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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Mar 10. 2022

정년퇴직한 아버지의 슬기로운 무직 생활

아빠는 심심하지가 않다

아버지가 퇴직했다.


직장인들에게 무서운 단어이자 늘 가슴에 품고 사는 단어는 바로 '퇴사'이다. 


아버지는 공직생활을 40년을 넘게 하고 정년퇴직을 내가 결혼한 달에 하셨다. 원래 더 일찍 은퇴를 생각하셨으나, 내가 결혼을 미루면서 기다려달라고 한 이유도 있었다. 


나는 결혼 7년 차이다. 결혼이 7년 차라는 것은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한 숫자도 7년 차에 접어들었다는 말과 같다. 공무원들은 관련 직종에 퇴직 후 3년 동안 재취업을 할 수 없다. '청탁 비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일을 하다가 갑자기 퇴직을 하고 나면, 더구나 한 직장에서 오래 몸을 담다가 퇴사를 하고 나면, 헛헛함과 우울감이 찾아온다고 하였는데, 어쩐지 우리 집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한 말이었다. 


삼시세끼 바쁜 삼식이 


오히려 아버지보다 불편해하는 것은 엄마 쪽이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삼시 세 끼를 차려먹는 '삼식이'가 되었고, 뒤늦게 사회활동을 시작한 엄마에게 있어서 집에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그 긴 시간 동안을 '주말부부'로 산 것도 한몫을 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재취업을 권유했지만, 아버지의 '무직 생활'은 바빴다. 

3년 동안은 취직을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엄마도 포기를 했다. 그러는 동안 아빠는 자격증 시험을 공부했다. 온갖 국가고시 자격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학 때부터 친했던 친구와 같이 내기를 하듯이 같이 공부를 시작해서 실기시험과 필기시험의 노하우를 서로 전수해주었다. 


그러게 아버지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나는 학창 시절 이후 가본 적도 없는 집 앞 독서실을 끊어서는,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면서 엉덩이에 땀나라 공부를 했다. 밥도 먹지 않고 공부를 하는 통에 에너지바를 열심히 공급했다.


그렇게 몇 차례의 국가자격증을 따고 나면 자축의 의미로 함께 여행을 가고는 했는데,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그 친한 친구 부부와 함께 대만으로 나이 60이 넘어서 배낭여행을 갔다. 편하게 패키지로 다녀오시는 줄 알았는데, 지도를 보고 대만 지하철을 타고 또 내려서 걷고 그렇게 대만 여행을 다녀오셨다.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여행을 가보겠다는 심산이었다고 하셨는데, 내가 환갑 기념으로 초 정예 소수 패키지로 장가계 여행을 보내드린 것 또한 나의 편견이었을까? (코로나 터지기 전 일이다)


나는 심심할 겨를이 없는 사람이야~


그렇게 아버지는 혼자 잘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걱정했다. 남들이 소위 퇴직 후 오는 '우울감'이나 '상실감' 또는 '갱년기'에 접어든 나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내공이 단단히 다져진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 같은 남자는 만나지 않을 거야! 이런 다짐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들 결혼할 사람을 은연중에 아버지 같은 사람을 고른다는 말이 있었는데 남편은 아버지와 닮지 않아서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아버지가 은퇴하고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혼자 놀기의 대가였다. 

그것은 우리 남편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혼자 두어도 잘 노는 것과 비슷했다. 


내가 친정집에 오랜만에 들려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사람들이 왜 자꾸 나보고 심심하냐고 물어보지? 내가 심심할 틈이 어딨어 얼마나 바쁜데" 


"뭐가 그렇게 바쁜데?"


"신문도 봐야 하고, 만화도 봐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나무에 물도 줘야 하고, 산에도 가야 하고 할게 많아~나도 심심하면 좋겠다!" 


누가 공부하는 게 재미있겠냐만은, 사실 재직 시절에도 아버지는 "심심해서 자격증을 딴다"라고 할 정도로 학구파였다.


혼자의 재발견 


요즘에야 혼자 밥 먹기를 하는 사람도 많고, 혼자 영화를 봐도 그런가 보다 하지만, 예전에는 혼자 밥을 먹는 게 청승이고, 혼자 등산을 다니고 여행을 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시절도 있었다. 


나도 최근 몇 년에서야 혼자 밥 먹기를 할 수 있지, 예전에는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민망하여 그냥 굶은 적도 많았다. 더구나 결혼한 지 몇 년 안된, 초창기에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남편이 회사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고 하면, 괜히 안쓰러워서 저녁을 더 푸짐하게 차려줬었다. 


아버지를 좋아하고 따르는 이모부는 나에게 말한다.


"형님은 주말부부 하면서 계속 혼자 밥 드셨을 텐데, 지금 나이 들어서도 혼자 밥 먹는다고 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른다. 네가 좀 잘해드려라" 


지나가면서 이모부가 그냥 한 말이 나에게는 이 말이 나에게는 목구멍에 탁, 하고 걸렸다. 나는 곧 돌 맞은 개구리처럼 어벙 벙해졌다. 그래서 김치만 꺼내놓고 밥을 먹는 아버지가 안쓰러워 더 밥을 챙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이 또한 나의 잣대와 관점으로 본 시각일 뿐, 혼자서도 밥 잘 먹고 혼자서도 놀러 잘 다니고 혼자서 한다는 것이 꼭 처량하고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잘 놀지만, 찡찡은 거려요 


이렇게 혼자 잘하는 아버지도 엄마만 집에 오면 막내 본능이 발동한다. 꼭 저녁은 엄마가 와서 같이 먹어야 먹는다. 엄마는 왜 한평생 혼자 밥을 안차려 먹냐 투덜대면서 밥을 차려준다. 


"밥을 와 안묵는데~ 다 차리놓고 갔는데 와 안묵노"


"같이 묵으라꼬 한참 기다리따~ 서방이 집에서 쫄쫄 굶고 있는데 어디 갔다오노! " 


혼자여서 밥을 안 먹은 것처럼 찡찡이가 된다.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아버지는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다면서 투정을 부린다. 


"하이고~ 다 먹었네"


엄마가 부엌의 냄비랑 그릇들을 둘러본다. 미리 낮에 챙겨준 옥수수와 감자, 녹여둔 떡까지 다 야무지게 먹은 상태이다. 


"그거는 밥이 아이지. 간식이다 간식! 밥은 어데다 숨카났노! "


"먹었으면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치워야지. 이거를 맨날! 이레 우야노"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아빠는 옥수수도 먹고, 감자도 먹고, 떡도 먹었지만 밥을 달라고 한다. 옥수수랑 감자랑 떡이랑 밤까지 잘 찾아먹으면서 눈앞에 있는 밥은 못 찾겠다 한다. 


그러면, 밥을 내와서 엄마는 몇 숟가락 먹지도 않지만 같이 앉아서 결국에는 밥을 먹어야 저녁을 먹은 게 된다. 이것이 아빠가 퇴직한 후의 우리 집 저녁상이다. 


참고로 엄마가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멀리 갔을 때 아빠가 된장찌개를 해준 적이 있는데 아빠가 요리를 잘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엄마는 아직도 아빠가 요리를 하나도 못하는 줄 안다. 


그냥 결혼 30년 차가 넘어가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것들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반대로 혼자서도 엄청 잘 놀면서, 혼자여서 밥도 못 먹는다고 투정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미래의 남편 모습을 발견한다. 


퇴직한 아버지가 심심하지 않아서, 

생각보다 마음이 더 단단한 사람이어서, 

그런 점을 참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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