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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Nov 11. 2021

어수선한 여자가 깔끔쟁이 남자와 사는 법

깔끔쟁이 남자와 결혼을 했다

첫 줄에서부터 고백을 하자면, 나는 정리를 잘 못하는 타입이다. 굉장히 늘어놓고 사는 사람이다. '약'도 정리를 해서 어딘가에 넣어두지 않고 눈앞에 보여야 먹는 타입이다. 


반대로 남편은 보기와 다르게 아주 깔끔쟁이에다가 정리정돈에 익숙한 사람이다. 서장훈만큼은 아니고, 허지웅만큼은 아니지만, 내 기준에서는 깔끔쟁이다. 


물론, 서장훈도 허지웅도 이혼을 한 사람들이고, 정형돈처럼 더럽게 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혼을 안 해서 한두 명을 가지고 통계를 내긴 그렇지만, 나는 깔끔을 떠는 남자보다는 차라리 더러운 남자가 결혼을 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깔끔을 떠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아니, 결혼을 하고 보니 깔끔쟁이이더라. 가 정답이다. 

시댁에서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이 가방에 있는 열쇠를 찾겠다고 가방을 뒤집어서 탈탈 터는 장면이 나왔다. 시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가방 안에 정리정돈 안 하고 막 넣어 다니는 사람 이해가 안되더라"


시어머니는 가방 안도 정리정돈이 늘 되어있는 타입이었다. 이 정리정돈 재능은 남편에게도 유전자로 전달되었는데, 나는 불행하게도 깔끔을 떠는 엄마의 유전자가 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늘어놓고 살지만 깔끔은 떠는 사람이었다.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이 '구경하는 집' 이냐고 왜 이렇게 먼지 한 톨 없냐고 한 적이 많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아주 늘어놓고 사는 타입이다. 


신기하게도 회사 책상은 깔끔하게 하고 다녔는데, 집은 그와 반대로 아주 늘어놓고 사는 타입이다. 20살부터 집을 나와서 살면서부터 특히 심해졌는데, 이러한 버릇 때문에 나는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잘 피해서 걷는 버릇이 있었다. 


남편은 이와 반대로 발에 걸리적거리는 걸 싹 치우는 버릇이 있었다. 고양이가 집에 들어온 이후로 특히 더 이 능력은 발휘되었는데, 청소기를 손에 들고 다녔다. 시도 때도 없이 청소기를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청소기 소리가 너무 싫었다. 밤낮없이 청소기를 들고 오는 남편에게 밤 9시 이후 청소기 금지령을 내렸으며, 그 이유는 다른 집에 민폐이기 때문이라고 적절히 둘러댔다. 회사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꽤 있는 편이어서 조금만 늦게 퇴근하면 8시에 집에 들어오기 때문에 청소기를 돌릴 시간은 짧았다. 


그 말인즉슨 남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청소를 하는 타입이었다. 

남들은 청소를 안 하는 것보다 청소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 하지만,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나는 먼지가 나는 청소기보다 물걸레 청소를 선호했다. 



그런 정리정돈을 못하는 나에게도 깔끔을 떠는 영역이 있다 



바로 설거지와 빨래였다. 나는 설거지와 빨래가 조금만 쌓였다 싶으면, 바로바로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원래부터 이런 성격은 아닌 것일 텐데, 혼자 살 때 설거지를 담가두고 까먹고 명절에 본가에 내려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곰팡이가 생긴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설거지가 나오면 바로바로 해치워야 했다. 


빨래도 마찬가지로 담가둔 상태로 시골 큰집에 내려갔다가 아끼던 티가 곰팡이가 생겨서 버린 이후로 빨래도 바로바로 할 수 있게 소형 애기 세탁기를 사서 큰 옷이 아니면 조금만 빨래가 쌓여도 바로바로 해버렸다. 


깔끔의 이면, 짜증 


남편과 외출을 하면, 밥을 먹다가 옷에 무언가가 튀면 엄청 짜증을 내면서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내 입장에서는 짜증은 나겠지만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인가 싶었다. 그저 옷이었고, '빨면 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애시절 남편은 옷에 무언가가 튀면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찝찝해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끼는 옷도 아니고 그냥 옷인데 빨면 안 되나 싶었다. 


이러한 습관은 밥 먹을 때도 발현된다. 나는 신혼이랍시고 흰색 탁자를 샀고, 흰색 탁자는 곧잘 착색되고는 했다. 남편은 특히 김치찌개나 빨간 국물이 튀는 음식을 먹을 때는 밥을 먹다가도 튀는 국물 자국들을 바로바로 닦아야 했다. 휴지와 물티슈가 항상 구비되어있었다. 


이러한 점들은 싸움으로 이어졌다.


