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아닌데요, 공무원 맞아요

공무원으로 일하는 법 (4)

by LaLa


네 신분을 알리지 마라


공무원이 되고 나면, 금기어가 있다. 절대 시민들 앞에서 "저 공무원이에요"라고 말하지 말 것. 그것은 현장에서 '나 잡아 드세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생각에 공무원이라고 하면 혜택을 더 볼 것 같지만, 요즘 세상에서는 현장 민원 접수를 실시간으로 하게 될 뿐이다. 공무원의 약점은 '민원'이다. 사실 민원의 답은 정해져 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하다. 해결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금방 조치될 수 있는 사안들은 아니다. 내 손으로 고칠 수 있는 것도 다 문서를 통한 승인과 결제가 이루어져 야하기 때문이다. 돈 1원도 마음대로 쓸 수 없기 때문에 내 사비를 들여서 고친다고 해도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저는 공무원 아니고요, 아니요 공무원 맞긴 한데요


흔히 민원이 들어오면 나에게는 딜레마가 있다. 나는 행정직 공무원이 아니다. 임기제 공무원이다. 쉽게 말하자면 계약직이다. 갑을병정 중의 정.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늘 계약직들이 그러하듯, 귀찮고 진급도 안 되는 힘든 일들은 계약직에게 온다.


임기제는 일반 회사에서 다니다가 공무원으로 특별 채용되는 경우이다. 물론 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는데, 시험은 국가고시가 아닌 공고를 낸 곳에서 치르게 된다. 1년 계약도 있고, 2년 이상 계약 연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진급이 없다. 호봉 인상률도 없다. 연봉이 시세 반영으로 아주 조금 올라갈 뿐이다.


연봉을 높게 측정해서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같은 공공기관의 경력이 아닌 이상 경력으로 쳐주지 않았다. 나는 거의 10년 가까이 되는 내 경력을 날리고 최저 시급으로 임용되었다. 덕분에 나의 야근비도 최저시급에 의해 측정된다는 함정이 있었다.


나의 목줄은 나라에서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담당 팀장과 과장 손에 달려있다. 나는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나는 공무원이긴 하지만, 공무원의 장점인 '안전성'과 연금은 없다. (공무원연금은 10년을 납입해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10년을 다닐 목줄이 될지는?)


공무원이 전화를 돌리는 이유?


숭례문 화재 사고 당시 기와를 걷어내고 불길을 잡아야 하는데, 승인을 기다리다가 숭례문이 홀딱 다 타버린 사건이 있었다. 누군가는 문화재가 더 중요하니 먼저 불을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전에 다른 문화재에서 화재가 나 윗선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기와를 들어내고 불길을 잡은 소방관이 질책을 당했다. 문화재를 지켜내고 불길을 잡아도 욕을 먹고 반성을 해야 하니. 누가 자신의 직업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려고 할까. 이러한 구조는 그래서 공무원들은 비 자발적일 수밖에 없다.


비자발적인 정상인 곳에서는 자발적으로 나서면 문책의 대상이 된다. 흔히 '나대지 마라'가 통용되는 곳. 그리고 내가 얼마 안 있어서 '다른 곳'으로 갈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게 된다. 책임이 분산된다.


충주시청 유튜브에서 예시를 든적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bHVvd82bsE&t=1s


