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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Nov 09. 2021

청첩장을 두번 찍었습니다

"너네 알아서 해라" 를 믿으면 안되는 이유

청첩장은 누구 마음에 들어야 할까?

결혼할 때 어디에 제일 힘줬어?


누군가는 결혼식에서 '드레스'에 힘을 주고, 누군가는 '웨딩사진'에 힘을 주고, 누군가는 결혼식장 손님 '밥'에 힘을 준다. 힘을 준다라 함은 더 신경 쓰고 투자를 한 다는 뜻이다. 가치관이기도 하고 결혼식 하는 사람들, 혹은 집안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반대로 사람들이 결혼 준비한다고 하면 제일 돈을 쓰지 말아야 할 품목으로 '청첩장'을 많이들 꼽았다. 알림용이기도 하고 요즘엔 모바일 청첩장을 더 선호하는 탓이기도 했다. 내 생각도 그러했고, 남편 생각도 그러했다. 청첩장은 여느 카페에서 정보를 본 것처럼 청첩장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샘플을 신청해서 그중에서 청첩장을 골랐다.


나는 그중에서도 식전영상을 무료로 제작해주는 사이트의 쿠폰을 주는 사이트에서 청첩장을 신청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이미 후보로 올려놓은 상태였다.




나는 웹디자이너로 일했던 친구에게 부탁해서 얼굴 누끼를 따서 얼굴이 들어간 청첩장을 준비했다. 꼼꼼하게 두 번 세 번 수정을 해준 친구의 수고로움 덕분에 색다른 청첩장이 완성되었다.


셀프 웨딩을 준비하는 이유나 목적도 여느 결혼식처럼 정신없고 기억나지 않는 것보다 나만의 결혼식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컸기 때문이었다. 나와 남편 그리고 친정집까지 모두 우리의 청첩장을 만족해했다.


'너네들이 알아서 해라'는 말은
'너네 마음대로 해라' 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첩장을 시댁에서 달가워하지 않았다. 애들 장난 같다며 진중한 걸로 바꾸라고 말하셨다. 내가 간과한 부분이었다. "너네들이 알아서 해라"라고 했던 말은 진짜로 "너네 마음대로 해라"라는 워딩이 아닌데,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미 찍어 나온 청첩장을 바꾸라고 하셔서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멘붕이 왔다.


청첩장은 기본 개수가 100단 위이다.(지금은 50 단위도 생겼다) 한두 장을 더 찍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친척들이 많이 오거나 손님이 많이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게다가 처음 찍는 개수는 시댁에서 필요하다고 한 30~50개를 포함한 250개였다.


우리 집 친척들은 부산이나 경남권에 살았고, 식장은 서울 북부였다. 오기도 힘들거니와 내 친구들은 충청권에 살아서 오기가 비교적 쉬웠지만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아이를 대동하고 오기에는 서울 운전은 먼 거리였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청첩장 바꿔라



서울이 고향인 시댁에 맞춰 다리수술을 한 시외할머니가 오시기 편한 쪽으로 식장을 잡았지만 교류가 많은 친척들이 많지도, 손님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청첩장이 나 온상 황에서 꽤 고민에 빠졌다. 한편으로는 청첩장마저 우리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지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을 셀프로 준비하다 보니 셀프 웨딩은 원래 돈이 더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 셀프로 직접 하려고 하다 보니 드레스에서 어쩔 수 없이 돈이 덜 드는 쪽으로 택하게 되었다. 본식 사진도 뺐다. 하지만 이러한 속사정을 알리 없는 시어머니에게 원망이 드는 건 이기적이지만 현실적인 마음이었다.


왜 한번 보고 버릴 청첩장에 돈을 또 들여야 하는지 나는 원초적인 고민에 빠졌다. 나는 청첩장을 만들 때 누끼를 따준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친구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고작 10만 원 아끼자고 결혼식에서부터 책잡히고 갈래?



"너 지*이 알지?"

"알지. 결혼식에도 갔잖아"

"걔 결혼할 때 폐백 상차림 때문에 너랑 비슷한 경우가 있었거든. 제일 기본적인 거 10만 원, 그다음이 20만 원, 그리고 30만 원 이렇게 점점 가격이 올라가. 그런데 걔는 성격상 기본적인 것이나 안 하고 싶어 했거든. 사실 폐백 상차림은 먹는 게 아니고 가짜로 만들어서 본드칠 되어있어서 사실상, 대추 빼고는 사진용이란 말이지. 차라리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하는 거면 비싸도 그냥 하겠는데, 어차피 못 먹는 거니까 중간으로 하고 싶어 했어. 근데 시어머니가 폐백 상차림은 시댁 식구들한테 처음 선보이는 자리인데 무조건 30만 원짜리로 하라고 한 거야."


"그래서 내가 그때 해준 말이 있어.

만약에 네가 말한 대로 실용성을 따져서 20만 원짜리를 시켰는데, 마음에 잘 안 들게 나왔어. 그럼 그 책임은 모조리 네가 짊어져야 해. 근데 반대로 시어머님 말대로 30만 원짜리를 시켰는데 마음에 안 들게 나오면 그건 업체 책임이야. 겨우 10만 원 때문에 결혼하면서부터 책을 잡혀서 좋을게 뭐가 있어. "  


그리고 그 친구가 해줬던 조언은 나에게도 통했다. 나는 청첩장을 한번 더 찍었다. (시댁용으로)  결혼을 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청첩장이 다른 버전으로 2번 찍었던 것이었다.


나는 청첩장 드는 돈보다 앞으로의 시댁살이의 편안함을 택했다.


청첩장 드는 돈이야 아깝고 왜 내 결혼식에 내가 원하는 청첩장을 쓰지 못하는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나 또한 결혼이라는 것이 나와 남편의 둘만의 것이 아닌, 집안 행사라는 점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두 가지 버전의 청첩장 총 350장을 주문해, 그마저도 돈을 조금 아껴보겠다고 집에서 청첩장을 접어서 봉투에 넣는 작업을 퇴근 후 며칠씩 했다.


퇴근 후 하품을 하면서 기계처럼 청첩장을 접었다. 접고 접어도 많았다. 손님은 반절도 오지 않을 텐데 청첩장이 너무 많이 남았다.


결국 우리는 시댁과 친정에 각각 다른 버전의 청첩장으로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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