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가 방송국놈들 맞아요

방송작가로 일하는 법

by LaLa

사주에 관이 많다더니, 주구장창 내던 사기업에서의 합격 두글자는 그렇게 듣기 힘들었지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진행하는 교육에 면접까지 보고 합격을 해서 너무 들떴다. 아시아에서 광고협회에서 인증을 받은 2번째로 큰 전문 광고 교육장 이라는 말이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그 당시에는 광고 교육을 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지원자들중에서 면접으로 뽑힌 사람이었지만, 대략 40명쯤은 되었다. 매일 출석체크를 하며,3명씩 조를 이루어서 조별 과제도 제출했다. 사실, 문창과는 조별과제를 할일이 없고, 개별 작품을 제출하는 형식이어서 조별과제를 체험하는 것이 굉장히 새롭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광고학과생들에게는 너무 기본이지만, 타 졸업생들에게는 생소한 광고기법과 마케팅기법들을 많이 배웠다.


마지막 시간은 국내 유명한 광고회사에서 와서 면접을 보았지만, 그 중에 광고회사 경험이있던 몇명만이 면접에서 기회를 얻어 취직을 했다.


다시 그렇게 취업생이 되어서, 처음 대기업을 공들여서 써서 최종면접까지 2번까고는 떨어져 들여다보지 않았던 중소기업들에 이력서를 마구 넣었다. 중견기업도 아니고 중소기업들이 많았다. 지원한 회사의 수가 100단위를 넘어서 200단위를 향해가고 있었다.


코바코에서 함께 광고 조별과제를 했던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잘지내지? 요즘 뭐해? 회사 다니고 있어?"

"응 언니도 잘 지내? 나는 계속 취직 준비하고 있지"

"아 그래? 아직도 광고 회사 알아보고 있어? 안그래도 그거때문에 전화했는데 혹시 방송쪽은 관심 없어?"


자신이 방송작가를 하고 있는데, 자신이 다른 프로그램으로 가니 자신의 자리에와서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그 전화는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나 방송은 한번도 안해봐서 잘 모르는데"

"나도 잘 몰라. 우리 영화 마케팅도 공부했잖아. 나도 그래서 들어왔잖아. 어렵지 않아. 배우면서 할 수 있어"


그래도 코바코에서 광고교육을 들으며, 취직에 성공하지 못하고 실망했던 나에게 남은 것은 있었다.

방송작가는 인맥으로 얻어지는 자리라는 말이 맞다.

나는 그렇게 방송국놈들이 되기 위해 면접길에 올랐다.


그렇게 나를 면접하기 위해 이모뻘 메인 작가와 삼촌뻘 PD와 쪽방에서 마주했다. 그 언니가 부른 곳은 방송국이 아니었다. 방송제작을 하는 회사였다. 정신없이 짐들이 쌓여있는 곳에서 편집실 쪽방에서 면접이 진행되었다.


"왜 이제와서 방송을 하려고 하지? 넌 방송작가할 관상이 아니야"


나를 보고 PD가 한 첫말은 관상타령이었다. (추후에 관상은 과학이 되었다)


"방송작가가 원래 꿈이었는데, 학자금대출때문에 돈을 갚아야해서 먼저 다른 곳에서 어느정도 갚을 수 있었고, 뒤늦게 원래 꿈인 방송작가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기회를 잡기 위해 둘러댄 말이었다. 대출금도 다 갚지 못했고, 방세도 내지 못했다. 예능작가들은 빠르면 20대 초반부터 진입을 한다. 나는 20대 후반이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계속 이력서를 들여다보는 PD는 계속 "너는 방송작가할 관상이 아니야"를 중얼거렸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나에게는 친절하게 말한편이었다. 성질이 더럽기로 유명한 3명의 개PD중의 한명이었다.


