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차 부부의 싸움법
세상에 반찬 투정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싶지만.
우리 남편은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 않는 편일 뿐이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한 요리도 맛이 없으면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요리해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끝까지 먹는다. 그 점이 항상 고마웠고, 그래서 더 요리를 잘하고 싶었다.
만약, 남편이 반찬투정이 심한 편이었다면, 나는 요리를 싫어했을 것이다.
나의 '청개구리'같은 심보가 그러하다. 내가 먹기에도 영 맛이 없는 요리를 '맛있다' 면서 끝까지 먹는 남편의 반응 덕에 나는 요리를 열심히 했다.
그러던 남편이 요즘 한창 다이어트에 물이 올라 있는데, 보기에도 쏙 들어간 배가 한몫했고, 홀쭉해진 얼굴을 보고 칭찬한 시아버지의 말도 한몫했다. 박차를 가해 남편은 샐러드는 안 먹지만, 다이어트식으로 먹기 시작했다.
너 혼자 살 빼면 다냐!
우리 부부는 결혼을 하고 20킬로 가까이 쪘다. 물론, 결혼을 셀프로 준비하면서 감량이 된 효과도 있었지만, 나는 고3이 인생 최대 몸무게인 줄 알고 살았던 시절이 오히려 정상 몸무게 시절이 되었다.
남편에게 금주령을 내린 것은 나인데. (물론 다리가 부러져서 강제 금주령이 되었지만)
술을 먹지 않게 되면서 야식을 먹지 않았고, 다리를 다쳐 운동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먹는 양을 많이 줄이게 되었다. 그 결과 남편은 눈바디로도 살이 빠져있었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서 체중계에 올라가게 했었는데, 이제는 보란 듯이 체중계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배고픔의 연속은 가끔 흔치 않은 부작용을 가져온다.
샐러드를 먹기 싫어하는 남편은 계란이나 간 단식으로 먹는 다이어트를 선택하고는 했는데,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나면 4시 5시쯤 엄청나게 배가 고프다는 단점이 있다.
얼마 전, 갑자기 팀장님과 함께 팀을 옮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변화를 싫어하는 고양이 같은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제도 새벽같이 회사 셔틀을 타고 먼 거리를 출근해 어김없이 간단하게 고구마로 점심을 채운 남편이 어쩐지 안쓰러워, 한의원을 들렸다 생각보다 집에 늦게 도착한 나는 남편이 버스를 탔다는 말에 부랴부랴 저녁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먹으려고 한 게 있는데!
소분해 얼려둔 제육을 녹여서 다시 볶으면서, 동해에서 올라와 소분해두었던 홍게도 한 마리 통째로 넣고, 바지락도 꺼내서 순두부찌개를 만들었다. 사실, 순두부찌개 밀 키트에 홍게와 바지락만 넣은 것이라 크게 손이 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밥은 현미밥으로 준비했다. 나 또한 집에 오면 너무 허기가 져서 이미 샐러드를 허겁지겁 먹으면서 저녁을 남편이 집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준비했다.
"배고플 테니 손만 씻고 밥 먹고 씻어"
그런데, 집에 들어와 부엌을 본 남편은 짜증이 한껏 난 표정으로 불판 위에 끓고 있는 찌개와 고기를 째려보고 있었다.
'남편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구나.' 나는 직감했다.
남편을 달래주려고 먹기 싫은 것이 있냐,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냐고 물어보아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어쩐지 뿌루퉁한 얼굴로 밥상에 앉아 있던 남편은 수저를 가지러 간다고 하더니 설거지 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뿔이 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보통의 집들은 엄마가(부인이) 화가 났음을 설거지통을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로 안다던데, 우리 집은 그 반대였다. 남편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나는 설거지통이 울리는 소리로 알았다.
남편은 밥상 앞에 다시 앉으며 말했다.
"내가 꼭 뭔가를 먹으려고 계획하면 부인이 밥을 해놓더라~오늘은 간단하게 시리얼 먹을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부인이 잘못했네~ 물어보지도 않고 막 저녁을 차려놨네"
나는 3인칭관점으로 일상적인 달려주는 말을 하고는 나 먼저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차려줘도 난리야!
밥을 차려줘도 욕을 먹는 게 이런 기분이군.
남들은 밥 차려 달라고 난리인데, 밥을 차려놨다고 난리니. 그래도 어쩌겠는가.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내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나의 계획이 변경될 때 오는 스트레스는 분명 있으니까.
크게 스트레스받지도 않을 법한 일상적인 7년 차 부부의 투닥거림이던가.
남편을 달래주는 의무는 다했으니 먼저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껏 짜증을 내고 기분이 누구러진탓인지
남편은 순두부찌개를 먹으면서 짧은 말을 남겼다.
"맛있네"
나는, 얼마 전 갑자기 먹고 싶어 진 대게를 대신하여 동해에서 올라온 홍게를 쪽쪽 빨면서 양손으로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남편은 어느새 밥 한공기를 먹고 두그릇을 먹었다. 맛있다고 할꺼면서, 왜그렇게 짜증을 낼까나.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설거지도 하지 못한채 저녁 9시 전원이 꺼지듯이 잠에 빠지고 말았다.
밥투정하는 남편이 쓰는 손편지
기절하듯이 자는 나를 남편이 몇 번 깨웠지만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이어리를 꺼내다가 다이어리 사이에서 하트 모양의 편지를 발견했다.
사실 어제는 시험관 2차를 시작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병원을 다녀와 주사를 맞고 높아진 호르몬 주사에 나는 기절하듯이 잔 것이다.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긴 것인지, 밥투정을 한 것에 대한 반성인 건지 남편의 손편지가 있었다.
본래 조금 냉소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호르몬 때문인지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다. 그래 이모든것은 호르몬의 탓이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남편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시큼시큼 나면서 몰래 사무실 책상에서 읽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은행에서 온 전화였다.
점심시간 10분 전, 대출 연장일은 2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서류 처리를 남편이 다 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급하게 은행을 방문해야 한다고 했다. 내일은 대선으로 쉬는 날이었다.
나는 편지를 책상에 집어던져놓고, 부랴부랴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건물을 튕겨져 나와 택시에 올랐다.
그렇게 남편이 고심하면서 다이어리 속에 넣어둔 편지의 감동은 전화 한 통으로 짧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