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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Dec 20. 2021

아빠가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거 혹시 어데 최씹니꺼?"

남자 친구가 집에 인사를 왔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하는 두 남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거실에는 어쩐지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아빠와 남자 친구가 나를 가운데 두고 삼각형처럼 앉아 있다. 이곳은 본가이다. 


우리 집이 불편해 본적은 처음이다. 나는 침묵을 참지 못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기다리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고 있던 차였다. 그러다 긴 적막을 뚫고 아빠가 첫마디를 내뱉었다. 


"거 혹시 어데… 최씹니꺼…?"


아빠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영화 대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반응과 달리 남자 친구는 차분하게 자신의 종파를 고했다. 

이건 내 예상에 없던 스토리였다. 

남자 친구가 우리 집에 인사를 드리러 온 날이었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통계적 경험에 의하면, 남편이 집으로 인사를 온 날에는 흔히 나오는 고정된 대사들이 있다. 대표적인 질문들이다.

"우리 딸, 어디가 좋나?" 


이 대사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적용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그 적용에서 예외를 찍었다. 간혹, 친구 아버지들 중에는 친구의 어릴 적 사진을 가져와 


"우리 딸을 찾아보게. 못 찾으면 내 딸이랑 결혼 못 해" 


라고 했다는 후담도 있었다. 누가 봐도 친구를 찾을 수 있었는데, 당황한 나머지 못 찾고 헤매느라 결혼을 못할 뻔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결혼을 못할 뻔했던 친구는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시집을 갔고, 지금은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 종파를 묻는 질문, 어디서 본 장면이다 했다. 이동휘와 마동석, 이하늬 주연의 영화 <부라더>에서 이동휘를 좋아하는 직장동료 서예지가 집에 찾아왔을 때 집안 어르신들이 했던 질문이다. 



그리고는 영화에서처럼, 다음 대사가 이어졌다. 


"조상 중에 누가 계신가?"


조상중에 유명한 분이 누가 있냐는 말이었다. 나는 속으로 기함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빠의 우리 집 가문 소개가 이어졌다. 


나는 딸(여자)이기 때문에, 막내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었다. 막내아들을 얻은 아빠는 기세가 등등해졌고, 족보에 딸들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아빠의 기세를 몰아 족보를 다시 찍어야 한다는 말에 엄마의 이름도 성도 다른 시집온 가문에 이름을 올렸다. 엄마도 시집온 지 20년이 지나서야 아들을 낳고 족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족보에 먹이 다 마른 지 몇 년이 안된 것 같은데 아빠가 족보를 줄줄 읊는 것처럼 집안을 읊어대서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분위기를 눈치채고 얼른 밥을 먹자며, 아빠를 채근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이게 뭐지 싶었다. 


아빠는 남자 친구에게 내 딸 어디가 좋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남자 친구 집에 인사를 갔을 때 그 질문을 시어머니에게 들었다. 


"우리 아들 어디가 좋아요?" 


사실, 우리 딸(아들) 어디가 좋냐는 질문에는 답이 정해져 있다. 

"모든 게 좋다."라는 답. 

혹은 구체적으로 내 딸을 칭찬해보아라. 가 될까? 

아니면, 내 딸의 내가 모르는 부분을 네가 아느냐? 정도가 될까? 

그래도 답은 정해져있지만, 부모의 마음으로 내 딸이 좋아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아빠도 딸의 남자 친구를 본적은 처음이라 당황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뿌리' '근간'에 대해서 묻고, 또 설명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아빠는 종친회도 열심히 참여하고, 아직도 명절에는 한복을 입고 도포를 입고 제를 지내신다. 그나마 큰집이 양옥으로 개조를 해서 다행이지, 한옥일 때는 마당에서 절을 했다. 우리와 함께 조상의 흔적을 보기 위해서 생가를 찾아가거나 박물관을 찾아가곤 했다. 그러면 어쩐지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에 지금 남편이 된 남자 친구가 대답을 못했다면, 아빠는 결혼을 승낙하지 않았을까?라고. 

또, 우리 부모님들은 내 어디가 좋냐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아빠는 왜 내 어디가 좋냐고 안 물어봤어?" 


나는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는 말했다. 


"그걸 만다꼬.(뭐하러 물어봐)" 


엄마 아빠는 '둘이 좋아하는 것'에는 믿음이 있고, 터치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딸이 좋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기 위해서 고르고 고른 질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 아빠는 참 시골사람이고, 옛날 사람이다. 


나는 아빠의 자랑이다. 

그래서 돌려서 아빠는 본인이 자랑스러워하는 '가문'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딸은 시집가면 그 집 귀신' 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빠도 사실은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좋은 집안의 귀한 딸을 데려가니 "내 딸에게 잘해주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시대에 가문 얘기가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으나. 나 조차 까먹는 종파 얘기까지 하신것을 보면 추측이 그러하다)


중요한건 아빠가 경상도 사투리가 심해서, 서울남자인 남편이 반 이상을 못알아듣고 내용을 추측하여,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는 사실을 아직 부모님은 모른다. 


아직, 나도 자식이 없어서 부모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그저 믿고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해주신 부모님들께 감사할 뿐. 


동생의 남자 친구가 집이 오는 날, 아빠는 무슨 말을 물어볼까. 


내가 부모가 되는 날이 오면, 내 자식이 결혼할 날이 오게 된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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