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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대중목욕탕

그렇게, 우리는 쓰던 물건 다 두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 대중목욕탕엘 간다. 수증기가 자욱한 대중목욕탕에서 땀을 흘리며 목욕을 하고나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서이다. 십여 년 전 강남 세브란스 옆 아파트에 살 때 일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 건너편에는 소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하나는 오래된 삼층 건물의 이층에 있고, 하나는 새로 올린 십오 층 빌딩의 지하에 있었다. 

  당연히 새로 올린 빌딩의 지하 목욕탕의 시설이 훨씬 좋았다. 크기도 세 배는 될 것이다. 나는 물론 새로 지은 건물의 목욕탕엘 갔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항상 조용해서 좋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표도 받고 음료수도 팔고 청소도 하는 아주머니가 갈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욕을 하며 청소를 했다.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 늘 화를 내고 욕을 하며 일을 하니 얼굴이 마귀할멈처럼 변해 있었다. 


  왜 사람들이 시설이 이렇게 좋은 사우나탕을 두고 오래된 이층 목욕탕을 가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손해인 것이다. 우선 자신의 얼굴이 미워지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 아주머니, 힘들게 아주머니가 하지 마시고, 여기 청소 담당하시는 분에게 하라고 하세요.

  하루는 어찌나 욕을 해대며 일을 하길래 내가 한 마디 했다. 그 아주머니는 나를 힐끔 돌아봤다.

  - 청소 담당 아주머니 안 계세요? 나가면서 주인에게 청소하는 분 써시라고 말해 줄께요.

  내가 말했다. 그 아주머니는 대꾸 없이 뚱한 표정으로 거칠게 밀던 밀대를 부드럽게 밀기 시작했다. 그 뒤 그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변해 그 목욕탕도 사람이 많아졌다. 내가 가면 그 아주머니는 나와 눈도 안 맞추고 조용히 자신의 일만 했다. 


  요즘도 아이를 울려가며 때를 심하게 미는 젊은 엄마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2000년 전후 강남에 살 때만 해도 그랬다. 특히 명절 전날 가게 되면 거의 지옥수준이었다. 엄마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너 댓살 된 꼬마의 우는 본세도 만만찮아 보였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기를 쓰고 울고, 수증기는 자욱하고, 앉을 자리도 없고, 바가지도 없다. 그렇게 아수라장인 곳에서도 바가지를 세 개씩 차지하고 절대 남에게 양보 못하는 여자가 있었다.

   작은 바가지 하나와 큰 대야 두 개. 작은 바가지로 물을 퍼 큰 대야에 담아 썼고, 다른 큰 대야 하나에는 자신이 들고 온 목욕용품이 든 바구니를 넣어 두었다. 내가 보기에 목욕용품이 든 바구니는 그냥 바닥에 내려놓으면 되고, 굳이 큰 대야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작은 바가지 하나면 충분했다. 작은 바가지로 물을 퍼서 바로 몸을 씻으면 된다. 한 아주머니가 목욕용품이 든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대야를 자신이 좀 써자며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바가지 세 개를 차지한 여자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 내가 먼저 차지한 건데 왜 그러세요? 목욕 바구니 더러운 바닥에 놓기 싫다잖아요.

  - 아니, 나갈 때 씻으면 되잖아요.

  - 싫다는데 왜 그러세요? 저 보다 일찍 오시든지 그러셨어요?

  - 정말 이기적이네...

  돌아서는 여자가 중얼거렸다. 한 마디만 더 대거리했다가는 난투극이 벌어질 것 같았다. 둘 다 오리지널 서울 말씨를 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심혈을 기울여 때를 밀었다. 마치 때를 밀지 않으면 지옥 불에 떨어지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나중에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 쯤 그 여자도 같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여자는 그저 자신이 가져갔던 목욕용품이 든 바구니만 들고 나왔다. 다 두고 나올 거면서 그렇게 욕심스럽게 바가지 세 개를 껴안고 망측스럽게 발가벗고 싸움을 하다니...

  우리네 삶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대중목욕탕에서 작은 바가지 하나 깨끗이 쓰고 두고 나오듯, 그렇게 우리는 써던 물건 다 두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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