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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뒷담화의 효능

말을 못하게 하면 폭력으로 나타난다

  뒷담화. 담화(談話)와 우리말의 뒤(後)가 합쳐져서 생겨난 합성어이다. 보통 뒷담화라고  하면 뒤에서 남을 헐뜯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칭찬하는 말도 뒤에서 하면 뒷담화에 속한다. 


  누군가를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꾸며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에, 회복 불가능할 만큼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행위는 뒷담화 수준이 아니라 범죄 행위에 속하므로,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소프트한 뒷담화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뒷담화가 범죄 행위에 속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작품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년)다. 학창시절 아무런 죄의식 없이 치명적인 거짓말로 뒷담화를 퍼뜨린 ‘오대수’는 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 복수를 그대로 받는다.


  회복 불가능할 만큼의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지만, 새롭게 만나 십여 년 마음을 준 몇몇 친구들 때문에 한참 힘들었다. 여인들의 시기질투는 늙지도 않는 게 놀라웠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면 그 상처가 목까지 차서 자꾸 그 얘기를 하게 되었다. 심리학에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게 정신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나 자신이 싫어, 한동안 묵언수행을 하듯 지냈다. 그 동안 책도 한 권 써내기도 하고, 선정(禪定)에 들듯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을 자주했다. 태연자약하려 애썼다.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고통의 근원은 애착 때문이다. 시절인연으로 끝날 이들에게 애정을 준 나를 놓아주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진심으로 대했다고 해서 그들도 진심으로 대해야할 의무는 없다. 진심을 헤프게 준 내 잘못이다. 마음을 다치는 인간 존재의 비애 때문에 아팠다. 말을 하기 싫었다. 마음이 더럽혀진 듯한 나 자신이 싫었다. 그런 옹색한 나를 바라보는 일은 더 싫었다. 애착을 내려놓는 혹독한 훈련이구나 싶었다. 그걸 문득 깨닫는 순간 그들이 내 스승임을 알아 차렸다. 그러나 가슴으로 가기까지 또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뉴욕의 절친과 전화를 하다가 대학 때 관심종자에 별종인 선배 평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 선배 품평을 한 참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다니. 왜 이렇게 기운이 펄펄 나지? 밑바닥까지 내려가 있던 우울함이 한 방에 사라졌다. 남들의 온갖 고민은 다 들어주고 명쾌한 답을 얻어가게 하면서, 정작 나 스스로의 우울함은 치료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집착을 버리면 해결되는 줄 알았다. 잠시나마 그렇게 마음이 평온하긴 했었다.


  세상은 오행으로 돌아간다. 목, 화 토, 금, 수. 오행은 별들의 운행 리듬이다. 별들의 운행에 따라 사계절이 있고, 그 사계절이 우리 몸 안에도 있다. 우리 몸 안에도 목, 화, 토, 금, 수가 내재되어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니. 별이 폭파하면서 만들어지는 원소들로 생명체가 구성되었으니, 당연히 별들의 움직임이 우리 몸 안에 인식되어 있는 것이다.


  명리학에서 네 기둥의 여덟 글자에 오행이 잘 배치된 사주를 상급으로 본다. 물론 요즘에는 돈만 많으면 해결되지만, 의학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는 태과불급(太過不及)인 사주는 건강과 직결되었다. 오행이 골고루 있지 않고 치우쳐져 있거나, 한두 개 없는 사주는 나쁜 운을 만나게 되면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木 기운이 과하거나 약하면 간 쓸개 두통 신경계통을 주의해야하고, 火 기운이 과하거나 약하면 심장 고혈압을 주의해야하고, 土 기운이 과하거나 약하면 위장 비장 피부 근육 쪽으로 병이 오며, 金 기운이 과하거나 약하면 폐 대장 기관지 뼈 쪽이 약하며, 水 기운이 과하거나 약하면 신장 방광 생식기계통을 주의해야 한다. 물론 가족력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정도 은하계 별들의 운행에 따라 오행의 리듬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木 기운이 과하거나 약하면 분노조절이 잘 안되거나 기백이 없다. 적당히 있으면 봄의 기운처럼 추진력이 뛰어나고 계획을 잘 세운다. 火 기운이 과하거나 약하면 기뻐할 줄 모르거나 화를 잘 낸다. 적당히 있으면 늘 밝고 명랑하다. 土 기운이 과하거나 약하면 융통성이 없는 고집불통이 된다. 적당히 있으면 사고력이 뛰어나 중용의 미를 가지게 된다. 金 기운이 과하거나 약하면 세상만사가 슬프다. 자칫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 적당하면 감성적인 로맨티스트가 된다. 水 기운이 과하거나 약하면 두려움이 많다. 매사 겁이 많아 자신감이 떨어진다. 대인기피증이 올 수도 있다. 적당히 있으면 지혜롭고 처세에 능하다. 

