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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매화

매화는 꺾어져도 꽃을 피우고, 늙어 속이 텅 비어도 꽃을 피운다

  화괴(花魁), 꽃의 우두머리. 

  가장 일찍 핀다고 붙여진 이름. 매화의 다른 이름입니다. 

  ‘장미과의 갈잎 중간키 나무인 매화는 꽃을 강조한 이름이다. 열매를 강조하면 매실나무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매화는 다른 나무보다 꽃이 일찍 핀다. 그래서 매실나무를 꽃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화괴’라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화괴라, 역시 매화는 매화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네이버 지식백과의 매화에 관한 글을 조금 더 옮겨 보겠습니다.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기에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라 한다. 아울러 색에 따라 희면 ‘백매(白梅)’, 붉으면 ‘홍매(紅梅)’라 부른다. 우리나라 화가의 경우 대개 18세기까지는 백매를 선호했으나 19세기부터 홍매를 선호했다. 중국 양쯔 강 이남 지역에서는 매화를 음력 2월에 볼 수 있다. 그래서 매화를 볼 수 있는 음력 2월을 ‘매견월(梅見月)’이라 부른다.

  왜 이 가을에 매화타령이냐고요? 실은 제가 감히 호(號)를 하나 가지고 싶었습니다. 어느 술자리에서 오랜 지인이 아름다운 가(佳)자를 하나 주겠다고 말을 한 후 얼마의 시간이 흘러, 후배 시인이 ‘선배는 만날 때마다 언제나 현재가 가장 좋은 것 같다’며 현재 현(現)자를 하나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쭙잖게도 가현(佳現)이란 호를 써고 있습니다. 호를 별로 쓸 데는 없고, 이름을 지어 줄 때 ‘작명증(作名證)’의 두인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늘 제 마음 속에는 꺾어진 매화가 꽃을 피우던 기억이 남아 있어 ‘매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싶어 사전을 찾아보았던 것입니다. 

  이십대 때 한 창 유행했던 꽃꽂이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아직 봄 냄새도 희미하게 맡아지지 않을 무렵이었습니다. 손이 시릴 정도였으니까요. 그 날의 꽃꽂이 소재는 매화였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오신 선생님은 꽃눈이 겨우 맺힌 매화 가지를 하얀 달 항아리에 꽂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긴 가지를 꽂았다가 다시 빼서는 손으로 훑듯이 잘게 꺾으면서 선을 만들었습니다. 두 번 째 가지도 그렇게 매화를 엄지로 잘게 꺾어서 원하는 선을 만들었습니다.    

  매화는 흰 백자 항아리에 고아한 맛을 풍기며 공간을 장식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이렇게 가지를 꺾으면 매화가 금세 시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매화는 꺾어져도 꽃을 피운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 꺾어진 매화는 꽃을 피우며 한 달 가까이 향내를 풍겼습니다. 꽃이 지고난 후에도 그 매화 가지를 버리지 못하고 드라이플라워처럼 말려 아름다운 선을 감상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 고궁엘 갔습니다. 아마 비원을 거쳐 후원으로 돌아간 기억이 나니 창경궁어름이었을 겁니다. 손이 시리고 코끝이 시린 날이었습니다. 누구하고 갔냐고요? 네, 분명 남성이긴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그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시간이 어중간하여 산책삼아 비원엘 갔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어느 기자와 인터뷰를 한 후였던 것  같습니다. 그 기자의 다음 약속 시간까지 같이 비원을 산책했던 거지요.

  아무튼, 아주 오래된 고목나무에 매화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자태가 너무 아름다워 그 나무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세상에 그 고목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속이 텅 빈 그 고목나무의 매화꽃은 세상의 어느 꽃보다 제일 먼저 피었습니다. 그 순간 옛날 꺾어져도 꽃을 피우던 매화가 생각났지요. 그래서 제가 ‘매화’라는 호를 가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매화는 꺾어져도 꽃을 피우고, 늙어 속이 텅 비어도 꽃을 피웁니다. 매화처럼 나이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래도 화괴는 좀 그렇지요? 매화는 기생 이름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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