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호승의 <참새>를 읽고
정호승은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이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동시로 시작했다.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발을 들였다. 그 이듬해 일반시 <첨성대>가 다시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에 일반시를 써 왔다.
그는 한국 사회의 그늘진 면과 분단의 현실, 산업화 등으로 인해 변해가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이를 토대로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스한 마음과 희망을 발표해 왔다.
장년기에 들면서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와 동시를 함께 쓰기 시작했고, 시간이 흘러 어린이를 위한 동시집을 내놓았다. 그의 일반시들처럼 나와 가족, 이웃과 자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본 동심의 세계를 그렸다. 다정하고 쉽게 읽히면서도, 어른들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신선한 시각으로 쓴 동시들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
참사람이 되어라
이 책의 표제작인 ‘참새’는 네 줄짜리 짤막한 시다. 참사람과 참새를 대등하게 놓은 언어유희 솜씨와 참새를 사람처럼 생각하는 마음이 미소를 짓게 한다. 이 시를 동시집의 표제시로 선택한 이유는 이 동시들을 읽을 어린이들이 ‘참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다
참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새한테 말했다
참새가 되어야 한다고 (‘참새’ 전문)
토성에서 바라본
지구 사진을 보았다
지구가 볼펜 똥만 하다
볼펜 똥만 한 지구에 사는 나는
얼마나 작나
그런데 왜 자꾸
너와 싸우나 (‘볼펜똥 만한 지구에 사는 나는’ 전문)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에서 티끌보다 작은 지구와 그 지구에 존재하는 미미한 인간사를 비교하는 말을 늘 듣지만 곧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이 동시는 그런 인간의 존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참사람’이 될 것을 환기시켜 준다.
사물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
그의 동시에는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담긴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봄에 새로 돋아나는 새싹들을 밟지 않으려고 애쓰고, 달팽이가 밟혀 죽을까봐 옮겨주려다 생긴 실수에 두 배 세 배 미안해 한다. 길 가다 돌부리에 넘어지면 발이 신발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서로 미안해하면서 걱정해 준다.
웬일인지 사람들은 산을 오르며
그 싹을 힘차게 밟고 지나간다
나도 사람이다
나는 적어도
그런 사람은 되지 않겠다. (‘새싹’ 중에서)
사람들 발에 밟힐까 봐
풀숲으로 보내 주려고
손으로 살짝 들어 올리자
그만 등껍질만 떨어져 버렸다
아, 달팽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어떡하니 (‘아기달팽이’ 전문)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졌다.
내 신발이 말했다.
발아, 미안하다
내 발도 말했다.
신발아, 괜찮아?
너도 참 아프지? (‘신발’ 전문)
어머니의 사랑
이 동시집에는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시들이 많이 들어있다. 작가는 어머니와 깊이 주고받는 사랑 속에 자라났기 때문에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인생에서 든든한 반석이 되어주신 어머니를 깊이 신뢰하고 의지해 왔다.
아마 엄마가 날 낳기 전
나는 엄마의 사랑의 마음이었을 거야
마음의 중심에 있는
작은 씨앗이었을 거야 (‘씨앗’ 중에서)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 떠나지 못합니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 떠나지 못합니다.
달은 지구를 떠나고 싶어도 / 떠나지 못합니다
나는 엄마를 떠나고 싶어도 / 떠나지 못합니다 (‘사랑’ 전문)
그 외, 엄마 무릎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잠드는 <무릎잠>, 엄마가 보고파서 하교후 바람처럼 비처럼 달려가는 <엄마>, 엄마를 볼 수 없고 냄새 맡을 수 없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하는 <어떡하지?>도 독자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한다. 초승달과 별을 채소잎에 싸서 어머님께 먹여 드리는 장면도 기특하다.
또 어머니는 사랑만 주신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함께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그는 반듯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밥을 잡수실 때마다
개 먹을 밥을 위해
조금씩 밥을 남기십니다
나는 오늘 아침부터 한 숟가락씩
밥을 덜어 놓고 먹습니다
배가 더 부릅니다 (‘밥’ 전문)
너는 누가 니 머리카락을 갑자기 뽑으면 안 아프겠나
말은 못 하지만 이 소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노
앞으로는 이런 나무들도 니 몸 아끼듯이 해라
예, 알았심더
나는 난생 처음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
눈물이 글썽했다 (‘꾸중’ 중에서)
사물,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가 되기를
작가는 ‘시인의 말’에서 우리 아이들이 나무의 핀 꽃, 밤하늘의 별, 길가의 돌멩이와 지나가는 바람, 빵틀에 앉아 있는 붕어빵하고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그의 말처럼 이 동시집에는 자연과 관련된 아름다운 시들도 듬뿍 들어있다. ‘지붕’, ‘지구’, ‘북두칠성’ ‘밤하늘’ 등 하늘과 별 이야기나, 나무나 풀, 꽃 등 의 이야기들을 담은 시들이다.
꽃이 나를 바라봅니다
나도 꽃을 바라봅니다
꽃이 나를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나도 꽃을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아침부터 햇살이 눈부십니다
꽃은 아마
내가 꽃인 줄 아나 봅니다 (‘꽃과 나’ 전문)
아이에게 읽어주고 함께 읽는 동시들은 어른들에게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주기도 하고, 엉뚱한 상상으로 미소 짓게도 하며, 자연과 사물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는 따뜻한 마음을 접하고 위로받기도 한다.
이 책 역시 어른들이 읽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한편, 따뜻함과 순수함이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주어 힐링의 시간을 가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