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풍은 없다
근로감독관이 된 지도 거의 1년이 되어간다.
왜 내가 고용노동부에 지원했을까. 그것도 하필 근로감독관에.
후회가 막심한 요즘이다. 드라마보다 더 상상 초월한 일들이 많다.
작년 국가직 필기 합격 후에 때마침 MBC에서는 고용노동부의 후원을 받은 듯한 드라마를 상영했으니
이름하여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다니던 멀쩡한 직장 그만두고 초라한 장수생 되어, 낡고 허름한 운동화 신고 터벅터벅
시험장에 들어가는 조장풍의 모습이
어찌 내 모습과 똑같았는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니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 그를 불쌍히 여겨 마지막 시험에서 찍은 게 다 맞아 합격한 조장풍.
나 역시도 '이젠 끝이다'라고 본 국가직 시험에서 대운이 터졌으니,
몇 년 만에 시험이 쉽게 나왔고 시험 보기 직전까지 공부했던 것들만 쏙쏙 나왔다. 결국 합쳐서 5개 틀리고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조장풍에게 심하게 감정이입을 했던 걸까.
마치 내게 근로감독관으로 오라는 신의 계시처럼 들렸다. 이 드라마는 나를 위한 드라마라고..
지난 백수 시절의 아픔은 바로 이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었다고.
임용된 후, 인사 담당하시는 분이 특별히 원하는 곳이 있냐고 질문했을 때,
근로개선지도과로 가면 사명감 있게 일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호기 있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나한테 얼마나 고마워했을까.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그곳에 신입이 냉큼 들어온다고 하니. 그것도 사명감을 뿜 뿜 하면서.
일단 제 눈물부터 닦을게요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오히려 민원인들이 나를 아프게 할 줄이야.
'난 당신 편인데 왜 나를 적으로 여기는 거지?'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조사가 자신의 뜻대로 관철되지 않으면, 국민신문고에 내가 하지 않은 말들을 써서 왜곡시키는 건 물론이고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부풀려서 나를 아주 몹쓸인간으로 만들어놓기 일쑤였다.
그들이 국민신문고에 쓴 글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저런 파렴치하고 무능력한 공무원은 잘라주세요."였다.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했다. 국민신문고를 쓴 민원인에게.
그건 오해라고. 오해를 푸시라고. 제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고.
아주 공손한 마음을 담아서.
그러나 내 전화를 받고 난 민원인은 오히려 당황했다. 무엇보다 나 모르게 비밀리에 쓴 신문고인데(나를 징계 주려고)
어떻게 내가 알고 자신에게 전화했는지 흠칫 놀라기 일쑤였다.
그들은 오히려 방어태세로 전환하여 나에게 역공격을 했다. 네가 뭔데 전화하냐고.
나의 어설픈 진심 어린 행동은 약점이 되어,
그들에게 또 다른 국민신문고를 남기는 빌미를 제공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고 망연자실해 있던 나를 보며, 옆에 팀장님이 위로하셨다.
오해를 풀 수 없을 거라고.
그때 알았다. 그들은 오해를 풀고 싶지 않다는 걸.
내 진심 따윈 듣고 싶지 않다는 걸.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무서웠다. 인간의 본질이.
그 이후로 나는 국민신문고에 나를 신고한 민원인들에게 두 번 다시 전화를 하지 않았다.
신기하게 내가 조용히 경위서를 쓰고 넘어가는 동안에 그들 또한 국민신문고에 나를 신고한 이후
어떤 이의 제기도 하지 않고 그렇게 조용히 흘러 지나갔다.
악성민원인은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로감독관이 되어 양당사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위로해주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이 되어가는 지금,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무구한 위험한 생각이었는지,
얼마나 나를 다치게 한 행동인지를.
이제는 안다.
악덕사업주를 때려잡아보자고 했지만, 악덕 노동자도 있음을 알았다.
아니, 이곳 노동청에선 악덕 노동자, 무개념 노동자가 훨씬 더 많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심한 방황을 했다.
노동청은 노동자 편 아니에요?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에 대해 조사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신고 사건의 경우
범죄 혐의가 명백히 밝혀지기 전까진 그 누구의 편도 온전히 들 수 없다.
노동청 사건은 결국엔 형사사건이다.
심적으로 억울한 부분은 있겠지만 섣부른 감정에 약자라고 느껴지는 누구의 편을 들었다가(심지어 공감조차)
결과가 자신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나오지 않을 때, 감독관에 대한 기대는 증오와 분노로 바뀌는 걸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때 감독관은 자신이 신고했던 사업주보다 더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전환된다.
뚜렷한 '선과 악'의 대립이 없는 곳이 바로 노동청에서 감독관은 참으로 외로운 직업이다.
누구의 온전한 편을 들 수 없기에, 누구의 온전한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저희는 채권추심업자가 아닙니다
신고사건의 90% 이상이 임금체불이다. (적어도 내겐 99.9%였다)
때문에 근로감독관은 때론 수사관인 '특별사법경찰관'과 '채권추심업자'사이에서 방황한다.
국가가 노동자와 사업주의 임금채권에 개입하는 건 일본과 한국뿐이라고 한다.
다른 국가들은 이 부분을 민사로 진행하게끔 하고 감독 본연의 업무에 치중한다고 한다.
사후약방문이 아닌 사전예방이라고 할까.
차라리 근로감독관에게 '강제 집행권'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왜 노동청이 돈 안주냐고 항의하는 민원인들에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한 후에 사업장에 찾아가서 강제 집행권을 행사하여 조장풍처럼 사업주의 멱살도 잡고 무릎도 꿇린 다음에 돈을 빼앗아서 주고 싶다(현실에서 근로감독관이 조장풍처럼 사업주의 멱살을 잡는다면 바로 국민신문고에 신고당하고 각종 언론사 기자들이 와서 '근로감독관 사업주에게 갑질'이라는 헤드라인으로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겠지)
짧지만 극도록 강렬했던 노동청의 경험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특히 첫 공무원 시작을 근로개선지도과에서 바로 시작하여, 아직 공무원의 모습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거친 민원인들을 상대해야 했던
나의 어설펐던, 하지만 진지했던 나의 이야기들, 그들의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왜 그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결국 감정싸움으로 찾아오는 이곳 노동청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믿음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난 여기서 어떤 답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