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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복을 저금한적이 있나요

복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실하다. 성실함은 인격의 핵심이다

  자는 시간 빼고 늘 뭔가를 하고 있다. 일평생 소파에 들어 누워 연속극을 본 적이 없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보거나, 신문을 꼼꼼히 보거나, 집안일을 했다.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간명지에 사주를 풀고, 반려견과 산책을 한 후, 씻기고 닦이고 말려주었다.

  집과 오피스텔을 오가며 시장 봐 오고, 시장 봐온 것들로 음식을 만들었다. 겨울이면 늘 집에 수정과가 있다. 며칠 전에는 레몬즙과 계피가루를 넣은 사과 쨈을 만들었다. 책상에 앉아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혹은 싱크대 앞에서 요리를 하는 게 가장 즐겁다. 누군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얼른 음식을 만들어 먹여야 마음이 편하다.

  한 20년 쯤 잠옷에 앞치마를 두르고, 책상과 싱크대를 오가며 살았다. 젊었을 땐 쇼핑도 좋아했지만, 요즘은 거의 백화점을 가지 않는다. 둘러보면 모두 버리고 갈 것들밖에 없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더 이상 집안의 물건이나, 신발이나, 옷이나, 가방을 산다는 게 죄를 짓는 것 같다.   

  별명이 ‘리폼의 여왕’이다. 있는 옷 고쳐 입고, 누군가 주는 가방이나 옷 얻어 입으며 검소하게 사는 게 참으로 마음이 평온하다. 백화점은 욕망이 들끓는 곳이다. 파는 사람도 쇼핑하는 사람도 모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무한궤도를 돌고 있는 듯하다. 그 궤도에서 한 발 살짝 빠져나온 듯 한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Peaceful! 평화롭다. 비로소 맑은 물에 천천히 헤엄치며 사는 늙은 잉어 같다.

  늘 종종거리며 살았지만 돌아보면 ‘복(福)’을 저금한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때 남들은 모두 공부할 때 책에 빠져 늘 하늘과 바람과 숲과 별과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일류 대학을 가지 못했다.

  대학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디자인학과에 갔으면 디자인에나 충실할 일이지, 도서관에 앉아, 세상의 번뇌는 혼자 다 짊어진 듯, 펜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듯, 되지도 않는 소설을 쓴다고 20대의 그 푸르른 청춘을 다 날려버렸다. 한없이 복을 저금해야할 시기에 말이다. 낮밤을 뒤바꿔 살았다. 낮밤을 뒤바꿔 살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새벽 서너 시에 잠들고, 아침 10시 11시 쯤 일어난다. 비즈니스로 점심 약속을 하기는 매우 힘든 바이오리듬을 가지고 있다. 

  돌아보면 한 번도 빈둥거린 적도 없는데, 딱히 복을 저금하지도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복’이란 극히 세속적인 것을 말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고, 고액 연봉을 받으며, 강남의 수십 억 짜리 아파트에 살고, 좋은 차 타고, 근사한 식당에서 외식하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을 두르고, 마음껏 해외여행을 다니며 사는 삶을  말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 보다 엄청 열심히 ‘복’을 저금하고 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잘 산다면,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는 전생이나 전전생에 복을 많이 저금해 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는 천벌 받을 것 같은 사람이 잘 사는 걸 이해할 수가 없다(불교의 윤회설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 일단 좋은 대학을 들어가려면 청소년기 때 힘들게 공부해야 한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가 있다. 오빠와 난 각자의 방에서 공부를 했다. 내 방문을 열면 오빠가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빠의 방문이 닫혀 있을 때도 난 오빠가 책상에 앉아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6년을 오빠가 누워서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책상에 엎드려 자다 아침에 학교를 갔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서울의 너무 높은 대학의 의대에 지원해서 낙방을 했다. 오빠는 한양대 공대를 갔다. 대기업에 십년 쯤 다니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건설업을 시작했다. 잘 모르긴 하지만 돈을 많이 벌었다. 우리 집이 부도가 났을 때는 말없이 생활비를 보내 주었다. 정말 내게 한 번도 돈을 보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한 날에 그저 통장에 돈만 넣어 주었다.

  군에 간 오빠의 일기장을 훔쳐본 적이 있는데, 돈을 많이 벌어 ‘남을 돕고 사는 삶’이 꿈이었다. 오빠는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 나와 피를 나눈 오빠지만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아들 둘을 성당에서 결혼을 시킬 때도 축의금을 받지 않았다. 그동안 오빠가 다른 사람에게 한 축의금의 단위를 생각하면 놀라운 결정이었다.

