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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Dec 21. 2021

아빠의 새해 소원 엽서가 도착했다

아빠의 소원이 궁금해졌다

우리 집은 새해에 함께 모여서 '일출'을 보러 간다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내가 결혼을 한 이후로는 서로의 생활이 바빠져서 함께하지 못한 적이 많지만, 아빠는 그런 행사를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아빠와 새해 행사를 갔던 건 2015년 마지막, 내가 결혼하기 전이었다. 동생은 피자집 알바를 하느라 새해가 오는지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었고, 엄마는 교회에서 새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날 남자 친구와 함께 아빠와 셋이 시청 앞으로 '타종식' 행사를 갔었다. 새해 소원 풍선을 날리는 행사 대신 엽서에 새해 소망을 적어주면, 1년 후 집에 보내주는 행사가 있었다.


그때 남자 친구에게 잘 보이겠다고 생각 없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갔다가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아빠의 생일은 1월 1일이다.

그래서 아빠 생신 겸 아빠가 근무지를 많이 옮겨 다녔는데 근무지로 항상 여행을 가서 해돋이나 새해 행사를 봤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많이 쫓아다녔고, 머리가 조금씩 크면서 귀찮아졌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식구들이 각자 할 일이 많았다.


경상도 남자인 아빠는 자식을 사랑하는 법이나 말을 한 적이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이모부)의 입을 빌려서야 아빠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정도였다.


늘 아빠가 하는 "딸은 시집가면 끝"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애였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 성인이 되기까지 결혼을 하고도 나는 아빠의 소원을 궁금한 적이 없었다.


2016년 새해엽서가 집에 도착한지도 모르고 나는 결혼을 해 신혼집에 있느라 아빠의 엽서가 도착한지도 까먹고 있었다.


나는 결혼을 한지 몇 년이 지나서야 친정에 갔다가 식탁에 있던 아빠의 새해 소원 엽서를 보게 되었다.



아빠의 소망은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


그걸 보는데 아빠가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 아빠는 정말 말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지금의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크게 싸우고 새해 행사를 가지 못했을 때 나는 어두운 방에서 이불을 반쯤 덮은 채 자는 아빠의 등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허벅지 운동을 해야 한다는데 환갑이 지나고 나서 아빠의 다리는 생각보다 더 빨리 앙상해졌다.


현실주의자들은 새해가 크게 의미가 없고, 해돋이도 그냥 지난해를 보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나는 이기적이라 나의 행복이 효도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내가 행복해지는 길만 생각했다. 그 일부에는 남편도 포함이었다. 지금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함께 소원을 빌면 항상 무슨 소원을 비었는지 서로의 소원을 궁금해하였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아빠의 소원을 물어본 적은 없었다. 궁금해한 적이 없다.


사실 매년 아빠의 소원은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올해 마지막 날 내년 새해의 날 다시 아빠와 함께 새해 소원을 다시 빌어볼까 한다.


그리고 아빠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나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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