  이건 거칠게 정리한 거다. 사주 명리학은 이렇게 단면적으로 보지 않는다. 전체 사주와 대운과 해운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같이 보고 간명(看命)한다.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하고, 쓸쓸할 때 쓸쓸해하고, 두려울 때 두려워하는 건 건강하다는 증거다. 그 반대일 때가 문제인 것이다. 봄이면 봄인 줄 알고 가을이면 가을인 줄 알아야 한다. 청춘이면 청춘인 줄 알고, 황혼이면 황혼인 줄 아는 게 지혜다. 별들의 운행에 역행한다면 인류는 멸종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내 속에 내재해 있는 목, 화, 토, 금, 수 오행의 기운을 다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도자도 아니면서 한동안 수도자처럼 수행하며 살았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서로 기를 주고받아야 한다. 지식과 지혜도 나누지 않으면 막힌다. 기가 막히면 죽는다. 겨우 죽지 않을 만큼 SNS에서 조금 소통하고 살았다. 몸 안의 오행을 다 사용하지 않고, 어느 한 오행을 억압하게 되면 마음의 병이 온다. 나는 목, 화 기운을 너무 사용하지 않은듯하다. 목, 화 기운을 너무 사용하지 않으면 금 기운이 태과(太過)해진다. 그러면 우울증이 오기 쉽다.


  인간이 하는 활동 중에 가장 많이 하는 게 말(言)이다. 말을 못하게 하면 폭력으로 나타난다. 하여, 누군가에게 하소연하지 못한 억울한 사람들이 ‘묻지마 폭행’을 하거나, 방화범이 되기도 한다. 보통 성인들은 하루 평균 16.000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여자는 그 배는 될 것이다. 인간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하루에 말로써 우리 몸 속 오행을 일깨워 기혈의 순환을 도와야 하는 기운이 있다. 그러니 말을 해야 한다. 글을 쓰는 것도 방법이지만 가장 좋은 것은 목소리를 주고받는 것이다. 목소리는 우주의 기운과 교감하는 수단이다. 소리 내어 책을 읽거나 시(詩)를 낭송하면 금상첨화다. 수다를 많이 떠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오래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불의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겸손한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  맹자가 말한 사덕이다. 


  사람들은 비난과 비판을 구분하지 못한다. 시비지심이 부족하다. 위정자를 혹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거는 그름이고, 비판하는 거는 옳음이다. 비판의식이 없다면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어떻게 독립을 했겠는가. 지성이 살아있다는 말은 비판의식이 살아 있다는 말과 같다. 


  사람들은 뒷담화를 할 때 주로 시기 질투로 누군가를 비난하기 때문에, 뒷담화라는 말이 좋지 않은 말처럼 회자되는 것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는 것도 뒷담화고, 같은 소설을 읽고 토론을 하는 것도 뒷담화다. 누군가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얼굴을 마주보고, 목소리를 주고받으며 뒷담화를 같이 하라. 남의 욕이나 비난도 상관없다. 그렇게 해서 한 생명을 살릴 수만 있다면 뒷담화 쯤이야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올드보이’에서처럼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인 뒷담화는 금물이다. 


  내 건강을 지키고, 남의 생명도 구하고, 목소리를 내어 말을 하다보면, 은연중에 자기 성찰도 하게 된다. 또한 뒷담화를 주고받으며 우의(友誼)를 돈독히 하니, 뒷담화의 효능은 일석 사조인 셈이다. 그러나 마지막엔 반드시 좋은 점을 찾아내어 칭찬으로 마무리하는 게 두고두고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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