깔끔쟁이 남편과 사는 게으른 부인은 싸울 수밖에 없다. "무엇이 싸움으로 이어질 것이냐 당연하지 않나" 싶은 것이 남편의 입장이었고, 나는 "밥 좀 편하게 먹고 다 먹고 한꺼번에 치우면 안 되냐"라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깔끔은 예민으로 변화하고 

어수선함은 더러움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중첩이 되고 아다리가 맞아가는 부분도 생긴다. 

나는 물건이 오면 반품을 할지 몰라 물건을 살펴보고 나서 택배 상자를 버리는 편인데,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신혼 초기에 곧잘 싸우고는 했다. 물건을 반품하려는데 상자가 없어서 상자를 사야 하는 일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충격은 낯선 곳에서 마주친다
특히 시댁에서.
 

명절을 맞이해서 명절 선물을 한가득 싣고 시댁으로 향했다. 각종 과일 상자를 비롯한 안마기 상자, 식용유 상자, 참치 상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자들이 한포대가 넘게 나왔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것들은 분리되어서 집 밖 분리수거장으로 나가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면서, 남편이 집에서 많이 참고 있구나를 느꼈다. 치우는 것이 일상인 집에서 커온 남편은 치우지 못하게 하는 내가 답답했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 집은 늘어놓는 편이었다. 집에 오는 시간이 다른 모든 식구들이 집에 들고 온 선물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정리되어서 나갔다. 모든 식구들이 집에 다 들어오는 저녁이 되어서야 


"이건 뭐야?" 


라고 물어보는 질문에 지루하지도 않은지 엄마는 열심히 설명을 하고 모든 가족이 다 확인을 하고 관심을 가진 후에야 정리되었다. 간혹 자랑하고 싶은 선물은 집에 손님들이 와서 관람을 마칠 때까지 그 자리에 전시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어머~ 이건 뭐야? 딸이 사줬어?" 

"응 딸이랑 사위가 사줬어" 


이 말을 하기 위해 선물은 한 달 동안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말 그대로 자랑이 되었다.


나는 그런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5분 만에 해체되어 정리되는 선물들이 섭섭했다. 선물을 고르고 사고 주문해서 받아서 챙기는 그 과정을 온전히 느껴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남성진 편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물을 주면서 기대하는 리액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분한 리액션을 바라고 그것이 성에 차지 않으면 섭섭해한다는 것이었다. 선물의 실용성과 받은 사람의 상황보다 준 사람의 마음을 더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남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손님이 있는 편이었고, 시댁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게 뭐냐고 물을 사람들은 식구가 전부였다. 그렇기에 전시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꺼내 쓰는 것이 시부모님의 마음 표현이었다. 


친정집에서는 오히려 친정엄마가 청소를 여러 번 하던 것을 바꾸려고 노력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늘 화장실은 쓸 때마다 락스로 청소가 되어있고, 집에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던 '모델하우스' 같던 집, 설거지는 담가진 적이 없고 바로바로 했던 엄마가 이제 설거지를 놔두고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이런 변화가 신기하고 의문이 들었다. 엄마는 나에게 말을 했다. 비염이 있는 우리를 위해 청소를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누군가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이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아


엄마의 지인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후, 엄마는 바뀌기로 했다. 설거지가 있으면 외출하지 못했던 엄마는 점점 바뀌어갔다. 매일 3번 이상 청소하던 청소기도 하루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매일 같이 바닥에 무릎을 대고 걸레질을 하던 물걸레 청소는 밀대로 대체되었다. 화장실을 쓸 때마다 냄새가 난다며 락스 청소를 하던 것도 하루에 1번에서 2번 정도로 줄었다. 


엄마는 마음이 더 편해 보였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 수록 바뀌기 힘들다고 했다. 내가 해오던 것을 하지 않는 것, 하지 않던 것을 다시 시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알고 있는데, 나이 50이 넘어서 엄마는 바뀌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던 아빠도 설거지를 한다. 시대는 변하고 사람은 적응하면서 산다. 


나도 정리정돈병이 있는 남편과 적응하면서 산다. 반대로 남편도 나에게 적응하면서 산다. 적응한다라고 쓰고 참는다 라고 읽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1. 치우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밤 9시 이후로는 청소기 대신 돌돌이 밀대로 대체하기
2. 박스는 물건을 개봉하고 반품여부를 알려주고 박스 바로 버리기 
3. 밥 먹으면서 흰 탁자에 튄 국물은 나도 밥 먹으면서 휴지로 바로바로 닦아내기 


나는 깔끔하려고 노력하고, 남편은 너저분한 나를 참는다. 




이것이 어수선한 여자와 깔끔쟁이 남자가 한 집에서 사는 방법이다. 

우리는 다른 환경의 집에서 커왔고, 또 독립하여 서로 각자의 집에서 살다가 다시 둘이 한집에서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는 결혼을 해 신혼집이라는 공동경비구역을 살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공동의 목표와 합의점을 찾아야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총기사건이 발발 할지도 모를일이다. 총구가 서로를 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를 이해해야하고, 먼저 나를 이해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집을 이해하기 위해 오늘도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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