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과정에서 다시금 되새기는 HR의 본질
블로그와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놓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공식적인 이유는 AI가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내 글에 진위성과 진정성을 입증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단지 글의 중요성을 잠시 잊고 살았을 뿐이었다.
17년동안 HR러로 일하면서 주로 면접관(Interviewer)이라는 지위로 사람을 마주해 왔다. 그런 나에게 테이블 반대편에 마주한 면접자(Interviewee)로의 기회를 갖는 것은 매번 참신하고 새로운 시각을 준다. 최근의 이직 과정에서 있었던 몇가지 이야기와 내 생각들을 풀어본다.
1. 유명 패션기업 A 이야기
"성공한 국내 1세대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수식어가 붙는 기업, 오랜만의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찾아갔던 회사는 외관부터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1차 인터뷰에서 주니어 HR러 한 분, 회계 시니어 한 분과 함께 현재 회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고, 내 경험에 기반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조언했다. 마치 면접이라기 보다는 함께 방향성을 논의하며 최선을 찾아가는 듯한, HR러로서 정말 유익하고 좋은 경험을 가졌다.
브랜드의 founder이자 CEO와의 2차 인터뷰는 꽤나 별로였다. 간단한 이력서 스크리닝도 없이 면접에 참석한다든지, 이력에 대한 흠결을 찾아내려는 네거티브형 면접은 종종 겪는 일이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정작 내가 무너졌던 순간은 이 한 문장 때문이었다.
(비로서 표정이 밝아지면서) 어, 그래도 지원사업은 많이 해보셨나 보네요?
이 기업에게, 이 대표님께 HR 리드(정확하게는 경영관리팀장)라는 포지션이란 무엇일까? 그저 이것저것 다 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단지 성가시지 않게 인사운영을 굴려줄 만한 사람을 필요로 했던 걸까? 이번 이직에서 외관상(?) 가장 훌륭한 스펙을 가졌던 회사는 이렇게 최악의 면접 경험 중 하나로 남았다.
2. 어느 작은 스타트업 B 이야기
사실은 면접에 참석하기까지 고민됐던 곳이다. 산업군도 다소 익숙하지 않았고, 회사의 재무적 상황이나 규모 등을 볼 때 아쉬운 점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 또한 경험이리라' 생각하며 면접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뒤,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거치면서 나의 앞선 선입견들은 180도 바뀌었다.
나의 이력은 이미 꼼꼼이 보고 오신 게 느껴졌고, 나는 나라는 사람을 어디까지 어떤 맥락으로 설명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조금 난해하고 오글거리는 것들만 충분히 설명드리면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나는 어떤 HR러인가?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업에 임하고 있는가?
이외에도 대표님은 회사가 현재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나에게 어떤 부분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공유하셨고, 나는 내 경험에 빗대어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를 언급하며 이 회사의 상황에 맞게 방향성을 함께 논의하고 맞춰 나갔다. 마치 면접이 아닌 미팅(interview)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현재 이 기업에 합류한지 한 달이 지났고, 결론은 대만족이다.
역시 회사는 겉보기로 판단하지 않고, 그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HR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다소 구시대적인 표현이 되어버렸지만, HR(Human Resource)이라는 단어는 직원을 기업 성공의 핵심 요소로 분류하겠다는 의지를 내포한다. 만약 이러한 HR에 대한 고민을 거친 기업이라면, 채용이라는 과정은 사실 Recruit(모집)보다는 Talant Acquisition(인재의 역량 획득)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가정이 올바르게 서면, 채용에 관한 모든 제반사항들을 다시금 살펴보게 된다.
앞서 면접을 봤던 A 기업은, 대표와 몇몇 핵심 임원의 개인 능력만으로 브랜드를 이끌어왔다는 자부심이 강한 곳이다. 면접 대기중인 짧은 시간동안 바깥에서 들려온 직원간의 언성들, 인재를 중시한다는 인터뷰와는 달리 넌지시 지원자의 약점을 공격하는 대표의 면접 태도, 여러 기업 후기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이 조직은 브랜드 내러티브, 재무적 성과 등은 훌륭할지언정, 안타깝게도 HR의 본질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기업으로 보여진다.
반면 내가 입사를 결정한 B 기업은, 단순 인사운영에 가까웠던 기존의 HR 방침을 버리고, 새로운 판을 짜길 바라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업무 환경도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재무적으로 탄탄하지도 않았지만, 지원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설령 채용이 성사되지 않았더라도 이 회사를 응원하는 팬으로 남았을 것이다.
반짝이는 눈을 가졌던 그 A 기업의 주니어 HR러가 만약 이 글을 본다면,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는 HR의 본질을 찾아가라고 답하고 싶다.
'우리 회사 면접관의 태도'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채용은 Recruit에 가까워야 하는가, 아니면 Talant Acquisition에 가까워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일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인재에 관한 우리 조직의 기본 철학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HR러여야 하는가'일 것이다.
본질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스펙보다 본질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