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천당, 촬영 지옥
결혼이라는 천당에 가기 위해서는 건너야 하는 지옥불이 있는데, 바로 '촬영 지옥'이다.
아무리 작은 결혼식을 하고, 셀프 결혼식을 해도 모바일 청첩장에 들어가는 신랑 신부 사진 촬영을 건너뛸 수는 없었다.
특히나 우리 부모님들은 그런 사진을 보는 걸 소소한 즐거움으로 삼던 분들이기에 내가 셀프 웨딩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은 바로 '결혼사진'이었다.
결혼식에 입고 들어가는 드레스보다 더 예쁜 드레스를 빌리게 된 행운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진행은 '서울대공원'에서 하게 되었다.
남편은 영등포에서부터 헬륨 풍선을 사서 배달하는 아저씨 차를 타고 서울을 가로질러왔다.
결혼은 한 번인데 왜 촬영은 3번 해야 하죠?
첫 번째 촬영은 한복 촬영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결혼 준비 카페에서 이벤트 하는 한복집을 찾아가 한복을 빌렸다. 그런데 어리숙하게 우리만 찾아간 곳에서 이벤트가로 빌린 한복은 전혀 예쁘지 않았다.
그렇게 어리바리하게 얼을 타면서 궁으로 향했다. 궁은 한복을 입으면 입장이 무료였다. 한복을 봐주는 헬퍼 이모님의 존재조차 모를 시절이었다. 그냥 그렇게 한복으로 환복하고 간 궁에서는 도와주는 친구 하나 없이 내가 짐을 들고 다니면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어주시는 분도 본인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계셔서 싼 가격에 거의 봉사해주듯이 찍어주러 오셨는데, 아마 내 생각에 이분도 거의 사진을 처음 찍으러 오셨던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사진을 몇 장 찍지도 못했는데, 궁 관계자가 와서 사진 촬영 허락을 맡았냐며 나가라고 했다.
결국, 아무 소리도 못하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한옥마을로 왔다. 그렇게 어렵게 한복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외할아버지가 예쁜 한복을 지어주실지는 까맣게 모르고.
그리고 두 번째 촬영은 실내 촬영이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곳의 이벤트 촬영이라, 아침 첫 시간이었다. 우리는 차도 없었지만, 렌터카를 빌려서 강동까지 갔다. 아침시간에 밀릴까 봐 미리 출발을 한 탓인지 30분 일찍 도착해 전화를 했다.
사진 찍어주시는 분이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밥 먹고 있던 참이었다며 신경질을 내는 통에 처음 시작점에서부터 삐끗거렸다. (분명 공지에는 드레스를 입어봐야 하니 일찍 와서 입어보는 걸 추천한다고 쓰여있었는데.) 2평 남짓의 드레스까지 대여해서 실내에서 1시간가량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시간보다 거리에서 차를 타고 온 시간이 더 길었다.
그렇게 두 번째 촬영이 끝났지만, 3번째 촬영이 남아있었다. 일명 '야외 촬영'이었다. 이쯤 되니 남편이 신경질을 냈다. 왜 작은 결혼식인데 촬영을 3번 해야 하냐고. 촬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헬퍼 이모님까지 미리 섭외를 했다. 예쁜 드레스도 빌렸다.
서울대공원은 입구에서 코끼리 열차를 타고 올라와야 한다. 장소를 찾지 못해서 구두를 신고 걸어 다녔다. 장미원에서 찍기로 하였는데, 장미원에 소풍을 온 유치원생들과 마주쳤다. 나는 그들이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이나 사탕이 빌린 드레스에 묻을까 한참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점점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우와 공주님이다"
나는 이 한마디에 내가 빌려온 드레스에만 집중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당황했다. 아이들의 눈에는 드레스를 입은 내가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님 같았나 보다. 점점 아이들은 나를 빙 둘러싸기 시작했고, 몇몇 아이들은 드레스를 고사리 손으로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상황을 발견한 선생님이 부랴부랴 다가와 아이들을 제지하면서 아이들을 인솔해가셨다.
