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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Nov 12. 2021

여자도 비뇨기과에 가야 하는 이유

어쩐지 마무리가 힘들더라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오전 중에는 좀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출근 준비를 한다. 출근 준비를 후다닥 마치고 뛰어나와 회사에 갈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혈뇨' 피오줌을 만나기 전까지.

화장실에서 나는 세어 나오는 비명을 참았다. 소변을 보는데 누군가 커터칼로 긋는 느낌이었다. 아니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화장실 용무를 볼 때 이렇게 아픈 게 말이 되나?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고 변기에 앉아 생각해보니 하루 전부터 화장실을 가도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 따라왔던 것을 떠올렸다. 마무리가 참 쉽지 않다. 무엇이든 마무리가 중요한 법인데, 나는 어려서부터 모든 일에 마무리가 잘 안 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제1 본성인 배뇨가 잘 안된다는 건 큰 일이다.


'잔뇨감'


우리는 이것을 잔뇨감이라고 부른다. 잔뇨감과 함께 볼일을 볼 때 찢는듯한 통증, 그리고 혈뇨 이 3가지를 한꺼번에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여성들의 흔한 질병. 빠르게 초록창에 검색을 해보자 인터넷 박사들로부터 병명을 확정 짓는다.


"방광염"

또 한편으로는 "여성 요로결석" 이 검색된다.

설마, 요로결석은 아니겠지.


나의 머릿속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나의 마음도 소용돌이친다. 걱정의 소용돌이가 머리와 몸을 지배해버렸다. 아니, 그런데 요로결석 때문에 이렇게 찢기는 느낌이 드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불안감이 나를 엄습한다.


남편이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요로결석이 얼마나 아픈지를. 얼마나 아프면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으셨나 봐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온다고 할 정도로 아프다는 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의 남편, 직장동료의 남자 친구가 요로결석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엄청 아프겠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는데, 그 일이 내일이 될 줄은 몰랐다.


자연치유도 되는 걸까?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참는걸 잘 못한다. 하지만, 자연 치유될까? 조금만 참아볼까?


이런 생각을 비웃듯 내 방광은 1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에 들락날락하게 했고, 그때마다 비명을 참으며, 지금 방광이 얼마나 아픈지 몸소 느끼게 해 주었다.


그래, 병원을 가야겠다.


근데 혈뇨를 보면, 어느 병원을 가야 하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검색을 통해 나온 곳은 산부인과보다 비뇨기과를 더 추천한다는 말들이었다.

저는 여자라 전립선이 없는데...
비뇨기과에 가야 하나요?


여자에게 산부인과가 있다면, 남자들에게 비뇨기과가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전립선이 없는데 비뇨기과를 가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방광염은 산부인과보다 비뇨기과를 가는 것이 더 빨리 낫는다고들 했다. 인터넷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건 모르겠지만, 여자인데 비뇨기과에 가려니 어쩐지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전립선이 있는 것도 아닌데 비뇨기과에 가야 하는 걸까?


그러는 동안에도 내 방광은 열심히 한 시간마다 화장실로 나를 소환했다.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없다. 내 몸에 양아치가 있을 줄은.


1시간마다 화장실로 나를 불러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소환당한 나에게 방광은 배뇨통을 안겨주면서 나에게 고통을 주었다. 한 시간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나의 손은 더욱 빠르게 검색을 이어갔다.


여자가 비뇨기과에 가도 되나요?


남편이 아래의 부산 백병원 비뇨 의학과 교수가 나온 유튜브 링크를 보내주었다.


http://asq.kr/ZzzuUBWv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도 비뇨기과에 가도 된다.

비뇨 의학과에서 세부 전문으로 여성 비뇨기 쪽을 할 수 있다. 배뇨장애를 전문으로 한다. 의학과에서도 나눠져 있다. 여성 비뇨기과가 따로 있는 경우는 없지만, 기본적인 항목이라 어느 비뇨기과를 가던지 다 진료는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걱정인형인 나는 또 하나의 걱정이 든다.

