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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Nov 15. 2021

도로 한가운데서 차가 멈췄다

20만km를 달린 20년 된 차가 우리 집에 왔다

덜컹, 차가 울렁하더니 갑자기 나가지 않았다.

액셀을 밟아도 "웅웅"하고 으르렁댈 뿐. 그리고 보닛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인 건가.


도로 한가운데서 차가 멈췄다


우리는 그렇게 몇 주간 뚜벅이의 생활로 돌아갔다. 차는 인근의 카센터로 들어갔다.

원래도 차를 자주 타고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출퇴근을 모두 뚜벅이 생활로 살았지만, 그래도 주말에는 볼일이 있을 때는 차를 이용해서 다녔다.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 차는 이모부에게 물려받은 차인데, 2008년식 트라제였다. 무려 20만 킬로를 탄 차였다. 근 20년이 다되어가는 차였다.


이모부의 딸이 초등학생 때부터 태우고 다녔는데, 그 딸이 지금 대학 졸업반이 되었다. 그렇게 딸을 졸업시키듯 자동차도 이모집을 졸업해 우리 집으로 왔다.


 20년 된 차를 신혼 차로 쓴다고?


20만 킬로를 넘게 탄 차를 이모부는 주기 미안해했다. 신혼에 이렇게 큰 차는 필요가 없다면서, 차라리 중고로 조그 만차를 사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차를 살 돈이 없었다.

아마도 우리는 이모부에게 차를 받지 않았다면, 계속 뚜벅이로 살았을 것이다.

아빠의 말이 작용하여 이모부의 차는 우리에게 왔다.


차가 오고 나니 차만 온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캐피털이나 차를 살 때 대출을 끼는 것들은 대출을 다 갚는다고 자동 해제되는 것이 아니었다. 명의 변경을 하러 가니 걸려있는 대출이나 미납금에 명의변경이 되지 않아 시청을 2번 방문하였다. 모두 정리가 되어야 명의변경이 가능했다.


명의변경만 한다고 끝나는 건 아니었다. 해마다 내야 하는 자동차세, 환경부담금, 유지비가 들었다. 오래된 차는 유지비가 많이 들었다.


차가 없을 때는 뚜벅이 생활이 너무 당연해서 무궁화를 타고 진해까지 가서 벚꽃구경을 하고 올라오거나 화성에서 서울까지 퇴근 후 와서 잠깐 얼굴을 보고 헤어진다던가 했었는데,


결혼하면서 차를 얻게 되면서 우리의 생활 반경은 많이 달라졌다.

신혼때는 모두 새걸로 한다고 하던데, 어쩐지 우리는 중고가 더 좋았다.


너와 함께 달렸던 순간들


그렇게 20년을 달린 차를 받고서도 우리는 벌써 5년을 신나게 탔다. 거의 세워두고 주말에만 타거나 명절에만 사용하고는 했지만, 그래도 집에 반려동물이 생기고, 병원 갈 일이 생기고, 기분 전환할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집 '라제'는 열심히 달렸다.


크리스마스 전날 내가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해 응급차에 실려서 서울로 이송되던 날에도 

남편은 눈물범벅이 되어서 정신을 잃지 않고 가기 위해서 이를 악다물고 트라제를 몰고 달렸다.


혼자 살 때 짊어지고 있던 2인용 소파를 버리지 않고 동생을 주겠다고 우겨서 차에 이고 가다시피 집어넣고 지방까지 달렸던 적도 있다.


겨울이면, 종종 시동이 잘 꺼져서 일부러라도 동네를 배회하면서 시동을 걸어서 운전을 하기도 하고


길에서 구조된 고양이가 우리 집에 눌러앉게 되면서 동물병원 가는 날에도 귓가에 온전히 울어대는 목청 높은 목소리도 오롯이 받아냈다.


남편이 처음 맡은 결혼 축가를 연습하는 곳이 되어주기도 했다.

동생이 암 진단을 받아서 서울 병원으로 가야 할 때 병원까지 데려다 주기도 하고,

매년 김장을 한 김장김치를 가지러 가는 길에도 함께했다.

