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부부란 무엇인가

누군가를 안다는 건 그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만나면 안 되는 사람끼리 만났다. 그들은 일평생 뜻이 맞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다정하게 말하지 않는 아버지가 싫고, 아버지는 싹싹하지 않는 어머니가 싫었다. 그게 다가 아닌지도 모르지만 두 분이 왜 금슬이 좋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전문용어로 풀이 하자면 아버지는 정화(丁火) 불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계수(癸水) 물로 태어났다. 정화를 꽃으로 봤을 때 계수는 서리로 본다. 정계충(丁癸沖)이다. 꽃이 피기도 전에 서리가 내린다는 뜻에서 충으로 본다. 그래서 이런 일간으로 태어난 사람끼리는 절대 결혼하면 안 된다. 일평생 불화가 끊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한 걸 어떡하나. 요즘 사람 같으면 삼년을 못 넘기고 다 이혼할 것이다.

  집안은 언제나 권위적인 아버지의 기분 여하에 따라 저기압과 고기압을 오갔다. 내 기억으로 집안은 언제나 저기압이 지배적이었다. 왜 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는 것 같았을까. 실상은 그렇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럼 일간이 충(沖)이 아니고 합(合)이 든 부부는 어떠할까. 일간이 합이든 부부를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 한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란 뜻이다. 일간이 합이든 사람끼리 부부로 만나려면 여러 생 동안 엄청난 복(福)을 저금해 두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 부부들은 보리개떡을 먹고 살아도 사이좋게 오순도순 산다. 

  아무튼 아버지와 어머니는 악연이었다. 서로에게 전생의 빚이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어머니의 빚이 훨씬 커 보였다. 

  첫째가는 여성이란 뜻의 ‘알파 걸’들이 결혼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기사를 자세히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심리학자의 글이었다. 대부분의 알파 걸들은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자라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남자에게 절대 지지 않으려는 ‘아마조네스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 보다 우월한 남자를 만나면 그 품에 안겨 편하게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그 남자를 경쟁상대로 생각한다. 그러니 자신 보다 우월한 남자를 만나기가 어렵다고 했다.

  알파 걸들의 불행은 결국 권위적인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못 받고 자란 딸들에게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알파 걸은 아니지만 그 기사에 어쩜 그렇게 공감이 가는지. 스스로 잘난 줄 아는 남자를 보면 거부감이 왔다. 학벌 좋고 직업 좋고 집안 좋은 잘난 남자들의 그 은근한 오만이 한 눈에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제인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에서 지적한대로 편견일 수도 있다. 잘생기고 능력 있고 돈 많은 남자는 다 오만하다는 편견.

  대부분의 알파 걸들은 전혀 권위적이지 않은, 자신의 아버지와는 정반대인 착한 남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착한 남자는 당연히 세상과의 싸움에서 패할 확률이 높다.

  궁합이 별로인 부부는 세상과의 싸움에서 패하게 되면 깨지기 십상이다. 부부궁합이 별로라는 것은 둘 사이의 결속이 느슨하다는 뜻이다. 삶의 복병을 만나게 되면 언제든지 해체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궁합을 보는 것이고, 삶의 복병을 만나도 거뜬히 이겨나갈 라이센스를 가진 전문직 남자가 인기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이런 생각조차 차별일 수 있다. 전문직여자들이 집에서 가사 일을 하고 아이를 키워줄 남자를 찾기도 한다. 극히 드물지만 말이다.

  늘 내 삶을 돌아볼 때면 언제나 그 매듭은 아버지에게서 멈춘다.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 가부장제도에 짓눌려 평생을 인내하며 사는 어머니를 향한 연민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 그런 집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이십대. 결론은 가부장제도가 아니라 궁합이 별로인 부부였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60년 간 성격 급하고 독단적이고, 남에게는 잘 베풀면서 유독 어머니에게만 너그럽지 못한,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며 살았다. 하여 자식에게만 목숨을 걸고 살아온, 그런 어머니가 드디어 쓰러지셨다. 일본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세살에 생모가 죽고 세상천지에 혼자였다고 했다. 결혼을 했는데도 남편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자식 세 명이 둥지를 다 떠나가자 어머니는 걷기 시작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를 읽으며 그렇게 눈물이 난 것은 어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좀머씨 이야기’와 어머니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나는 안다. 왜 좀머씨와 어머니는 걷기만 했는지.