산부인과에 가면 굴욕 의자에 앉는다. 하면, 비뇨기과도 굴욕 의자가 있는 것일까?


다시 한번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없다. 잔뇨감, 배변장애, 요실금 모두가 비뇨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여자도 비뇨기과에 갈 수 있다. 의학과에서 세부전문으로 여성비뇨기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다만 남성 여성을 나눠서 비뇨기과를 나누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비뇨기과의 손님 반은 여성이라고 한다. 방광염은 여성이 더 잘걸리는 병이라고 했다. 질염만큼이나 비율이 높다고 한다. 20~30대에서 자주 발생한다.


비뇨기과에 처음 간 여자


사실 방광염은 비뇨기과, 산부인과, 내과, 가정의학과 에서 모두 처방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조금 더 빨리 낫는다는 비뇨기과에 방문하기로 하였다. 회사에서 제일 빨리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병원을 급하게 검색했다. 그나마, 평 중에 악평이 없는 곳으로 선택했다.


박** 비뇨기과.

오래된 듯 높은 듯 낮지 않은 건물을 삥삥 돌아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같은 건물에 산부인과가 있다. 잠시 망설인다. 그냥 산부인과를 갈까? 어쩌지 하면서 층을 누르지 못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상승한다. 얼떨결에 올라가면서 문이 열린 곳에 정면으로 보이는 곳은 '정신의학과'. 아, 정신의학과도 있네.라는 사이에 얼른 목적지의 버튼을 누른다. 찬찬히 살펴보니, 치과도 있고 병원 건물이었다. 건물주가 병원을 입주받았음에 분명했다. 특이하게 2층에 약국이 있고 1층에는 음식점이 있었다.


층마다 병원이 다르다 보니 층마다 엘리베이터가 섰다. 내가 내리는 층이 되자 조금 머쓱해하면서 두리번거리며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병원이 벌써 문을 닫았나. 하고 깜깜해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다가 문이 밀려서 어정쩡한 자세로 비뇨기과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경쾌하면서 아주 짧은 풍경소리 같은 음이 울린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병원을 정리를 하던 간호사들이 쳐다본다. 간호사들과 눈이 마주쳤다. 다행히 카운터에 있는 사람들은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자랑스럽게 쓰인 병원 이름만 봐도 의사가 남자인 것을 알아차렸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문진표를 작성한다. 문진표를 작성하자마자 안에서 의사가 나를 불렀다.


여자가 비뇨기과에 가면 듣는 질문


다행히도 산부인과 굴욕 의자는 없었다. 나는 의사를 붙잡고 나의 증상들을 줄줄이 읊었다. 잔뇨감과 배뇨 통증, 그리고 혈뇨까지. 의사는 나를 보더니 말한다.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되었죠? 지금 생리하는 중은 아니죠?"


의사는 열심히 무언가를 적는다.

내가 생리혈과 혈뇨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닌데 싶지만 어쨌든 의사는 물어봐야 할 의무가 있으니 물어보는 것이리라.


"마지막 성관계가 언제시죠?"


나는 흠칫, 프리스타일의 의사 선생님 말에 이게 과연 진단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나만 어색한 건지 의사는 태연하다. 내가 겸연쩍어하자, 의사는 다시 묻는다


"결혼하셨나요?"


지금까지 들었던 질문은 장소만 바꾸면 '산부인과'에서 들었던 질문과 똑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로울 것도 겸연쩍을 일도 없었다.


"소변 검사할게요"


소변검사가 있을 것이라고 네이버 초록창 인터넷 박사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침 병원을 들어서면서 마려웠던 소변을 참고 있었던 터라 엄청 반가웠다.


나는 간호사에게 종이컵을 받아 소변검사를 실시했다. 나는 병원 밖으로 나가 복도에 있는 건물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이 더 춥게 느껴졌다.


"검사 결과가 바로 나오나요?"


