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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수다예찬

선사시대에도 불안과 공포에 떠는 영혼을 위무하는 고독한 주술사는 있었다

   언제나 ‘왕따’였다. 

  아니 스스로 학교 전체를 ‘왕따’시켰다. 여고시절, 혼자 책 보고, 혼자 사색하고, 혼자 걷는 아이였다. 두 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거리를 혼자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랬었던 아이였으니, 물론 동창모임에 나갈 리가 없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지금 뉴욕에 사는 J 한 명 뿐이었다. 친구란 ‘지음(知音)’, 즉 나의 소리를 알아듣는 한 두 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알 듯 말 듯한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졸업 삼십 주년 ‘사은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우리학교에서 배출 된 문필가는 너뿐이니 그 날 와서 ‘축사’를 낭송하라고 했다. 동창 회장의 여러 번의 간곡한 전화와 방문으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그 날이 되어 한복을 입고 축사를 써서 낭송을 했다. 여고시절 때의 추억과 교장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을 적당히 섞은 글이었다. 그해 출간된 작품집 ‘낮술’을 은사님들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삼십 년 만에 만나는 동기들과 은사님들... 특히 허기진 내 영혼에 끝없이 책을 소개해준 도덕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 너무 기뻤다. 

  그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면 자고 싶은 사람은 엎드려 자라고 했다. 그러면 반 이상 아이들이 바로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이 그 어떤 시간보다 정신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시간이었다. 도스토엡스키,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버지니아 울프, 스탕달, 제인 오스틴, 에밀레 브론테, 샬럿 브론테, 너대니얼 호손, 토마스 하디... 대문호들의 수많은 명작들을 소개해 주었다. 또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소개해 주었던가. 

  평소 동창 모임을 우습게 여겼다. 여자들이 모여 수다를 떨다 가는 것쯤으로 비하했다. 물론 맞다. 여자들끼리 옷 차려 입고 괜찮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다 헤어진다. 그러나 수다를 우습게보면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소통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자연재해와 사나운 맹수들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도와야 했던 선조들의 DNA가 우리의 피 속에 본능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구가 필요한 것도 인간의 본능이다. 

  생각해보면 처녀시절에도 그렇게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정보를 주고받은 아이들이 대체적으로 시집을 잘 갔다. 결혼을 해서도 여전히 여자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며 정보를 주고받으니, 아이들도 잘 키웠다. 세월이 흘러 자신들의 삶의 숙제가 끝난 후에는 다시 소녀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며 노년을 외롭지 않게 보낼 것이다.

  그러나 선사시대에도 고독한 주술사(현대의 종교인 혹은 예술가)는 있었다. 그들은 불안과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무해 주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존경했다. 지금도 종교인이나 예술가를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다란 결국 말을 주고받는 대화다. 대화를 하며 서로를 비춰보고 존재감을 느끼는가 하면 성찰하기도 한다. 또한 살아가는 지혜와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주고받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러므로 남자들에게도 수다예찬을 권한다. 


  한번도 ‘아줌마’(비하 발언 아닙니다.)들과 어울려 보지 않은 나는 처음엔 거부감이 왔다. 그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과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잘 맞지 않았다. 그런데 몇 번 만나다 보니, 그 중에서 여고 때는 전혀 몰랐던 ‘보석’같은 동기 몇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겸손하고 지혜롭고 남의 아픔을 제 아픔인양 안타까워하고, 늘 남을 위해 봉사할 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 동기들 보는 재미로 나가기 시작해 이젠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동창 모임에 열심히 나간다. 나가다 보니 모두들 나름대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헤쳐 나가고 있음이 보였다. 저 ‘아줌마’들의 힘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구나 싶었다.


  “너무 그렇게 볼 거 없다. 저 화환 하나에 몇 가족이 먹고 사는가를 생각해 봐.”

  경조사에 화환을 보내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내게 슬쩍 지나가는 말로 ‘보석’같은 한 동기가 말했다. 꽃을 키우는 화원과 꽃 도매상과 꽃을 파는 가게와 화환을 배달하는 사람들... 

  나는 부끄러웠다. 글을 씀네 하고, 세상은 위선과 허위의식으로 포장되어 있다고 늘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나에게는 세상을 보는 지혜와 따뜻함이 부족했다. 경조사에는 서로 참석하여 축하 해 주고, 애도해 주었다. 사람들과 섞이는 걸 낯설어하고, 더더욱 상부상조하며 사는 것이 낯설던 나는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은 새처럼 하늘 높이 떠서 살 수도 없고, 호랑이처럼 산에서 홀로 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던 나는 ‘사은의 밤’을 치른 이후 동창 모임을 보는 사시(斜視)가 교정되었다. 이젠 한 동안 못 보면 그 ‘아줌마’들과의 수다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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