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속에서 발견하는 나의 마음
제가 임신하기 바로 전해에 필사라는 것이 유행하였는지 [김용택의 꼭 한 번 필사하고 싶은 시]라는 필사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꽤나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부제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라는 김욕택 시인의 문구가 캘리그라피로 쓰여진 책이였는데 출판사에서도 '시 한편을 한 자 한 자 옮겨 적어보면 상처 받은 감성이 치유된다'라고 홍보한 것을 보면 지금이나 그때나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일상을 모두가 보내고 있었나 봅니다.
나름 시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책을 구입했지만 그대로 책꽂이에 몇 달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얼마 되지 않아 임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책이 눈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태교라는 명목으로 저의 첫 필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필사를 하며 마음을 울렸던 시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드라마 '도깨비'보다 먼저 새겨 두었던
천양희 시인의 '너에게 쓴다'라는 시입니다.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 풍화되었다.
당시 저는 태교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제 생에 그렇게 일기를 열심히 썼던 기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걸 기다리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과 생각들을 예쁘지 않은 글씨였지만 매일 기쁜 마음으로 기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중에 마주한 이 시는 마치 이제 '엄마'가 되는 내가, 곧 태어날 '아이'에게 전하는 마음을 담은 시 였습니다. 언젠가 이 마음을 전해줘야겠다며 일기장 맨 앞에 한 번 더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일기장을 꺼내 그 시를 보는데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아이를 기다렸는지,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그 시를 써내려 갔는지 그때의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육아하면서 힘들고, 억울하다고 불평불만하던 저의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삐뚤삐뚤한 글씨를 내려다보며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시간과 감정이 잠시 그 공간에 머무르게 되더군요.
필사라는 행위는 단순히 글을 따라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의 손과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게 되는 거 같습니다. 그냥 빠르게 읽고 넘어가거나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밑줄을 그어 남기는 것과는 또 다릅니다. 단순히 그 문장을 '이해'하고 지나가는 것을 넘어서 문장에 '기대어' 머무르게 됩니다.
어쩌면 필사는 심신이 지쳐있는 현대인에게 정말 필요한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생각과 경험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위로를 받기도 하는데요. 정신없이 보낸 하루를 잠깐 내려 놓고 필사를 하는 동안만큼은 잘 해내지 못한 하루도, 부족하다고 느낀 나 자신도 잠시 내려놓게 되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들에게 마음의 명상이 어려울때는 필사를 해보라고 권해주고 싶습니다.
필사를 하는 시간은 마치 명상의 시간과 비슷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더 많이 나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됩니다. 마음이 급하면 글씨도 급해지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문장 하나 하나가 지니는 의미도 다르게 다가옵니다.
엄마들에게 필사는 그저 결과를 남기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외면하지 않기 위한 기록이자 치유가 됩니다.
여전히 서점에 가면 사람들이 보이는 곳곳에 필사책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물론 기록이라는 것이 트랜드로 여겨지며 많은 사람들이 더 관심을 보인 까닭도 있지만 누군가의 문장에 기대어 내 마음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주길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엄마의 하루도 필사를 통해 잠시 내려놓고 치유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더불어 나에게도 다정해 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