나는 그렇게 88만원세대에 입성하게되었다. 아니 나는 88만원도 받지 못했다. 한달 월급은 80만원에서 제세공제 후 78만원이었다. (점심값과 교통비 포함이다) 나는 그렇게 방송국놈들의 대열에 낀것이다. 처음에는 다 신기했다. 방송녹화 준비를 하는 것에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대본이 어떻게 영상으로 바뀌는지. 사녹과 자료 화면, 종편과 마감까지. 그렇게 교양작가가 되었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해서 방송 준비를 하고 방송국으로 가면 대기실 간식부터 김밥을 함께 세팅하고,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실, 방송 출연자 연락해서 챙기기부터 소품과 대본을 잘라서 형관펜 칠해서 자리에 둔다. (섭외가 되지 않았다면, 섭외 전화부터 해야한다)


그리고 방송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FD와 AD의 역할이 커진다. 카메라촬영기사분부터 촬영장 분위기까지 PD의 말을 현장에 전해야하기때문이다.


나는 메인작가, 서브 작가언니들과 함께 방송 현장에 앉아 대본을 체크한다. 그리고 이 모든 녹화본은 내가 프리뷰하게 될것이다. 예능작가들보다 '교양작가'는 다큐에 가깝다며, 차별점을 두는 새끼작가언니의 말에 따라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는 했다. (요즘에는 예능작가가 드라마도 쓰는 세상이지만, 이전까지만해도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다)


나에게는 이 '프리뷰'라는 것이 섭외 전화보다도 힘들었다. 내스스로에게 '그동안 귀를 닫고 살았나.'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나는 바로 앞에 있어도 잘 못찾았고, 남들에게도 잘 들리는 말들이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했던 프로그램은 영화소개 프로그램이었다. 그래도 다소 시청율의 압박이 적은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을 할 영화들은 시사회를 쫒아다니면서 다 봤다. 한달에 최소 3편에서 6편 9편까지 봤다. 영화를 다봐야 그나마 녹화방송에서 MC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들렸다. 어려운 용어들도 많아서 많이 헤맸다. 나중에 쉬는날에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갔더니, 상영중인 영화를 다봐버려서 볼 영화가 없을정도였다.


내가 했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평론가, 영화감독, 작가들이 어려운 이야기들을 많이 쏟아냈다.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녹화에 하루종일 굶다가 밤 10시에 술자리에서 막차가 끊긴다는 이유로 PD가 집으로 보내줬다. 그래도 방송이 끝나고 지나가는 자막에 내이름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고 마냥 좋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가고, 작가언니들과도 좀 친해지고, PD에게도 덜 혼나기 시작했다. 제일 예뻤던 서브작가 언니가 갑자기 회식에서 술을 먹지 않았다. 연예인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만큼 예뻤다. 영화감독님들은 서브작가 언니를 예뻐했다. 맨날 PD에게 혼나던 FD가 혼나면서도 힐끗힐끗 서브 언니를 엿보고는 했었다.


PD는 "너 임신했냐! 왜 갑자기 빼!" 라고 소리를 질렀다. 메인언니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고개를 절래절래 하면서


"다른 프로그램도 녹화들어가야해서 그래요. 저 가야해요"


하고 바쁘게 자리를 떴다. 서브 작가는 다른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2,3개는 하고 있었다. 메인 작가언니는 고정으로 1개만 했지만, 5분 10분자리 코너를 하는 서브작가들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서브를 하면서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곧 밝혀질 진실이겠지.' 하고 다들 그냥 지나가자는 분위기였다.


나는 방송작가를 하면서, 헤어진 남친과 다시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성격더러운 개PD마저 창고에서 울고있는 나에게

"그렇게 좋으면 가서 다시 만나라!" 라고 꽥 소리를 질렀다.


술을 마다하던 서브 작가언니는 나의 월급을 듣고는 깜짝 놀라했다. 그러면서


"**아, 우리가 이미 같이 일하고 있어서 할말은 아니지만, 너무짜다. 본사로 들어와. 본사는 KBS는 아무리 막내여도 140부터 시작해. "


그뒤로 내가 남친과 헤어질때마다 번번히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너 그새끼 다시 만나면 너 안본다" 라고 나에게 엄포를 놨었다.


그랬던 언니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전라도 광주까지 혼자 버스를 타고 결혼식장에 가서 축하해주고 사진도 안찍고 무등산에서 안잡히는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또 헤어진 그 남친을 만나기 시작했지만, 언니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리고 곧, 프로그램이 종영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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