  현역일 때는 성당을 지어주기도 했다. 지금은 사업을 접고, 머슴처럼 성당보수공사를 해주며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사이 사진작가가 되어, 요즘은 재능기부를 하며 살았다.

  큰조카는 일본에서 살고 둘째 조카는 파리에서 산다. 남들이 보면 복이 많은 것 같지만 평생 옆에서 지켜본 나는 안다. 오빠는 평생 복을 저금하며 살았다. 의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늘 주위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청소년기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복을 저금하는 거다. 20대 때도 마찬가지. 그 이후로는 덕을 베풀어 복이 마르지 않게 해야 한다. 덕은 꼭 물질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겸손하게 살며, 옳고 그름을 분별해서 행동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대개 부모 탓을 한다. 그럼 고아들은 모두 도독이 되어야 맞는다. 절대 아니다. 역학자로서 한 마디 하자면 다 팔자대로 산다. 그 팔자라는 게 그 사람의 성품이나 생활태도와 거의 일치한다. 운이 나쁜 사람은 인생을 제멋대로 산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뜻을 세운 바가 없으니, 길을 찾을 수가 있나. 청소년기 때는 공부 안하고,  20대 때는 술 퍼먹고 놀다 좋은 곳에 취직 못한다. 겨우 취직을 했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니지 않고, 불평불만만 가득해서는 금방 때려치우길 반복한다. 운이란 반드시 돌아오고, 운이 나쁜 사람도 꿈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다르게 산다.

  꿈이란 나침반과 같다. 어느 시간, 어느 곳에 있어도 나침반은 북두칠성을 가리킨다. 너무 원대한 꿈은 꿈이 아니다. 꿈도 괘도 수정을 하며 가는 거다. 하늘에는 북두칠성만 있는 게 아니다.

  운이 없는 사람은 대개 부정적인 사고를 하며, 전부 남의 탓을 하며, 감사할 줄 모르는 특성이 있다. 그런 사람은 ‘복’을 전혀 저금하지 못한다. 그나마 있던 복도 닥닥 긁어 탕진해 버린다. 그러면서 복 있게 잘 사는 사람들을 욕한다. 부모 잘 만나서 그렇다고, 줄을 잘 서서 그렇다고, 운이 좋아서 그렇다고. 다 맞는 말이다. 부모 잘 만난 게 아니라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니 못난 부모로 만들지 않은 것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니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어 운이 좋아지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실하고, 착실하게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산다. 난 나 자신을 안다. 남들 공부할 때 공부 안하고, ‘글쟁이’가 되겠다고 미쳐 날뛰었으니 그 과보(果報)를 당연히 받는 거다. 이렇게 겸허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상담일을 하며, 짧은 글이라도 쓰고 사는 삶에 자족한다. 가난하게 살다보면 ‘가난의 미학’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일단 욕망에 꺼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이 좋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은 0.6%도 안 된다.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로또복권 당첨되기   보다 어렵다. 그러나 나는 어쩌다가 명리학 공부를 하게 되어 미약하게나마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말을 해주며,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으니, 다른 글쟁이들에 비해 복 받은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명리학 공부’를 한 게 나로서는 ‘복’을 저금한 일이 된 셈이다.  

  제발 젊은이들에게 말하노니, 나라 탓, 부모 탓, 사회 탓 하지 말고 복을 저금하길 바란다. 복을 저금한 적도 없으면서 복 받길 원한다면 도독의 심보와 같다. 사과가 익어 따먹으려 해도 몇 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 벌레도 잡아주고, 천둥 번개도 견뎌야 하고, 약도 쳐 줘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산사과도 가을이 되어야 하고, 산사과를 따러 산에 올라가야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복을 저금하는 일이 호락호락하겠는가. 

  지금 당신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복을 저금하는 순간이다. 

  ‘인격의 핵심은 성실함이다.’ 이 말이 참으로 좋다. 천재는 성실함을 이기지 못한다. 성실함은 모든 복의 근원이다. 복은 검소함에서 오고, 덕은 겸손함에서 온다. 성실함에는 검소함과 겸손함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허영에 찬 사람이 성실할 수 없고, 교만한 자가 성실할 수 없다. 매일매일 복을 조금씩 저금하세요. 어느 날 당신의 항아리에 복이 가득 넘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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