바다가 보고 싶어 강원도로 달려가기도 하고, 코인빨래방에 빨래를 하러 가는 날에도 함께했다.


내가 장거리 운전이 무서워서 아빠가 올라와서 차를 몰고 가라고 전날 회사 앞 골목에 주차를 했다가 아침에 주차 위반 딱지를 떼인 적도 있었고, 하이패스가 말을 듣지 않아서 하이패스 요금 고지서가 날아오기도 했었다.


그래도 눈이 내리는 날이면, 주차장으로 제일 먼저 뛰어가 앞유리를 박스로 덮어주고는 했었다.



사람은 경력직이 좋다지만,
차는 경력이 많을수록 골골대는 곳이 많았다.


딱 10년만 우리가 더 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했던 것은 무리였을까.

사실 작년에도 엔진 냉각수 파이프에 구멍이 나서 엔진 보링을 하느라 차를 종로까지 보내서 수리한 적이 있었다. 이때도 돈이 만만치 않게 들었었다. 


이후 5등급 저감장치를 장착하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는 나라님들의 소식에 저감장치를 단 이후로 차는 더 골골 댔다.


완전히 차가 길에서 멈추기 전까지 골골골 골 대는 차를 달래며

"제발 저감장치 의무 부착기간 3년만 더 버텨다오" 바라면서 다녔는데, 아무래도 무리였나 보다.


길 위에서 멈춰버린 차를 끌고서 레커를 불러 가까운 카센터로 향했다.


미션이 나갔다고 했다. 문제가 컸다. 최소 150 정도 든다고 했다. 중고를 구해서 해서 이정도 견적이 나왔다고 했다. 


아니면, 멈춘 차를 렉카를 불러서 다른 카센터를 가서 견적을 다시 봐야하나 고민했다. 

열심히 검색을 해보고, 양가 아버지들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친정아버지도, 미션이 나간거면 그정도 든다고 했다.


우리 '라제'를 보내줘야 할지 고쳐서 더 달래며 타야 할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차에 관심이 없지만,
우리 집 차를 애틋해한다.


나는 생각보다 물건에 애정이 많은 사람이다. 잘 쌓아두고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우리 집 차는 이모부에게 물려받은 차지만, 또 그만큼 깨끗하거나 새 차는 아니었지만, 정말 많은 추억을 함께했다.


갑자기 고장이 나서 골골대고 큰 수리비가 나오자, 카센터에서는 폐차를 권유했다. 그도 그럴 것이 150 정도의 수리비에서 조금만 더 돈을 보태면 중고 소형차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차에 관심은 없지만 우리 집 차가 애틋해서, 고쳐서 쓰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차도 갈 때가 된 것을 아는지 그동안 골골거리면서도 함께 했던 차가 새집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 시동을 걸었을 때 푹 하고 수명을 다하게 된 경우가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비용면이나 효율성에서는 폐차가 답일지도 모른다.

나는 차에 관심은 없지만 우리 집 차가 애틋해서, 고쳐서 쓰기로 했다.

나도 우리집차가 이렇게 애틋해질줄은 몰랐다.


'우리 집 자동차 '라제'야 힘을 내다오.

자동차가 사람도 아닌데, 보내기에는 섭섭한 마음이 들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마음속으로 전하면서 제발 힘을 내어주기를, 조심조심 타야겠다.


오래 탄 자동차가 고장이 나 카센터에서 '폐차'를 권하는 상황을 2번째 맞닿들이자,

왜 세종이 황희 정승의 사직(퇴사)을 3번이나 물렀는지(불허)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어쩐지 우리 집 자동차가 퇴직하는 날이 오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미련하다고 할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그날이 오면, 염을 해줘야겠다고 했다. 막걸리도 뿌려주고 해야겠다고.


막상 우리집 온날에는 그런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 날이 오면, 차를 가져본적이 없어서 무지한 새내기들에게 와서 고생한 차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팽카를 폐차하면서 펑펑 울던 개그맨 팽현숙 아줌마의 모습이, 왠지 내 미래의 모습은 아닐까 싶어서 웃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그냥 '차'는 '차' 일 뿐인데 가족처럼 추억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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