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을 때려치면서 알게 된 것
공무원으로 일하는 법 (7)
'청백리'는 죽었다.
그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의외로 공무원 중에는 '명품가방'에 집착하거나,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매개체였다. 명품에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었던 내가 그 세계에 있을 때 나도 '명품가방'을 처음 샀다. (지금은 옷장에 처박혀 있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 '청백리' 같을 것이라 생각했던 공무원의 세계에서의 품위유지, 사회적 체면은 타고 다니는 차, 갖고 다니는 가방, 사는 아파트로 규정지어지는 리얼 현실세계였다.
'어? 스포츠카를 타고 출근하시네?'
'명품백이 없는 사람이 없네?'
라는 정도의 나의 놀람은 그저 나의 환상 때문에 생긴 것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공직생활을 하는 청백리는 없었다. 그건 전해져 내려오는 실상이 없는 구전동화 같은 것이었다.
적어도 지방청은 그랬다. 중앙청을 다니면서 퇴직하신 아버지는 나에게 청백리 같은 공무원이었다. 나는 그를 보고 자랐고, 그가 공직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항상 근검절약을 원칙으로 하셨고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택시도 ktx도 못타게 하셨다. 기차도 제일 싼 기차만 탈 수 있었다. (예전에 별다방이 도입된지 얼마 안되었을때는 믹스커피봉지가 아니라 별다방 가는 나에게 사치를 한다고 나무라셨다.)
다만, 내가 다닌 곳은 그렇지 않았다. 청백리는 없었다.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
나는 주변에서 내 가까운 이들이 해주는 말들을 잘 믿지 않았다. 가까운 이들이 해주는 말들을 나는 돈을 주고 타인에게 들어야 그제야 조금 그 말을 이해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가까운 이들의 말에 귀를 닫고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말들을 깊게 생각한다.
내가 느낀 것들도 어쩌면,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고 쉬운 일이 되기도 한다. 내게 조언을 한창 해주던 심리상담가이자 베스트 프렌드인 그녀에게 나는 버럭 울분을 토했던 적이 있다. 나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사회생활을 잘하는지 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기에.
"사람은 다 자기에게 맞는 옷이 있는 거야.
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는데,
그게 안돼"
그렇다면, 그 직장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다.
어쩌면 덜 배고파서 그렇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먹고 살기 급급하다면 그런 것을 따질 것이 없다. 그냥 바짝 엎드리거나 그 사회의 룰에 충실하게 하면 된다. 하지만, 나에게 책임질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MZ세대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내가 하기 힘든 것들을 하기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결혼 준비를 하면서 힘들어했을 때 그녀가 자주 해준 말이 있다.
"넌 최선을 다했어. 할 만큼 했어"
그 말이 참 많은 위로가 되면서도 나는 더 청개구리 같은 심정으로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달리곤 했다. 하지만, 직장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사람의 인연도, 직장도, 집도 다 인연이 따로 있다는 말은 피할 수 없는 국 룰이다.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게 되면, 숲 안에 있을 때는 나무밖에 보이지 않아 길을 헤매는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서 벗어나 멀어지면 숲이 보인다.
누구나, 직접 겪어 보지 않고 그 조직에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와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 또한 사람들이고, 그냥 회사일뿐이라는 것.
하지만,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희망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게 어디든 빨리 탈출하자. 후회 좀 할지라도. 후회보다 생존이 우선이다.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다. 행복이 아니라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도, 아직도 헤매고 있다면. 그게 어느 회사일지라도. "그대는 할 만큼 다했어.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직생활을 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의 기사를 보면 남일 같지가 않다)
얼른 탈출해
나는 사주에 '관'이 많았다. 흔히 말하는 나라의 녹봉을 먹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일도 비슷한 쪽으로 많이 들어왔고, 비슷한 류의 일을 하다가 결국 공무원까지 왔다. 하지만 몇 년을 못 버티고 나는 탈출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 1년을 집에 박혀있었다. 코로나도 아닌데, 셀프 자가격리를 한셈이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나와 맞지 않다.'라는 것이다.
그 결론을 내리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안전성의 상징인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에게 남은 것은 잃어버린 건강이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처음에는 나 자신을 향해 있던 화살로 인해 나를 많이 탓하면서 나를 지웠다.
공평함을 가장한 불공평함
오징어 게임에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게임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 함정이다. 누군가는 뒤로 구린 짓을 하다가 걸린다.
공무원은 오징어 게임이다. 누구에게나 편견 없이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고 보면, 오징어 게임만큼이나 공평하지 않다. '벼락부자', '신분상승' 같은 신데렐라 같은 것도 없다. 하지만, 짓밟힌 자존심과 마음은 '명품'으로 대체한다. 보여주기 식의 '품위유지' 그것이 필요한 곳이라는 것.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세계에서 나도 이해되지 않는 존재였다.
공무원은 과연 동그라미일까? 세모일까? 네모일까? 아니면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참가자인가?
나는 지워진 나를 되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코미디언이라고 해서 수험표의 사진까지 웃기게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아이디어만 많아서도 안된다. 대기업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공무원이라고 무조건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세상에 무조건이라는 조건은 없다. 그들의 틀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독창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을 뿐이다.
나는 오징어 게임도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효도하지 않는 주인공이 생전 처음 만난 할아버지에게 잘하는 것. 내가 우승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찌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우리는 막상 그 상황에 쳐하지 않으면 나 자신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사실, 나는 나 스스로 공무원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공무원의 안전성에 나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스스로를 속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만류하는 공직생활을 의원면직하고 나자 부모님은 나에게 생애 처음으로 실망의 눈빛을 보냈다. 세상도 그 좋은 걸 때려치우고 나오는 참을성 없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았다.
30대 후반에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방황을 한다고 하면 모두가 나를 한심해할 것 같았다.
솔직히 후회하는 마음이 들까 봐 무서웠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나면,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지만, 그런 일 따위로 세상이 무너질 쏘냐.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호기로운 퇴사 생활이라는 것도 없었다. 누가 뭐라고 눈치를 주지 않아도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기로 했다. 하지만, 36살 나이가 찬 아이 없는 기혼 여자에게 문을 열어주는 곳은 없었다.
또다시 나는 '관'이 많은 사주에 끌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