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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Jan 16. 2021

해가 짧은 겨울에는 햇살 유목민이 된다.


겨울 해는 짧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 햇살 좋은 날,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뒤적이고,

습관처럼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보면, 이미 햇살은 거실을 점령하고,  

잠시 돌아다니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햇살은 저만치 뒷 꽁무니를 보이고 있다.

이제 슬슬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이미 해는 기울고, 하릴없이 보낸 하루에

마음 한구석 공허함이 밀려올 때에는 짧은 겨울 해가 야속해진다.

겨울 햇살은 게으름뱅이처럼 느지막이 와서, 무한정 놀아줄 것 같이 다정하게 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볼 일이라도 생긴 듯 쏜살 같이 사라진다.

겨울 햇살은 천천히 올라와서 급하게 내려가는 미끄럼틀 같다.

     

겨울에 나는 햇살 유목민이 된다.

긴 책상을 벽에 붙이고 의자 3개를 나란히 놓아 햇살의 움직임에 따라 자리를 옮긴다.

오후 4시쯤, 조금 남은 햇살을 따라 마지막 의자로 자리를 옮기면 햇살은 급격하게 빛을 잃는다.

모닥불이 사그라들 듯, 남아있던 온기마저 사라지고 슬그머니 한기가 느껴지면 방탈출의 시간이다.

머리와 눈의 힘을 풀고, 굳어있던 엉덩이와 허리를 데리고 산책을 간다.

낮이 짧고 밤이 긴 요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주경야독’에 적합한 계절이다.

‘주경’이 충실했든 부실했든, 저녁에는 느긋하게 ‘야독’을 한다.

책을 보고, 온라인 이웃집도 드나들고, 쇼핑도 하고, 내일 아침 커피를 기대하고.

사소하지만 생활의 근간이 되는 모든 일이 내게는 ‘야독’이다.

 

    

한겨울, 팬데믹은 ‘햇살’이라는 예쁜 이름의 새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

영원할 것 같은 '추위'와 '감금'이라는 낯선 감정은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나와 놀아준 햇살 친구는 ‘지금 이맘때’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짧아서 아쉽고 아까운 겨울 해에게  투정을 부리던 기억 또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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