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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Dec 24. 2021

퇴사한 회사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사한 회사와의 아름답게 관계 정리 하는 법

"자니?"


전 남자 친구의 연락의 상징인 이 말만큼이나 무서운 말이 또 있다.

퇴사한 전 회사로부터 전화가 오는 일이다.

달갑지 않은 전화에는 '스팸'전화만은 아니다. 스팸보다 더 긴장하게 만드는 전화. 그것은 퇴사한 회사에서 전화가 오는 일이다.


몇 번의 이직을 경험 삼아 퇴사한 회사에서 전화가 오는 경우는, 회계적으로 뭔가 잘못되어 돈을 돌려달라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줬다 뺏기는 기분이기도 했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한 번은 건강보험료의 경우도 있었고, 고용보험이나, 연봉 인상률에 대한 세금, 꼭 회계팀의 오류나 잘못, 혹은 그다음 해에 정산되는 일 등등으로 퇴사한 회사에서 몇 번 전화를 받는 일이 생겼다.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지 않기


그것은 국 룰이다. 나의 연애사에서도 국 룰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룰은 깨지곤 한다. 헤어진 회사와 다시 만날 일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세상에는 아름다운 이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지내니?

전 남자 친구의 연락처럼 헤어짐 이후의 연락이 반갑지 않은 곳. 바로 퇴사한 회사에서 나에게 전화가 왔다. 퇴사한 회사 대표였다.


"어 대표님!"

"어~ 잘 지냈나~?"


잘 지냈나 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시작하는 어색한 인사. 내가 다녔던 회사 중에서 제일 오래 있었던 회사였다. 이직을 한 후에 한번 명절에 곶감을 들고 찾아간 적도 있었는데, 어제 통화하고 점심에 오라던 대표는 회사에 없었다.


엄마는 끝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고 늘 말했다.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니 척을 지고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사이코들에게 그 방법이 얼마나 먹힐지 모르겠으나, 나 또한 몇 번의 이직 결과, 사이코는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결국에는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스스로 자멸하더라는 경험통계가 있었다.


"네~ 잘 지냈죠.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번에 갔을 때 안 계셔가지고~ 못 뵈었네요"

"연말이고 해서 잘 지내나. 안부나 물으라꼬~"


물론, 모든 전화에는 목적이 있다. 전 회사 대표와 나쁘게 끝을 맺고 나온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직하는 것이 꽤나 섭섭하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언제나 헤어짐에는 진통이 따르는 법. 다닐 때만큼 친근하고 아름답게 이별하지는 못하고 데면데면 그렇게 퇴사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연말'이라는 단어를 듣고 돌이켜보니, 내가 다니던 회사의 겨울 재계약 시즌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홍보대행사로 주로 관공서나 공공기관들의 수주를 받아 대행하던 회사인데, 그 계약 완료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매년 겨울 살얼음 같은 재계약 시즌에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예민한 공기가 계속되었다. 계약을 따내느냐에 따라 1년 치의 일이 정해지고, 연봉이 정해지고, 우리의 목숨줄이 걸려있다고 느껴졌다. 때때로 계약을 따오지 못한 부장님을 질책하는 대표님의 원망은 사원들에게 불똥이 튀기도 했다.


내가 아직도 공직생활을 하는 줄 알고 전화를 했던 것이긴 했다.


아, 그래서 전화를 하셨구나.


나는 대표가 왜 전화를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공직생활을 마감했음을 대표에게 전했다. 대표는 왜 나왔는지 궁금해했다.


대표는 회사에서 제일 경력이 오래되었고 일을 잘 배운다고 이것저것 가르쳐준 내가 내심 이직하는 게 괘씸했지만, 그래도 우리 회사에서 이직했으니 잘 다녀줘서 회사에도 일거리를 주고 도움을 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나 보다.


대표는 성격이 불같았다.

내가 입사할 무렵에도 한풀 꺾인 것이라고 했지만, 화가 나면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물건까지 던지던 호랑이 시절에, 더 젊은 나이에 경기도지부장까지 맡으며 나이가 많았던 직원들을 움직이던 사람이라 성격이 급하고 실적을 내길 닥달해서 회사에서는 오래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벌 떨면서 잘릴 각오를 하고 대표에게 대들었다.


"소리 좀 지르지 마세요. 부드럽게 말하기!"


희한하게도 내가 이 말을 한 뒤로 대표는 나를 좋게 봤던 것일까. 복합적이었을까.

나의 능력을 제일 많이 알아봐 주었고, 인정해주었다. 또 그만큼 더 많이 바라기도 했지만, 기대치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좋은 성과들은 나의 성취감으로 이어졌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경력이 쌓이고 어느 정도 일의 노하우가 쌓이자, 나의 능력으로 프로젝트를 이끌고 간다고 생각했다.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팀장을 보면서 답답해하며, 회사의 부조리를 한탄했었다. 일은 점점 나에게로 몰렸고, 손목이 나가라 일을 하던 나는 종종 현타와 함께 분노가 올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오래 다닌 이유는 일의 성취감으로 먹고살던 나의 열정이 회사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진 덕분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이직을 하고 회사를 나가는 동안 나는 몇 차례 인사이동이 이루어져도 나는 내 자리를 지켰고, 결국 나를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바뀌었다. 나는 팀장 자리까지 넘보는 말을 대표에게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고, 나는 모든 것이 나의 능력인 양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그것 또한 직원을 믿고 밀어주고 지지해주는 상사와 대표가 있어야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는 것을 나는 회사를 옮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들어간 공공기관에서는 새로 들어온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한계치에 부딪히고 점점 무기력해져 바닥을 찍고 나서야 나는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리석게 소중한 것을 잃어봐야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멀어지고 헤어져서야 그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호랑이 같았던 대표의 목소리는 그전에 비해 한결 다정했다. 하지만 대표가 얻으려 했던 정보들은 내가 공직 생활을 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대표는 나의 안위와 가정생활을 걱정해주면서 이직의 이직을 한 나에게 능력자라며 추켜세워주기까지 하며, 또 기쁜 일이 생기면 밥을 사주겠노라며 말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 같은 건 없다.

이별은 늘 누군가에게는 생채기가 난다.


나는 사실, 퇴사한 회사가 예전 같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헤어진 남자 친구의 소식을 굳이 굳이 전해주는 주변인들처럼, 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다.


내가 다녔던 기간이 몇의 전성기 일지는 모르나 회사의 마지막 전성기가 되지는 않기를 바랄 뿐.

이제 회사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1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헤어진 남자 친구가 잘 못살기를 바라면서도 너무 못나지 지는 말기를 바라는 마음은.

너무 구린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은 또 싫은 마음이 들어서 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능력을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발휘할 수 있게 해 준 대표에게 느끼는 고마움은 일을 하면서 느낀 고마움을 전하는 것 또한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나는 대표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통화를 마무리하였다.

어찌 됐든, 대표도 어린 나이에 많은 일을 일궈낸 능력자이고, 나를 믿어주고 키워준 고마운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잘 나가던 회사가 휘청거리며 대표가 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동향을 살핀다 생각하니 나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대표의 호기로움과 자존심을 생각하니, 쉽지 않았을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나는 연락하기 죽기보다 싫은 직원은 아니기에.


나는 전 회사 대표와의 전화를 끊고 한동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헤어진 남자 친구의 연락만큼이나 받기 싫은 퇴사한 회사에서의 연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싶었다.


또 다른 회사에서의 퇴근을 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전화 한 통으로 휘청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오늘도 집으로 돌아간다.

그제서야, 나는 진짜로 그 회사를 퇴사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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