충주시청 유튜브에서 든 예시는 "혹시 시 브랜드 캐릭터가 들어가 있는 관광 팸플릿이 있나요?"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럼 전화는 '홍보실'로 돌린다. 하지만 홍보실에서는 캐릭터가 없다며 시브랜드 슬로건을 관리하는 '기획예산과'로 전화를 돌린다. 기획예산과는 슬로건은 있는데 캐릭터가 없어서 캐릭터가 있는 과로 돌려드릴게요. 하면서 '농정과'로 전화를 돌린다. 농정과에서는 캐릭터가 농산물 캐릭터지 시 브랜드 캐릭터는 아니라고 말하며 관광 팸플릿이 있는 '관광과'로 전화를 돌린다. '관광과'에서는 팸플릿은 있지만 다른 시 브랜드가 들어간것은 없다며 '홍보실'로 다시 전화를 돌리게된다는 내용이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상하게도 나눠진 분류에따라 책임이 분산되므로, 전화를 돌리는 경우가 많아진다.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담당자 바꿔드릴게요" 이다. 핑퐁게임이 많아지는 직업이다. 한문장에 여러 단어를 넣으면안된다. 그래서 신입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서 나서서 민원을 응대하다가 담당이 아니어서 실수가 나오거나 더 욕을 먹는 경우가 생긴다. 이후, 점차 담당자를 바꿔드린다며 전화를 돌리는 것이다.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의 집단


사회적 민감성 척도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승인, 사회적 지지 및 감정 등의 사회적 보상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를 말한다.


사회적 보상 신호는 타인의 감정이나 칭찬 거부 등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이에 따라 정서 반응이나 행동반응이 달라지는 성향을 뜻하는데, 공무원의 특성상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보니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민원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것은 하는 일의 성격도 영향을 많이 미친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빨리 알아차리고 도와주어야 하는 성격의 일은 공공기관뿐만이 아니라, 경찰서, 소방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는 성향이다.


반대로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사람들은 회사에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잘 보이기)을 받을 생각으로 회사에 케이크를 가져오거나 하지 않는다. 회사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러 오는 곳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입지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보상 신호와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기 때문에 따뜻한 사회적 관계를 더 쉽게 형성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주관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릴 수 있게 되는 기회가 많아진다.


만약, 사회적 민감성 척도는 높은 수준인데 충분히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면, 중독이나 폭식, 과시로 이어지면서 때로는 사회적 민감성이 나쁘게 발휘되는 경우도 있다. 그 집단에서 제일 약한 존재를 괴롭히는 방법으로 욕구를 충족하려는 성향까지 보이게 되는 것이다. 우위에 서고 싶은 것.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일은 재미있니?

내가 임용이 된 후 1년 내내 들었던 말은 "일은 재미있니?"이다.

대민봉사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비 오는 날 집에 하수구 냄새가 난다면서 전화해서 민원을 넣으면서 짜증을 부리거나, 내가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야 하는데, 대로변의 구급차 소리가 짜증 나니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꺼달라거나, 도로변의 나무를 깎아놓은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택시 아저씨조차 이마트 가는 길을 안내해달라고 해놓고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욕을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데 재미있을 리가.


하지만, 그 말에 대답은 정해져 있다. "재미있어요"라고 하지 않으면, 혼이 났다.

타 부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는 내 대답은 성에 차지 않았다.


직열에 따라 하는 일들은 달라 지미만, 공통적으로 하는 민원 대응과 당직, 재난지원 구호 활동을 하다 보면 겪게 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저번 주 우리말 겨루기에 나온 단어를 맞추는 퀴즈를 보면서

"재미있다"라는 단어가 유쾌한 기분이라는 뜻 외에도 '좋은 성과나 보람'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미있다.
1. 명사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
2. 명사 안부를 묻는 인사말에서, 어떤 일이나 생활의 형편을 이르는 말.
3. 명사 좋은 성과나 보람.


나는 그제야 "일은 재미있니?"라고 물어본 것이 '좋은 성과나 보람을 느끼냐'라고 물어본 것일 수도 있구나 하는 뒤늦은 생각을 깨달았다.


멀리서 바라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가끔은 무리에서 벗어나 멀리서 보면 보이는 것들도 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법 다른 글보기

https://brunch.co.kr/@lalachu/25

https://brunch.co.kr/@lalachu/65


https://brunch.co.kr/@lalachu/53


https://brunch.co.kr/@lalachu/15


이전 12화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모르는 신입 공무원 퇴사 이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