  어머니는 큰 재래시장이나 시내의 교동시장에서 집까지 걸어 다녔다. 김 하나 사러 걸어갔다 오고, 부추 한 단 사러 걸어갔다 오고, 비누 하나 사러 걸어갔다 왔다. 그저 구경만하고 돌아올 때가 더 많기는 했다. 내처 걸으면 두 시간이 걸리지만, 가다가 아무 길거리의 건물 화단 턱에 앉아 쉬었다가 가면 세 시간도 걸린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 걸으면 아무 잡생각이 안 난다. 얼마나 자유롭노, 걸을 수 있다는 게... 다리가 아파 쉴 때면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을 훨훨 나는 새를 보면 제일 부럽다. 저 새들은 날아다니니 다리는 안 아프겠구나, 하고. 

  누군가를 안다는 건 그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다. 하물며 혈육인데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저 생각만 해도 눈앞이 붉어지는 것을. 어머니의 아픔과 슬픔은 한 마디로 외로움이었다고 생각한다. 팔십 여 년을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외로움. 좀머씨도 마찬가지. 궁금하면 책을 사 보시라.

  훨훨 나는 새가 부러울 때부터 다리가 아팠을 것이다. 약을 먹고 걸었다. 그러나 그 약도 점점 듣지 않았다. 드디어 진통제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다리가 아파서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 순간 어머니의 다리는 휘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엄청 민망한 복장을 하고 비싼 자전거를 타는 라이드 동호회 회장이고, 여자회원이 많은 게이트볼 동호회 회장이다. 회원들에게 매일 사비로 삶은 계란 하나씩과 믹스커피를 제공한다. 일주일에 한번 씩 차로 드라이브도 시켜준다.

  동갑인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는 정정하시다. 다섯 명이 하는 부부모임이 있다. 부부사이가 나쁜듯해도 아버지는 그런 자리에는 어머니를 반드시 동반했다. 그 다섯 부부 중 남편 셋은 세상을 떠났고, 한 명은 중풍으로 휠체어 신세라고 했다. 오로지 아버지 혼자 푸르렀다.

  어머니는 인공관절 수술을 했고 40여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아버지는 물리치료기로 어머니 다리 운동을 시키고, 시장 봐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를 한다. 어느 날 어머니 휴대전화로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가 받았다.

  - 오늘 느그 엄마 목욕시켰는데 등에 때가 엄청 많아 나오더라...

  세상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버지가 어머니 목욕을 시켰다고? 60여 년 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전생 빚을 다 갚은 모양이다. 어머니를 바꿔 달라고 했다.

  - 엄마, 이제 아버지인데 섭섭한 거 없지? 그렇게 아버지가 요즘 엄마를 사랑하니까 원도 한도 없지? 얼렁 고해성사해 봐.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지?

  어머니는 행복이 가득한 웃음을 웃었다.

  아버지의 마음이 변화된 건 자식들의 효심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특히 오빠와 남동생의 효심이. 자식 셋은 모두 어머니 편이다. 셋이 똘똘 뭉쳐 어머니를 간병했다. 40여 일 동안 입에 혀처럼 굴던 어머니가 없는 집에서 아버지는 깨달은 바가 큰 듯했다.

  요즘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오늘 아버지가 뭘 해 줬어?, 하고 묻는다. 그럼 어머니는 오늘은 느그 아버지가 비빔국수를 해 줬다, 하고 말한다. 

  부부란 무엇일까. 결혼해서는 안 되는 사람끼리 만나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전생의 빚을 주고 받아야하는 사이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60여 년 간 전생 빚을 갚을 사람이 요즘 세상에는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복을 저금한적이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