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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시네리뷰]삼국지

조조의 눈물, 조조는 등으로 울었다

   조조는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이다. 삼국지는 진나라의 진수(233~297)가 편찬한 중국의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의 역사서이다. 이 역사서를 바탕으로 14세기에 나관중이 장회소설의 형식으로 쓴 장편 역사소설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국지는 이 삼국지연의를 말한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을 논하지 마라.

  이 말을 나는 도대체 언제 들었던가. 그러거나 말거나 삼국지를 읽지 않았다. 삼국지 아니라도 읽을 책은 넘치고 넘쳤다. 그러다가 2002년 민음사에서 ‘이문열의 삼국지’가 출간 되었다. 일단 사야 한다. 솔직히 고백하면 난 그 책을 읽긴 읽었지만 책을 손에 놓는 순간 다 까먹었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정도가 생각나고, 위, 촉 오나라의 싸움이라는 것도 생각나고, 조조가 진궁을 참수하고 눈물을 보였다는 것과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적토마와 여포와 초선의 사랑과 주유의 아내 소교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었다. 수많은 인물과 지명과 지략들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아들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온 엄청 두꺼운 한권짜리 삼국지를 읽게 되었다. 별안간 삼국지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열의가 불타올랐다. 그러나 요즘 시력이 날로 나빠져 독서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책을 보다 쉬고 싶으면 영화를 검색해서 보곤 했다. 그러다 중국CC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삼국지’가 있는 걸 발견했다. 2010년에 만든 거였다.  


  드라마 삼국지가 얼마나 원본에 충실했느냐는 상관없다. 수많은 작가들이 나름대로 각색하고 번역해서 만화도 만들고, 영화도 만들고, 컴퓨터게임도 만들지 않았는가.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드라마 삼국지’ 이야기다. 드라마란 인물 캐스팅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본다. 연출자는 PD면서 영화감독인 ‘가오시시’다. 그의 기가 막힌 인물 캐스팅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 그가 관상을 보고 캐스팅을 한 것처럼 삼국지의 인물들이 바로 그 배우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미스 캐스팅은 가정이입을 방해한다.   


  삼국지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184년 한나라의 조정이 부패하자 황건적의 난이 발생한다. 이에 조정(천자를 끼고 동탁이 모든 권력을 장악)에서 관군을 파견하는 한편 천하의 호걸들이 모여 난을 평정한다. 관군들 속에 조조가 있고, 의병들 속에 도원결의를 한 의형제 유비, 관우, 장비가 있다. 난은 평정되었지만 천하의 제후들이 패권다툼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유비는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가 있는데다 인의로 조자룡을 얻고,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제갈공명을 얻음으로서 문무(文武), 양 날개를 다 가지게 된다. 유비는 제갈공명을 얻을 것을 물고기가 물을 만난, 수어지교(水魚之交)에 비유했다.


  제갈공명에 의해 천하는 위(조조), 촉(유비), 오(손권)의 삼분지계(三分之計)로 세력이 형성된다. 이 세 나라가 서로 천하를 통일하려고 온갖 권모술수와 지략을 겨루는 전쟁이야기이다. 그 속에 수많은 인간유형의 영웅호걸들이 명멸한다. 드라마 삼국지는 단연 조조가 주인공이다. 물론 제갈공명의 압승이다. 


  조조에게도 순욱과 정욱 같은 책사가 있었지만 조조 스스로가 뛰어난 정치가며, 비범한 책략가며 문장가였다. 반면에 유비에게는 하늘이 내린 천년에 한번 날까 한 인물 제갈공명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노숙과 주유가 있었다. 그래서 삼국지는 조조가 일당백을 상대하는 것 같다. 모든 제후들과 모든 영웅호걸들이 조조와 싸운다. 그러나 조조는 천자(天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한다. 적벽대전에서 촉오 연합에 크게 패한 거 외는 늘 승기(勝氣)를 잡고 있었다. 


  조조가 간웅(奸雄)으로 회자되고 유비가 의로운 인물로 후대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나관중이 촉한(蜀漢)정통론의 시각으로 썼기 때문이다. 유비는 한 황실의 종친이다. 그러니 그가 한의 적통이고, 조조가 간웅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 왕조의 운명은 벌써 끝나 있었다.     


  조조로 분한 배우 젠빈천은 조조의 현신 같다. 어디 조조뿐이겠는가. 유비로 분한 위허웨이는 유비의 현신 같고, 관우로 분한 우영광은 관우의 현신 같고, 장비로 분한 캉카이는 간데없는 장비 같다. 특히 제갈공명으로 분한 루이의 캐스팅은 탁월하다. 수많은 영화의 제갈공명으로 분한 어떤 배우보다 루이가 가장 제갈공명다웠다. 윤관를 쓴 그의 눈빛과 목소리와 거위부채를 든 몸가짐과 걸음걸이와 의상까지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 전란 속에서도 제갈공명은 늘 흰색에 가까운 옷을 입었다. 이 드라마 삼국지의 성공은 캐스팅에 있다. 


  작년 5월부터 보기 시작한 95회분 삼국지를 세 번 봤다. 몰아서 보는 날도 있고 못 보는 날도 있었다. 처음 볼 때는 스토리 쫒아가기에 바빴고, 두 번째는 인물 파악하기 바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볼 때는 거실 중앙에서 거의 서서 보았다. 영웅들의 지략 대결을 보고 있노라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데 어찌 감히 앉아서 볼 수 있단 말인가.


