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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Dec 24. 2020

분가한 아들, 격주 반찬 셔틀 4년 차.

-엄마는 ‘밥’이다.



사진관을 하는 아들의 여친에게서 문자가 왔다.

할머니(우리 엄마)의 영정사진이 나왔으니 이번 주말에 우리 집으로 가지고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전번 아들 생일에도 일이 있어 못 뵈었으니 얼굴도 뵐 겸

바람도 쐴 겸 겸사겸사 같이 오겠다고 한다. 이번 주말은 마침 아들 반찬배달 날이어서 

내가 가겠다고 했더니 자기 차로 반찬 셔틀도 할 수 있다며 (아들은 장롱면허) 

굳이 온다는 것을 말릴 수가 없었다.

맘 속으로 ‘이 시국에.., 했지만, 사실 시국은 변명일 뿐 그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뭘 해먹여야 하나’는 것이었다.

“연포탕이나 할까?” 문자를 보냈더니 “네 저 연포탕 넘 좋아해요” 스마일에 하트 뽕뽕 답이 왔다.

그리하여 이틀 전에 마트 두 군데에서 장을 봐 두고, 전날에는 배달 갈 반찬 만들고, 당일, 수산물센터에 가서 낙지, 백합, 가리비, 전복, 새우등 해산물들을 준비, 쓰지는 않고 혹시나 하여 넣어 놓았던 세숫대야만 한

전골냄비를 꺼내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아들은 오자마자 컨디션이 안 좋다며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누워 버렸다.

왜 그래? 내 눈짓에 여친도 '가끔 그러더라고요'하며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들썩인다.

묻고 나니, 질문자와 화답자가 바뀐 것 같다. 누가 물을걸 누가 묻는 건지.  

생글생글한 웃음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푸욱 맥이 빠진다.  

행여 딴사람들이  눈치챌까, 아무렇지 않은 듯 쓸데없이 너스레도 떨어본다.  

   


아들이 분가한 지 4년째, 4년 내내 격주로 반찬 배달을 하고 있다.

보광동 언덕 위 차도 못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 당연히 주차장은 없고,

길가에 불법 주차해야 하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전화받고 내려온 아들이

‘잘 먹을게요’ 하며 한번 씨익 웃어주고 올라가면 임무 끝, 그야말로 배달이다.

돌아오는 길은 홀가분 그 자체, 숙제 다 한 학생처럼 어디 놀러라도 가야 할 기분이다.

남들은 일주일이 금방이라는데, 나에게는 이 주일이 일주일만큼 빨리 다.

시간을 세는 단위가 이 주일이 되었고 모든 일정도 거기에 맞춰서 정해진다

.


처음부터 이렇게 하리라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뭔가를 먹을 때마다 본능적으로 옆구리 한쪽이 켕겨서 따로 챙겨놓고, 가는 김에 이것저것 

만들어가다 보니 이것이 루틴이 되고, 요즘 말로  '빼박'이 되고 4년의 역사가 되었다.

이왕지사 배달하는 거, 반찬 외 간식, 과일, 건강보조제까지 매번 20여 가지 이상이 되다 보니

주차장까지도 캐리어 신세를 져야 한다

적당한 용기. 포장도 일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메뉴 선정이 제일 힘들다.

밑반찬, 국, 찌개, 고기.. 종류도 매번 같을 수 없고, 요리 방법도 바꿔가며 해야 한다.

구웠다, 볶았다, 쪘다, 희게도 했다가, 빨갛게도 했다가.

여행을 가면 재래시장에 들러 반찬이나 간식이 될 수 있는 특산물을 사 오고, 내가 만들기 힘든 것은 

(간장게장이나 오징어순대 같은 것) 인터넷 검색으로 택배를 시키기도 한다

그나마 사계절 제철 식재료는 메뉴를 달리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봄에는 나물, 주꾸미, 여름엔 열무, 오이소박이, 가을 바지락, 낙지, 겨울 어리굴젓, 호박죽 등.