촬영이 고생스럽기만 하다고 생각했다. 장소가 낯선 초보 작가는 나에게 표정이 어색하다면서 계속 타박을 했다. 카메라 앞에서 얼어버리는 나는 제대로 표정을 짓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표정이 많이 없는 편인 것 같기도 하다.
"결혼을 어렵게 해야 쉽게 안 헤어지고 잘 산다고 하더라고요"
그 무렵 결혼 준비로 인해서 마음고생이 있던 터였다. 다른 집안 분위기로 예단 예물을 생략하기로 했지만, 엄마는 진짜로 안 해갔다가는 혹시나 딸이 미움을 받을까 봐 전전 긍긍하고 있었다. 친구들 중에서 거의 끝 순번으로 결혼하는 통에 친구들이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를 지켜보았는데, 정말 술술술 진행이 되어서 눈떠보니 식장에 들어가고 있더라.라는 친구들이 많았다.
혹자는 남자 쪽에서 결혼을 더 원해야 진행이 잘되고, 여자 쪽에서 결혼을 원하면 진행이 잘 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던 터였다. 화장실에서 환복을 하며 드레스 헬퍼 이모는 나에게 결혼하는 사람이 얼굴이 어두워서 되겠냐며 말했다.
"결혼이 쉽지 않네요"
나는 그 뒷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모님은 눈치를 채고 말하셨다
"결혼을 어렵게 해야 쉽게 안 헤어지고 잘 산다고 하더라고요"
이 말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오늘 처음 본 이모님의 한마디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가끔은 정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위로를 받는 순간들을 만나곤 했다.
결코 작지 않은 '작은 결혼식'의 함정
물론, 나는 결혼을 한 뒤에 주변에 웬만하면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것을 권했다. 하루에 다양한 콘셉트로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효율성에 비하면 나와 남편은 가격에 중심을 두고 3번이나 고생을 했다. 나는 3번의 웨딩 촬영을 모두 합쳐도 50만 원이 들지 않았다.
밖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은 변수가 많다. 돈이 적게 들었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우리의 형편이 그러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모두가 똑같이 찍는 스튜디오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한 일이었다.
돈이 없이 시작한 '작은 결혼식'이었기에 최대한 손품을 팔아서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누군가의 열정 페이가 들어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스냅 촬영을 할 때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사진이 아니었다.
고생을 한 우리의 그날도 많이 생각나지만,
나는 한옥마을 갔을 때 우리를 보며 결혼하냐며 이쁘다고, 잘 살라고 덕담을 해주던 할머님들의 말과 눈빛, 헬퍼님의 찐이던 조언, 그리고 서울대공원에서 마주친 어린이집 아이들의 눈빛과 말이었다.
나는 낯선 곳에서 낯선이 들에 게서 뜻하지 않은 위로를 많이 받았다.
이래서 사람들은 많은 이들의 축복과 축하 속에서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싶었다.
나의 결혼식이 누군가에게도 행운이 될 수 있다면
물론, 나의 결혼은 우리 가족, 시댁 가족들에게 모두 기쁜 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누군가에도 작은 행복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결혼식도 남편 학교에서 했다. 교우회관에서 결혼을 하면 결혼식 비용을 장학금으로 '재학생'인 후배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결혼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물론 연예인들이나 진짜 기부를 잘하는 사람들처럼 결혼 금액을 기부할 형편은 안되었지만, 작게나마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작은 결혼식의 중대한 역할을 한 3번의 결혼 스냅은 누군가에게는 환상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어주었던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와 남편에게도 제일 중요한 기억이 되었다.
누군가는 결혼식을 제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은 결혼식장에서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작은 결혼식' 혹은 '셀프 결혼식'은 결코 작지 않고 간단하지 않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의미부여를 하는 나의 버릇에서 시작된 크나큰 비극이었을지도 모른다.
심플을 좋아하는 남편이 따라와 준 것만으로도 나는 고마웠고, 남편에게 결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라고 한다면, 나는 다시는 못할 것 같다. 친구들에게도 그냥 스튜디오에서 하루 날 잡아서 찍어버리라고 말했다.
먼저 결혼한 친구도 똑같은 말을 했다.
"한번 더 하라고 하면 정말 잘할 것 같긴 한데, 2번은 못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