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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Apr 04. 2023

벚꽃 그리기 셀프미션으로 대세에 합류하기.

     

바야흐로 벚꽃시즌, 벚꽃을 빼고는 논할 게 없는 요즈음, 눈앞의 풍경도, sns에서도, 넘쳐나는 벚꽃으로 세상은 마치 벚꽃 몸살을 앓는 듯하다.

처방전은 피하기보다 부딪치기. 예방주사를 맞듯 벚꽃이라는 매개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벚꽃 명소, 벚꽃 성지, 벚꽃 뷰 카페,. 우선 검색부터 하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이미 눈앞을 가로막는 벚꽃으로 검색은 시간낭비였음을 깨닫는다. ‘누가 누가 더 예쁜가’ 대회가 열린 듯 자기 동네 벚꽃을 자랑하기 바쁜 블로거들로 전 국토는 이미 벚꽃 명소가 되었으니 결국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벚꽃 명소다. 내 경우 단지 내 차도 삼백미터 남짓의 벚꽃 가로수길이 명소로 등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뒷 배경도 빼놓을 수 없는 조건, 게다가 집과 작업실이 너무 가까운 것도 문제, 이럴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경의선 숲길로 간다, 일 년 열두 달 각기 다른 풍경은 물론, 건물, 사람, 꽃, 나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신용도 100% 소재의 뷔페가 차려진 곳. 이런 대형작업실이 내 바운더리에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며 이번에는 뒷북치지 말고 제때 그려보기로 마음은 다잡는다. 죠거팬츠에(‘라테’ 언어로는 츄리닝) 배낭 메고 마스크, 선글라스 모자. 완벽한 위장은 지나가는 아들도 못 알아볼 터, ‘시선의 극복’조차 필요치 않다.

    


꽃은 내게 그림으로 연결된다.

산수유, 동백, 선인장, 다행히 해마다 종류가 달라지니 매년 같은 것을 그리지 않아도 된다. 올봄 내게 꽂힌 꽃은 벚꽃,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매너도, 염치도 없는 짓, 손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는 화사한 생명력을 그리면서 배로 받으니 꽃도 나도 윈윈게임이다. 게다가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는 ‘공감력’이라는 선물은 덤이다.


그리기 위해서는 그 대상과 친해져야 한다. 생소하고 잘 모르는 것은 아예 그려지지 않는다. 마치 처음 보는 꽃인양, 시인의 말을 빌리면 사랑스러워질 때까지 자세히, 오래 봐야 한다. 벚꽃도 마찬가지다. 작고 보드라운 꽃잎과 굳건한 가지, 빛을 받으면 그 빛을 능가하는 화사함을 내뿜는 꽃잎, 빛이 있는 곳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그림자, 하지만 벚꽃의 그림자는 단순히 빛의 이면이 아닌 독자적 색감이다. 오묘한 색깔은 꽃의 깊이를 더하고 아이러니하게 그림자로 벚꽃의 화사함은 완성된다.

벚꽃 하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벚꽃엔딩.

작고 보드라운 꽃잎이 봄바람에 속수무책 휘날릴 때 사람들은 ‘오오’ 찬탄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함성을 내뱉는다. 모든 꽃이 그렇듯 낙화도 개화와 같은 ‘꽃’의 과정, 벚꽃엔딩으로 벚꽃은 짧고 강렬했던 축제의 휘날레를 장식한다. 이제부터 벚꽃을 보러 갈 때 날씨와 함께 풍속을 살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 벚나무가 이렇게 많아졌을까.

벚꽃을 찾아 ‘창경원 밤벚꽃놀이’를 가던 때는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되었다. 노랑, 분홍 꽃들이 밀려나고 언젠가부터 벚꽃이 봄을 대표하는 꽃이 되었다. 커다란 벚나무 하나만 있어도 카페와 식당은 웨이팅이 끊이지 않고 벚꽃 라떼, 벚꽃 빵같은 효자상품이 등장하는가 하면 벚꽃 앞에서 온 국민이 잠시 사진작가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시국 후 처음 맞는 봄이어서일까. 

올해 유난히 많이 보이는 벚꽃은 사람들에게 박수 같은 위안을 다. 팝콘처럼 터지는 꽃망울에 전염된 듯 벚꽃아랫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별스럽지 않은 일에도 팡팡 웃음꽃을 터트린다. 꽃이 주는 위안에 사람이 주는 위안이 겹쳐져 축제가 되는 마법의 순간.. 


올봄 벚꽃은 과속 중이다.

그림은 과속 스캔들의 울렁증을 진정시켜 주는 명약이다. 게다가 그림은 일년  유효기간의 예방 주사, 이제 걱정 없이 즐기기만 하면 된다. 벚꽃은 계속 북상 중이고 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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