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절대 말할 수 없는 그것

공무원으로 일하는 법 (5)

by LaLa

"**아 밖에 못 나가"

"네? 왜요?"

"지금 민원인들이 있어서 못 나가"


민원인들이 단체로 건물을 점거하고 있어서 (드러누워 있어서)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유리 중문을 잠그기 시작한 때. 나는 다른 주무관들을 따라 오리걸음을 해서 오리 새끼들처럼 줄줄이 뒷문으로 돌아나가고 있었다. '벌을 서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지?' 라고 생각하던 순간, 건물을 울리는 고함소리에 한껏 발소리를 내지 않고 가다가 다른 주무관이 민원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여기 제일 높은 사람 나오라 그래!!"


잡힌 것도 서러운데, 일단 직원이 잡히고 나면 상관이 안 나올 수가 없어서 나중에 더 혼난다는 게 함정.


생각보다 공공기관의 안전은 지켜지지 않았다. 시민 누구에게나 개방이 되어있었다. 그것이 전문 민원인(꾼)이거나 방문 판매상이라고 할지라도 명찰을 들고 오는 게 아니므로 막을 수 없었다.


타인의 그늘이 되는 일


여느 때처럼 빼꼼하게 고개를 내밀어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저.."


조용히 눈치를 보던 남자는 말을 거는 내게 다가와 내 책상 옆에 잽싸게 무릎을 꿇고 앉아 보험을 열심히 설명했다. 앳되어 보이는 그는 명함을 내밀었다. 이제 갓 20대가 되어 보이는 영업팀 신입이었다.


"저 선배가 여기서 한건도 못 따면 들어오지 말라고 했거든요. 근데 제가 아직 한건도 못했어요."


마음이 짠해옴과 동시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 공공기관으로 내몬 그 선배라는 사람도 얄미웠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미 보험을 나는 많이 들어있었고, 이렇게 찾아온 사람에게 가련한 마음으로 보험을 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들었다면, 혼이 날 것이다. 한 명이 들기 시작하면 다른 이들도 다 들어줘야 해서 들어주지 말라고 한다.)


"저도 제가 여기서 막내라서.. ㅠㅠ 죄송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마 아무도 안 들어주실 거예요)"


차마 뒷말은 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옆 테이블로 옮겨갔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결국 그는 쫓겨나고 나는 혼이 났다.


"막내가 알아서 나가라고 하고 해야지. 잡상인을 그냥 들이면 어떻게 해"


그렇게 내가 잡상인을 쫓아내고 불친절했다 민원을 받으면, 나만 시말서를 써야 하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말도 역시 할 수 없었다.


나는 우리 팀의 막내, 몸빵, 욕받이이다.

우리 팀의 그늘이다.


진짜 힘든 사람은 자기가 힘든지도 몰라


경남에서 폭행을 당한 공무원 소식이 전해져 왔다. 민원인들이 종종 칼을 들고 온다고 협박을 하거나, 멱살을 잡히거나, 휘발유를 들고 와서 불을 낸다고 협박하거나, 프린터기나 팩스기를 부시거나 하는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간혹 앙심을 품고, 차에 탈 때 몰래 따라 타서 목을 조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있던 부서는 민원인을 직접 대면할 일이 있는 부서는 아니지만, 민원인이 많이 찾아왔다. 사회복지직이나 안내데스크, 민원실에는 특히 민원인들을 많이 대하는 직종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을 수밖에 없다.


공무원 중에 많은 사람들이 공황장애와 불안증을 겪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공무원에 대한 인식은 "꿀 빠는 직업" 이거나 "내가 낸 세금을 받아가는 직업" 이기에 이러한 고초가 있음을 잘 알지 못한다.


공무원이 절대 말할 수 없는 일. 그것은 "우울함"이다.

혹여는 힘든 공무원 시험을 통과하려고 너무 공부만 하다가 공무원이 되어서들인지 감정을 참아내고 회피하는 것에 더 익숙해서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이 우울한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결국 어떤 사안에 대해서 원인과 결과를 찾아내어 책임을 지는 직업이 공무원이기에, 내가 우울하다고 하면, 우울함의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 그래서 우울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사들은 아무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기때문에 조금 참아보라고 할 것이다.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은 어쩌면 벼랑 끝에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공무원사회에서는.


질병 휴직, 진짜 할 수 있겠어?


공무원에게 "질병휴직"이란 신기루 같은 존재이다. 있지만, 없다. 없지만 존재는 한다.

있지만, 사용할 수 없다. 신체적으로 공무상 집행하다가 크게 다치지 않는 한 쓸 수 없다. (원칙으로는 쓸 수 있지만, 현실은 쓸 수 없다)


공무원 중에서 공황장애나 기타 불안증으로 질병휴직을 한다고 하면, 들을 수 있는 말은 "네가 뭘 했다고 우울해?" 일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게 휴직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복직하기 힘들 것이 현실이다. 꼬리표가 달려서 한번 휴직하면 공문으로 뜨기 때문에 동료 공무원들이 다 알게 되어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어 결국 다시 휴직하게 되는 사례도 많다.


공무원 세계가 워낙 좁기도 하거니와 질병휴직을 하고 나면 돌아오기도 힘들고 돌아와서도 승진은 어렵다. 그리고 참 우습게도 인사팀이 있지만, 질병 휴직 후 복직을 하려 하면 받아주는 과가 없어서 다시 기피부서나 한직으로 배정이 되어 다시 질병이 악화되는 도돌이표가 되기 쉽다. (일반 회사에서도 비슷하지만, 공무원 세계는 섬 같아서 빠져나올 수 없다)


사실 정신병원에서의 유명한 말이 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안 오고
정작 그런 사람들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만 병원에 온다


아마도 그러한 상황 때문에 아마도 많은 공무원들이 참고 있거나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있을 것이다. 아픈 이들이 모여있으니 평균적으로 우울하거나 나 정도는 병원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중증이 오기 전에 상담을 받고 싶거나 한 사람들도 많다. 불안증이 쉽사리 가시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신체가 아픈 것처럼. 감기가 오는 것처럼 마음에도 감기가 오는 것일 뿐인데, 사람들은 정신과는 미친놈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공무원이라는 단어와 정신과라는 단어는 같이 붙기 어렵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도 된 후에도.


민원인들은 와서 말을 한다


"내가 이것 때문에 잠을 못 자요. 빨리 해결해줘요"

"내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


하지만, 공무원들은 말할 수 없다.


"저도 잠 못 자요"

"저도 세금 내거든요!"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을 버티는 것은 '며느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에게 필요한 말이다. 그렇게 9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공무원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은 흘려들을 말도 아니다.


외국에서는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한 움직임들이 많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에서는 나의 '행복' 보다 '일'을 통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렇게 휴가도 쓰지 못하고 일만 열심히 죽어라 했던 나에게도 그렇게 불안증과 불면증이 찾아왔다.

물론, 내가 민원인들에게 직접적인 폭행을 당한 적은 없다. (욕을 좀 심하게 먹거나 멱살이 잡힐 정도?)

나 또한 한동안 그저 '스트레스'가 조금 심할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찾아오고 있는지도 모르고.


나는 휴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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