘태양은 가득히’의 아랑 드롱이 있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로버트 드니로가 있고, ‘화양연화’의 양조위가 있고,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있고, ‘아비정전’의 장국영이 있다. 그들은 모두 고독을 휘장처럼 두르고 있다. 하여 멋있다.  


  일 처리가 완벽하고 의리 깊은 선우(이병헌 분)는 7년간 보스 강사장(김영철 분)에게 충성한 결과, 절대적인 신뢰를 쌓아 호텔 스카이라운지 경영을 책임지는 위치에까지 올라가 있다. 강사장에게는 젊은 애인 희수(신민아 분)가 있다. 그녀는 첼리스트다. 어느 날 강사장이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다면 선우에게 감시하라고 지시를 한다. 사실이면 알아서 처리하고 연락하라며 출장을 떠난다.


  선우는 희수를 따라다니다가 그녀가 방송국에서 녹음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선우는 어쩜 난생 처음으로 클래식 연주를 보고 들었을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클래식 음악은 아니었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1998년 앨범에 수록)였다. 클래식은 아니고 클래식과 팝의 조화를 이룬 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애잔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선우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아, 이건 뭐지?,하는 표정의 선우. 첼로를 키던 희수는 한 순간 그런 선우를 보고 싱긋 웃는다. 선우는 그 순간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영혼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마치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순간과 같은 것이다. 아담은 ‘악(육체)’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면 선우는 ‘선(영혼)’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이다.  


  3일 째 되는 날 선우는 희수가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목격한다. 둘 다 죽이고 보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선우는 한참의 망설임 끝에 없었던 일로 하고 앞으로 만나지 말고 잊으라고 한다. 그러자 희수가 ‘어떻게 없었던 일처럼 잊을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는 거 아니잖아요.’하고 말한다. 선우는 그런 말들이 이상하다. 냉혹한 건달의 세계에서는 마음 따윈 없다.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한다.


  출장에서 돌아온 강사장은 선우가 자신의 명령을 어긴 걸 알게 된다. 강사장은 선우를 없애라고 지시한다. 그 때부터 선우는 조직 전체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결국 선우는 강사장을 죽이고 자신도 죽음으로 끝이 난다. 마지막에 고독한 킬러 ‘에릭’이 나타나 선우의 고통을 멎게 해 준다.  


  선우가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유일하게 ‘민기(진구 분)’가 그를 돕는다. 그건 목숨을 건 우정, ‘문경지교(刎頸之交 :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다. 강사장은 민기를 죽인다. 


  ‘아무 생각 없이’ 보기로 한 느와르 영화 ‘달콤한 인생’은 잘못 골라도 한 참 잘못 골랐다.

해거름이었다. 배가 몹시 고팠지만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노주노교(攎州老窖), 45%. 중국 청도 다녀오며 사온 중국술이 눈에 들어 왔다. 그렇지, 이럴 땐 독주가 필요하지. 나는 거푸 두 잔을 마셨다. 그제야 한 방 맞은듯하던 멍한 정신이 좀 돌아왔다. 마치 얼었던 마음이 녹듯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이 아려왔다.


  ‘달콤한 인생’은 삶은 전쟁터임을 보여준 영화며,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를 보여 준 영화며, 고독한 남자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영화며, 한 남자의 첫 사랑에 관한 영화며, 남자의 우정과 의리에 관한 영화며, 권력의 무상함에 관한 영화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관한 영화며, 성(聖)과 속(俗)에 관한 영화며, 선(善)과 악(惡)에 관한 영화며, 자신의 삶에 혹은 자신의 운명에 비로소 ‘왜?’라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며, 한 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생을 거는 영화며, 아픈 사랑에 관한 영화다.


  ‘위대한 개츠비’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있다면 ‘달콤한 인생’에는 이병헌이 있다. 사랑이란 잊혀지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고,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란 것도 선우는 알게 된다.


  - 말해 봐요,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선의 세계를 엿본 자가 질문한다. 건달의 세계는 질문하지 않는다.

  -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악의 세계만을 아는 자가 답한다. 건달의 세계에서는 ‘흔들리는 마음’은 용납되지 않는다. 보스는 이미 선우가 그들에게 금지된 ‘선의 세계’를 엿본 걸 알아버린 것이다.


  맑은 어느 봄날 제자가 묻는다.

  -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일 뿐이다. 

  혜능선사(慧能禪師)의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말이다.


  영화 프롤로그의 나레이션이다. 이것은 선우가 혼자 짝사랑을 하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 

  깊은 어느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다. 스승이 묻는다.


  -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 슬픈 꿈을 꾸었느냐?

  -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 때문입니다.


  이 에필로그의 나레이션은 마치 장자의 ‘나비의 꿈’을 연상시킨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이지 모르겠다고 한 장자는, 꿈과 현실의 차이가 없듯이 삶과 죽음의 차이도 없다는 걸 우리에게 말해 준다. 이 영화 전체가 한갓 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예민한 감독(브라보 김지운!)의 의도 따윈 상관없다. 모든 창작물은 스스로 자의성을 띠고 흘러간다.


  육체의 세계를 살다 한 순간 영혼의 세계를 엿 본 대가는 한 생을 거는, ‘가혹한’ 일이 되었다. 강사장의 명령대로 선의 세계에 속한 첼리스트 희수를 죽이고,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는 게 달콤한 인생이었을까. 아님 짧은 순간 영혼의 세계에 속한 한 여인을 마음에 품고,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달콤한 인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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