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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Apr 23. 2023

바다, 커피, 산.. 강릉엔 또 뭐가 있나요?


겨우내 강릉노래를 불렀다. 강릉 강릉 하다 보니 강릉은 어느새 봄이 되면 만나기로 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커피와 카페로 유명세를 탄 강릉의 바다는 이미 알고 있었고, 안반데기의 장관에 ‘강릉에도 산이 있었다’고 쓰기도 했는데, 바다와 산 외 또 무엇이 있길래 강릉이 가고 싶었까?

답은 강릉의 오래된 마을이다. 니는 도시를 여행할 때 유명 관광지보다 구도심을 먼저 찾는다. 조금은 낡고 허술하지만 켜켜이 쌓인 생활의 때가 그리움을 불러오는 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그 시절의 향수에 젖어볼 수 있는 곳,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오래된 마을은 그 자체가 내겐 최고의 관광지다.


강릉은 도심에 있는 ktx역으로 아침 일찍 떠나 다음날 밤에 돌아오는 꽉 찬 이틀여행이 가능하고 역에서 멀지 않은 마을들은 뚜벅이여행에 적격이다. 갈 곳이 정해지면 나서기가 쉬워진다. 하지만 생각과 실행은 별개의 문제, 머리에서 발까지 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긴 여행이라고 하지 않던가. 때마침 아들의 여행으로 생긴 틈새, 아침 도시락과 저녁 준비에서 놓여 놨다는 명분까지 생겼으니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조건 떠나야 할 것 같다. 물론 엄마의 의무도, 명분도 지극히 사적인 것이라 남들이 수긍하기 힘들다 하더라도? 내가 만든 법이니 조금 뻔뻔해지기로 개정.

     






‘봉봉방앗간’은 카페다. 방앗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이름만이 방앗간이었음을 말해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카페 내부와 달리 재밌는 이름이 한몫하는 카페, 재밌으면 된 거지. 예술도 사는 것도 최고의 덕목은 재미, 별 것 아닌 것을 별 것으로 만드는 재미가 여행일지도.








    

시나미 명주. 작고 조용한 마을. 원주민은 떠나고 옛집들은 카페, 숙소, 식당, 전시장이 되었다. 명주 사랑채는 마을의 안내센터, 마을의 정보를 얻으며 잠시 쉬어가는 여행자의 쉼터다. 이층 창에서 보이는 평화로운 마을, 지킴이마저 자리를 비운 아무도 없는 집(?)이 통째로 작업실이 되었다. 주인 없는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기분.. ‘잘 놀다 갑니다' 인사는 지면으로..


월 화거리, 남대천 월화교, 월화정을 지나면 시작되는 철길 산책로, 경의선 숲길의 동생(?)쯤 되는 좁고 긴 산책로는 바로 옆에서 꽃과 나무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보드라운 잎새를 만져 볼 수도 있어 마치 커다란 집 정원을 거니는 느낌이다. 동네 사람들의 산책로인 듯 오가는 사람들은 캐리어를 끌고 두리번거리는 이방인이 궁금하고, 수상(?) 한지 ‘여기서 뭐하세요’ 묻기도 한다.

산책로를 계속 걷다 보면 터널이 나오고 그 주변의 마을이 나의 목적지다. 현지인이 살고 있는, 이름조차 레트로한 부흥마을, 아주 오래되지는 않은 딱 내가 어렸을 때 정도의 마을이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집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이게 무슨 부흥마을? 하다가 금세 ‘아하’하게 되는.

그 당시 이층 양옥집은 부잣집이었으니 골목골목의 즐비한 이층 집은 그 마을 이름으로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해방촌 신흥시장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겹쳐지는.) 재밌는 것은 이층 난간 문양, 요즘과 달리, 시멘트로 만든 나지막한 담을 조각하듯 파서 모양을 낸 난간은 요즘에는 볼 수 없는 그 시절의 유물이다. 밋밋한 난간에 생기를 불러넣는 조금씩 다른 그 문양들이 정겨워서 나는 매번 한참을 올려다보곤 한다.



분명 처음 오는 곳인데 낯설지 않은, 여행 중 만나는 '익숙한 낯섦'은 데자뷔라 할 수 있을까.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연로하신 어른들만이 집을 지키고 있는 마을의 어느 집 대문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그림을 그린다. 언제까지 이대로 있어 줄까 하는 염려와 지금 보이는 풍경에 감사하며 봄날 평화로운 마을은 내  눈과 손을 통과해 마음에 저장된다.

오랜만에 보는 벽화가 없는 마을, 종일 걸어도 피곤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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