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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Mar 15. 2022

남편의 일기장을 엿보다

8살 남편을 만났다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일은 비매너라고 알고 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도 개인 프라이버시를 위해 일기장 검사가 없어진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남편의 일기장을 엿보았다고 앞서 고백한다. (아니 대놓고 같이 본게 맞다고 해야하나)

남편의 일기장을 보다

시댁에서 시아버지가 애지중지 한다던(?) 남편의 물건이 신혼집에 들어왔다. 굳이 이렇게까지 가져올 필요가 있겠냐 싶었는데, 시댁에서는 결혼했으니 이제 장난감도(레고)도 가져가고 국민학교 일기장도 가져가라고 했다.


어쩐지 나는 이것이 부모님이 30살이 되기전에 결혼하는 (일찍 결혼을 하는) 남편에 대한 섭섭함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좁은 신혼집에 차지하게된 남편의 일기장은 한동안 다시 시댁에 가져다놓아야지 하면서도 매번 잊고 신혼집 책장 맨 마지막 칸에 자리잡고 있었다.


8살의 남편을 만나다


일기장은 남편의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이었다.

한동안 일기장이 신혼집에 그대로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들쳐보지 않고 지내다가 책장을 정리하면서 문득 일기장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시간여행을 하듯, 초등학생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유행했던 H.O.T.일기장에서부터, (사실 남편은 god를 더 좋아했던 것 같은데) 학년별로 달라지는 글씨며 노트며, 내용이 참 이색적이었다.


그렇게, 들여다본 8살의 남편의 모습은 참 귀여웠다. 요즘에는 잘 찾아볼 수 없는 담임선생님의 멘트도 좋았다. 선생님에게 투정인지 지적인지 모르겠으나 과감없이 본심을 토로하는 8살이었다. 그런점이 나와 참 닮아있었다. 나 또한 선생님의 불합리한점에 눈물을 뚝뚝흘리며 일기장에 쓴적이 있었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외모에 관심이 많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동생을 질투하고, 선생님에게 투정도 하는 그런 초등학생이었다. 때로는 하루치의 일기장에 '쓸 것 없음' 이라는 4글자로 통 크게 채우기도 하는 포가 큰 아이였다. 

 

신기하게도, 나는 2학년때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었는데, 남편의 경우에는 4학년이 되어서야 초등학교로 바뀌었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 만난 남편의 어린시절을 만나볼 수 없었기에 어린시절 일기장은 참 반가웠다. 나는 그렇게 남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악세사리를 좋아하고 머리에 신경을 쓰는 남편의 마음을 더 잘 알기에 더욱 리액션을 열심히하고 칭찬을 열심히 했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잘생긴 동생을 질투했다.


시어머니가 남편이 팔이 부러졌는데도 혼나기 싫어서 혼자 누워서 끙끙 앓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신적이 있다. 남편은 참는걸 잘한다. 그리고 속마음을 잘 얘기 하지 않는다. 그런점은 성인이 되어서도 나타나는데, 그런 성격을 알아버린탓에 주의깊게 남편을 살펴보는 임무가 나에게 부가되었다. 남편이 스스로 힘들어하기 전에 일정의 속도조절을 해줘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일기장을 본 후 나타난 변화


나에게 있어서 남편의 일기장을 엿본 일은 남편도 잊고 있던 어린시절의 남편을 만나는 일이자, 나에게는 남편을 더 이해하는 이유가 되었다.


물론 지금의 남편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남편의 모습들이나 마음들을 엿볼 수 있었는데, 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일기검사를 했는지 조금 알것 같은 기분이었다. 학급의 학생수가 많았던 때에 학교에서는 일일이 학생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일기는 그 통로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보여주기식의 일기장이 되다보니 얼마나 솔직하게 적을 수 있는지는 가늠할 수 없으나.


어린시절일 수록 솔직한 마음들이 나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나이차이 나는 막내 일기장에 출연한 적이 있다.)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는 성격인 남편의 일기장을 들여다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연애시절 남편에게 교환일기장을 쓰자고 러브장을 사주었지만, 남편은 한자도 쓰지 않았다. 결국 나는 폭발했고, 우리가 헤어진 후 나는 쓰다만 교환일기장과 남편 물건들을 택배로 보내버렸던 적도 있다. 손편지를 써달라고 졸라댔던 적도 있었다. 편지지까지 사서 우리 서로 편지를 쓰자며 카페에서 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편지를 먼저 써준적은 없었다. (연애시절) 혼자만의 일기장으로 쓰라며 고급노트를 사준적도 있었다. 결혼 준비 시절 일기를 쓰다가 결국 손을 놓았다.


힘들일이 있을때 일기장을 쓰다가, 정신없이 놀다 보니 일기장을 쓰지 않게되었다.

(남편도, 나도)


얼마전 남편은 책상 정리를 하다가 양지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지금의 남편 일기장에는 어떤 일기가 써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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