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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May 14. 2023

남편과 함께 떠난 기대반 걱정반, 코카서스 패키지 여행

-‘그렬려면 자유여행 가세요’


오랜만에, 패키지여행, 남편과 함께, 이 세 가지 조합만으로도 가기 전부터 살짝 불안의 기운이 감돌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코로나 시절에도 혼자, 또는 동생, 아들과 심심찮게 자유여행을 다녔던 나와 달리 남편은 7년 만의 해외여행, 차라리 안 가고 만다는 패키지 여행(이하 패키지) 혐오증(?)을 가지고 있는 나지만, 재워주고 먹여주고 따라다니는 게 젤로 편하다는 패키지 선호자 남편에게 양보할 수밖에.

수락은 했지만 지난번 베트남 여행에서 선택관광문제로 가이드와 고성이 오갔던 전적이 있는 남편에게 가기 전부터 신신당부, 그래서 여자들에게 가족여행은 여행으로 위장된'출장'이다.


사실 남편을 주요 핑곗거리 삼았지만 더 큰 문제는 나였는지 모른다.

내가 젊었을 때 패키지여행 붐이 일었고 떠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여 패키지의 폐해(?)는 당연시되었다. 매일 아침 낯선 사람들과 눈 맞추고 인사하기, 버스 안 왁자지껄한 사람들 소리와 끊임없이 들어야 했던 마이크소리와 누구의 취향인지 모르는 강요된 음악 감상, 치열했던 창가 자리 쟁탈전, 가이드 졸졸 따라다니기, 횡포에 가까운 옵션과 쇼핑 강요등. 패키지는 내게 '뜨거운 감'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이 보편화되고 여행 방식도 진화되어 자유여행이라는 신세계가 열렸으나 이미 의욕도 에너지도 딸리는 연배, 자유여행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그나마 요즘 뜨고 있는 반 패키지는 희망의 메시지)

    


기대반, 걱정반으로 떠난 남편과의 패키지여행, 남편도 나도 잘 견딜 수 있을까, 패키지도 진화했겠지, 살짝 기대를 했지만 그대로였다. (수신기 착용이 바뀐 정도). 코카서스 3국은 코로나  처음 해외여행의 문을 연 관광 초기국, 우리나라보다 많이 뒤떨어진 경제의 영향인지 가이드들은 한치도 변함없이 예전의 레퍼토리(서비스로 착각하는 마이크 잡기, 본인 취향의 음악 틀어놓기, 안물안궁 개인사)를 답습하고 있었다.

일행의 과반수이상인 어르신들은 숙달이 되셨는지 또는 포기했는지 호, 불호를 표현하지 않으셨나또한 뭐라고 싫은 표시를 했다가는 ‘그럴려면 자유여행 가세요’라는 말을 들을세라 인생 최고덕목인 ‘견디기’로 버티리라 작정했는데, 모든 것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놀랍게도 바뀐 것은 우리, 나와 남편이었다.  현지 가이드의 쉴 새 없는 마이크소리와 사람들의 수다에 어느 순간 한몫 거들며 리액션까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갑자기 내가 낯설어질 정도, 이런 반전이.. 오기 전 마음으로 수없이 한 예행연습은 시간과 감정의 낭비였을 뿐이었다. 나이 탓? 공부 탓? 둘 다!

무서운 시간의 힘이다.     

       


‘혼자 있기’는 패키지의 불포함 사항이지만 가끔은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 대안은 선택관광. 이번 여행은 선택관광이 다섯 개, 다 안 할 수는 없고 고민 끝에 보트 타기 두 개를 빼기로 했다. 해외여행에서 배 타기는 매번 실망이었는데다, 호숫가나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스케치 한 장 하는 것은 내겐 놓치기 힘든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첫날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벨을 눌렀다. 차례로 샤워 중이던 우리는 잠옷차림으로  꼭 지금 해야 하는지,(예전에는 버스안에서 했는데) 보트 타기를 빼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 상황이 어떤지 묻는 나에게 가이드는 올 동르라미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어렵게 두가지를 뺐지만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 가이드에게 우리는 투명인간이 되었고 석연치 않은 방 배정에 잠시 언쟁이 오가기도 했다. 물론 우리의 피해의식일 수도 있지만 그 느낌은 여행 내내 따라다녔다.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지극히 사적인 패키지의 법칙, '선택관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모두 해야 한다'.

나중에 보니 우리 말고 보트 타기를 뺀 팀이 또 있었다. 혼자 남겨지는 줄 알았던 그 팀과 우리는 전쟁터에서 아군을 만난 듯 손을 잡고 반가워하며 여유 있게 멀어져 가는 배를 보며 손을 흔들며 호숫가를 산책했다. 그 한적한 풍경은 마음으로 들어와 스케치가 되었고 이번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또 다른 패키지의 법칙은 ‘부정적 감정 최대한 자제하기’. 너무 싫을 때는 그냥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대신 호의와 감사표시는 확실하게, 살짝 오버해도 된다. 여유로움을 가장한 각기 다른 30여 명의 감정선은 활시위처럼 팽팽하여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듯, 말조심 표정조심이 답이다.

우리는 피차 일시적 동행자, 평화를 위한 노력은 필수!

      


기독교가 처음 승인인 지역인 만큼 여행지는 거의 성당과 수도원이었다. 우리나라의 사찰처럼 아름다운 산을 끼고 있지만 절이 산속에 묻혀있는 반면 성당 수도원은 언덕 위나 산 위에 우뚝 서 있다. 머리에 산을 이고 있는 절과 하늘을 이고 있는 성당은 동서양의 차이만큼 그 모습이나 위치도 다르다.

높고 푸른 하늘과 설산에 마음을 빼앗기고 크고 웅장한 유럽의 성당과 달리 조그마하고 고즈넉한 성당에 가슴이 뛰었지만 하루에도 몇 군데 성당 순례를 하다 보니 나중엔 ‘또 성당’이 되고 말았다. 발음하기도 힘든 외국어, 하나도 힘든데 수십 개를 외우기는 에즈녁에 포기하고 풍경만 마음에 담았다. 슬그머니 떠오르는 지론 ‘너무 많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과 같다.

어디선가 ‘그렬려면 자유여행 가세요’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급 마무리~

    


패키지는 여행이라기보다 관광이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뺑뺑 돌다 보면 그림은 꿈도 못 꿀 일, 알면서도 습관처럼 도구는 챙지지 만 그리지 못하는 멋진 풍광과 도시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 침만 꼴딱 꼴딱 삼킬 수 밖에. 그나마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 근처의 마을을 그리고, 버스가 고장 나서 잠시 쉴 때, 시내에서의 한 시간여의 자유시간등, 짬짬 스케치로 갈증을 풀었다. 나보다 먼저 장소를 물색하고 멍석을 깔아주던 남편에게 감동, 앞으로도 패키지는 남편과 함께라는 또 하나의 패키지의 법칙을 만들고.

     

여행의 설렘에는 어느 정도 기우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 또한 처음 세 가지 조합 외 요양원에 계신 엄마, 13일 동안 혼자 있어야 할 아들등, 걱정을 안고 시작되었으나 여행의 즐거움은 그마저 잊게 했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의도치않은‘사람과 풍경', 풍경을 보러 갔는데  ‘사람’이 별책부록으로 끼어 있었다. 때로는 별책부록이 더 재미있었던 옛날 잡지의 기억처럼, 쓰다 보니 새록새록 떠오르는 사람들. 강릉팀, 서천댁, 통영녀, 진관동, 우연히 만난 대학선배, 그리고 익명의 사람들.. 앞으로 한 달은 여행의 추억으로 거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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