나의 질문에 친절한 듯 불친절한 목소리로 간호사가 대답한다


"기본적인 건 금방 나와요"


소변을 가져다가 간호사에게 전해주자 간호사는 어두운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의사가 나를 부른다. 나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 유일하게 불이 켜진 진료실 의사 앞에 다시 앉았다. 긴 터널을 지나오는 느낌이었다.  


"급성 방광염이네요"


생각보다 금방 진단명이 나왔다. 인터넷 박사들의 소견과 같았다.


"항생제 일주일 처방해드릴게요. 일주일 후에 약이 작용했는지 다시 소변 검사할 겁니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고 나온 비뇨기과 진료는 허망하게 끝이 났다. 일주일 약을 먹고, 다시 와서 검사를 하라고 했다.


"커피 드시면 안 되고요. 탄산음료도 먹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부부관계도 안돼요"


커피도 안된다니. 얼마 전부터 카페인을 끊고 있어서 너무 마시고 싶었지만 또 못 먹겠군, 아 탄산도 못 마시는구나. 근데 마지막 단어는 생소했다. 왜 먹는 것에서 그렇게 연결되는 거죠?라는 의문형을 지었지만, 의사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엄. 근. 진.


나는 비뇨기과의 어두운 문을 열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약국으로 향했다.

약국에서 약이 나올 동안 가만히 생각해본다. 나는 어두컴컴한 비뇨기과 병원 내부를 떠올린다. 그제야 비뇨기과이기 때문에 창문이 다 까맣게 차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유레카! 를 외치는 사이, 약국 약사가 내 이름을 부르고 약을 주면서 말한다


"참지 마세요"


"네?"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어본다. 물음표가 머리에 가득하다. 어떻게 비뇨기과를 가게 된 건지. 가기 전에 몇 번을 검색해본 건지 머릿속을 가득 찬 이상한 일들을 뒤로하고 물음표가 떠있었다.


"소변 참으시면 안 돼요. 화장실 자주 가세요"


그제야 나는 약사가 처방전을 보고 말을 해준 것을 알았다. 약만 보고도 내가 '방광염'이라는 것을 알았구나.

나는 터덜터덜 항생제 1주일치를 약국에서 받아서 어두워진 거리로 나왔다. 거리로 나오자마자 신기하게 타이밍 맞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나의 손가락이 엄마가 보고 싶었는지, 주머니에 넣은 폰으로 엄마에게 전화가 걸렸던 모양이다.


"전화가 걸렸는데 아무 소리 없길래, 별일 없지?"


"엄마, 나 방광염이래"


무슨 암 걸린 것도 아닌데 왠지 말하고 나니 서글펐다. 그런데 생각한 것과 다른 엄마의 대답이 들려왔다.


"힘들어?"


"방광염은 피로하면 걸리는 건데 옷 따뜻하게 입고 얼른 가서 쉬어라. 여자들은 요도가 짧아서 잘 걸리는 병이야"


엄마가 힘드냐고 물어본 게 거의 40이 되어가는 내 평생 처음이라는 것에 머리가 멈춰버렸는데, 역시나.

이어지는 잔소리 타임.


"찬물 마시지 말고, 따뜻한 물 먹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아침은 꼭 챙겨 먹고, 따뜻하게 입고. 탄산음료 먹지 말고..."


구구절절 잔소리가 이어졌다. 다 맞는 말이어서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약까지 다 받아 들자,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잡고 있던 걱정거리 긴장의 끈이 풀어지면서, 온몸에 힘이 풀린다.


마침 재택근무를 마친 남편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했다. 남편을 기다리며 패스트푸드점에서 감자튀김을 산다. 탄산음료를 금지당해 콜라도 없이 감자튀김을 입으로 쑤셔 넣었다. 에너지를 충전한 나는 남편의 차에 타서 남편도 가보지 않았다는 비뇨기과 간 썰을 자랑스럽게 쫑알쫑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자가 비뇨기과 간 썰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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