처음에는 이틀 내내, 지지고 볶느라 음식 냄새에 멀미가 나고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이제는 요령이 생겨 예전만큼 머리 싸매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냉장보관은 3일 정도 가능하니까, 그 정도 먹을 음식만 만들고, 나머지는 평상시  

우리가 해 먹을 때 조금씩 더 만들어 냉동해두고, 가끔 1~2인용 밀키트를 한 두 개 이용하기도 한다.

(밀키트는 실속 없이 비싸기만 하다고 가져오지 말라는 아들의 말에 잠시 좋다가 말았다.)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 더 이상 뭘 바래? 배짱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냥 지가 해 먹으라고 해’ 처음엔 말리던 (말리는 척?) 남편도

이젠 집안 행사인양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도 않고)     

남편도, 아들 친구도, 내 친구도 신기해하는것은 사실 내가 아니고 아들이다. 

엄마에게는 세상 제일 좋은 풍경이 자식 입에 먹을 것 들어가는 것이니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아들이 엄마의 음식을 꼬박꼬박 먹어주는 것이 신통하다는 것이다. 

(신기하다는 표현을 좋게 돌려서 말한 것일 수도)   

대부분의 싱글남의 냉장고는 비어있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로 차 있거나,

대부분 제발 가져오지 마라고 손사래를 친다는데.. 아들은 알뜰히 챙겨 먹고,

신김치, 남은 야채 등, 처치하기 힘든 음식은 도로 집으로 보낸다.


모든 풍경에는 배경이 있듯, 여기에도 배경이 있다.

아들은 집에서 거주와 음악 작업을 같이 한다.

성격이 예민(?)하여 식당의 소음에 민감하고, 특히 가사가 들리는 음악, 본인 기준으로

그 식당의 격에 맞지 않는 음악)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해서 들어오자마자 나가거나,

주인에게 음악을 꺼 달라고 요청하기 도하고, 옆 테이블 사람들에게 정숙을 요구하고,

통화하는 사람에겐 나가서 하시라고 해서 같이 간 일행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식당을 가지 않게 되고, 생일이나 명절도 집에서 먹게 되었다.

또 하나의 배경으로 아들의 20대 내내  객지 생활이었던 이유도 있다.

부산 해양대를 가면서 기숙사 4년, 군 복무 대체로 3년간 승선, 느닷없이 독일로 날아가 4년,

 10년을 바깥 밥을 먹다 보니 그때 못 먹은 집밥을 지금 찾아 먹는 것일 수도 있다. 아들 둘 키우면서 배운 공식, '지랄 총량의 법칙'에, '집밥 총량의 법칙'추가되었다.

 


가끔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콕 집어 별 잘한 게 없는 내 인생에서 잘한 게 두 가지 있다고. 

같은 성별로 아이를 낳은 것( 200점짜리 딸 둘 대신 50점짜리 아들 둘이지만), 그리고 밥 잘해 준 것.

나중에 아이들이 나를 기억할 때 ‘우리 엄마가 먹는 거 하나는 정말 신경 썼지’라고 (아마도) 할 것이다. 

‘그거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래’로 의기 탱천 했다가 ‘아님 말고’로 꼬리를 내린다.

(나이가 들면서 위의 두 문장이 좌우명이 되었다).

 어쨌든 엄마는 ''이다. 자식들의 영원한 ''.

요즘 세대는 그 ''이 하기 싫고, 그 ''이 되기 싫어 무자녀를 선택하는지도 모른다.

     


ps. 아들이 돌아가고 난 뒤 찌뿌둥한 몸을 풀려고 나선 산책길, 갑자기 날짜가 궁금해져서

핸드폰을 열어보니..‘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반스의 말처럼 오늘이  결혼기념일이었다.

어쩐지 케익이 땡기더라니.. 집 앞 파리바게트에서 조각 케익 하나 사서 자축.

긴 하루가 지나갔다.

결혼기념일에 식구들에게 거하게 연포탕을 끓여주었다는 웃픈 역사를 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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