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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키 Sep 01. 2020

오늘도 전화기를 집어던졌다

진상 민원인을 대하는 자세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유일한 장점은

민원인에게 일방적으로 친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오히려 민원인에게 굽신 거리는 모습은 지양된다는 것. 선배들 또한 감독관의 자부심을 강조한다.

소신 있게 행동하고 중립적으로 조사할 것을.


그런데 능구렁이 같은 사업주한테 오늘 말렸다.

출석을 어떻게든 안 하려고 이리저리 나한테 정식 조사 전에 물어보면서, 자기가 했던 말은 기억이 안 난다며 자꾸 모르쇠로 일관한다.

오히려 내게 자신이 벽 보고 얘기하는 것 같다며

출석 안 하면 안 되냐고 몰아붙인다.


근로자들을 개념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자신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처음 통화 당시에는 자신은 지급할 게 있다면 당연히 지급한다고 하면서 막상 법 위반이 있어 보여서 퇴직금 지급 의무가 있어 보인다고 하자, 내가 말을 바꾸면서 횡설 수설 한다고 한다.


아오. 이 인간을 콱 그냥........

진상 아닌 진상이군.


이럴 때 더 대화하면 시간 낭비한다는 걸 이제 육감으로 안다.

말꼬투리를 잡아서 내가 말실수하면 그거 하나 갖고 물어 늘어져서 싸움 거는 유형이다. 사업주한테  스케줄 확인해보고 다시 전화하라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니 전화기를  던져버렸다.


팀장님은 이제 그러려니 하신다. 전화기를 하도 많이 던졌더니 가끔 음질이 끊긴다.


후. 공무원 되기 전엔 공무원을 욕했는데

막상 공무원이 되니 국민이란 이름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된다.


그만두고 싶다.

10명 중에 그 한두 명 때문에.

진상을 만나면 내가 했던 노력과 이 일에 대한 자부심이 단번에 흔들리게 된다.

이곳에 평화란 없구나. 아니, 모든 직장인들 또한 그렇겠지만..


옆자리 감독관님께는 헐크 같은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하다고 메신저로 사과드렸다.


이 감정에 휩싸이면 안 된다.

민원인에게 화를 냈다는 자괴감,

나 자신을 좀 더 지키지 못했다는 수치감.


사건은 계속 들어오고, 진상도 길어야 2개월이면 안녕이다.  사건은 잘 풀릴 때가 있고 안 풀릴 때가 있는 법.


그럼에도 내 마음은 이게 한계란 생각이 든다.

이미 버틸 만큼 버텼다고.  

하지만 내게 애정을 쏟고 나를 격려해주시는 팀장님들과 옆자리 감독관님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그 한 명 때문에 내 동료를 포기할 것인가.

나는 매일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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