  세 번째 볼 때 나는 비로소 소파에 앉아 조조의 눈물을 보았다. 유비는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그러나 조조는 딱 세 번 운다. 그 중 한 번은 등으로 운다. 첫 번째 눈물은 여포의 책사였던 진궁(동탁에게 쫒기는 조조를 살려준 적이 있다.)이 끝까지 의를 굽히지 않고 죽음을 택했을 때다. 두 번째는 총명해서 가장 아끼는 다섯째 아들 조충이 둘째 아들 조비에게 독살 당했을 때다. 조비가 조충을 독살한 걸 알게 된 조조는 조용히 돌아눕는다. 그 때만큼 조조의 등이 작아 보인 적이 없다. 조조는 등으로 울었다. 세 번째는 적벽대전에서 패해 쫒기는 신세가 되어 화용도에서 관우와 운명처럼 마주쳤을 때다. 관우는 조조가 준 적토마를 타고 있고, 조조가 준 푸른 군포를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조조는 관우를 사랑했지만 ‘짝우정’으로 끝나고 말았다. 온갖 금은보화와 미녀와 적토마까지 주었으나 관우는 유비에게 돌아갔다. 조조는 관우에게 죽여 달라고 한다. 그러나 관우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조조에게 길을 터 준다. 조조의 눈물은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위한 눈물이 아니다. 자신의 우정이 짝우정이 아니었음을 알고 흘리는 눈물이다. 관우가 조조에게 보여준 우정은 대대손손 빛날 것이다.


  조조가 울 때 당연 나도 울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유비가 울 때는 딱 한번 눈물이 났다. 그것도 유비 때문이 아니라 조자룡 때문이다. 조자룡이 장판전투에서 단기 필마로 조조의 십만 대군을 뚫고 유비의 아들 유선을 구출해서 유비 앞에 데려 갔을 때였다. 조조가 마음만 먹었으면 조자룡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조조는 인재를 절대 죽이지 않았다. 조조가 가진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였다.  


  조자룡은 조조에게 투항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끝까지 유비에게 의리를 지킨다.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건 그만큼 의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조조는 자신의 깊은 마음을 몰라준 진궁과 관우가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러나 관우는 화용도에서 조조를 살려 보내주었고, 조조는 손권이 보내온 관우의 목에 향나무로 몸을 만들어, 문무백관을 다 거느린 융숭한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서로 적(敵)이었지만 그들의 우정은 완벽했다. 군자보다 소인배가 더 위험하다는 말은 여기에도 해당된다. 조조나 관우중 하나라도 소인배였으면 그들의 우정 또한 없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충의(忠義)든 전부를 걸어야 아름다운 거다. 한 자락 접고 전략적인 사랑과 우정과 충의란 적에게 접근할 때나 필요하다. 요즘은 슬프게도 사랑도 우정도 충의도 이해득실을 따진다. 삼국지가 불멸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인물들 때문일 것이다. 충의를 지키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다. 특히 조조에게. 조조는 주군을 배신하고 그에게 투항하는 자는 어김없이 죽였다.


  제갈공명도 유약하고 무능한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죽을 때까지 충의를 지킨다. 마음만 먹었다면 황제인들 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그는 역사에 남은 것이다.

  - 너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삼국지에서 어떤 선택의 순간에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다. 인간은 역사에 기록되어 불멸하길 꿈꾼다. 후대사람들이 기억하는 한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새롭게 발견한 인물이 ‘사마의’다. 조조 버금가는 책략가다. 그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조씨 일족의 견제를 견디며 20년을 기다린다. 그는 오래 살아남았고, 결국 그의 손자 ‘사마염’이 천하를 통일하게 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고 죽는다.  


  인생은 하루를 더 살아도 아쉽고 

  하루를 덜 살아도 충분하다  


  위나라 황제가 된 조조의 아들 조비가 아우 조식을 소환한다. 가면 죽임을 당할 지도 모르므로 문우들이 만류하자 조식은 위의 시를 읊조리고 간다.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어찌 저런 시를 읊을 수 있단 말인가. 조식은 ‘칠보시(七步詩, 일곱 걸음에 지은 시)’로 죽음을 모면한다. 


  콩대는 솥 아래서 타고, 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네.

  본디 한 뿌리에서 났는데, 왜 서로 들볶아야만 하는가.


  조식은 ‘사람은 천 년간 취할 수 없으나, 시(詩)는 만년을 향기로울 수 있네’ 라는 시도 남긴다. 조조의 재능을 이어받았다고 본다. ‘때론 붓이 칼보다 더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고, 훌륭한 격문(檄文) 하나가 10만 대군보다 낫다’며 조조는 문인들을 아꼈다.


  삼국지는 매력적인 인물이 한 둘이 아니다. 조조의 책사 ‘순욱’이 거문고를 타며 ‘30리 밖 바람소리는 마음으로밖에 들을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과 손권의 책사 ‘노숙’이 주공에게 예를 갖춰 서신을 쓰다가 죽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제갈공명이 빈 성의 성루에서 거문고를 타는 모습은 단연 압권이다. 사마의는 복병이 있을 거라며 퇴각한다. 제갈공명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퇴각하는 사마의는 진정한 공명의 지음(知音)이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영춘화가 피었다고 난리다. 나는 이 봄, 꽃보다 삼국지 인물들의 향기에 빠져 지낼 것 같다. 조조의 눈물을 그리워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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