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삶으로부터 유리된 채 절뚝거리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고.

by 이효경


역시 도스토예프스키다.

한 인간의 광기. 자기 자신에게 갇혀 위선과 기만, 불안과 공포 더 나아가 존재의 허영심으로 가득찬 찌질하면서도 불쌍하기까지한 인간상의 관찰은 관찰자에서 1인칭인 '나'로 바꿔버린다.


감옥에 40년 동안 갇힌 한 인간의 불안으로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생각의 나열을 보며 나는 그가 원초적 불안의 실타래가 엉키다 못해 자신조차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극심한 신경 쇠약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간 지점을 넘어가니 한 인간이 자신의 밑바닥을 마주보며 소리치는 울분을 느꼈다. '그'가 아닌 '내 모습' 같은 마주함.누구에게라도 들키고 싶지 않은 진실, 내 허약하고 그늘진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사랑의 결핍에 의해 추락되어애써 발버둥치는 인간의 필연적인 고독감. 허영심 가득한 분노심. 삶을 놓쳐버린 이야기들. 우리 모두 삶으로부터 유리된 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너나할 것 없이 다 절뚝거리며 사는 모습. ‘지하’는 우리 인간이 지닌 실존의 심연을 말하는 듯 하다.


밑바닥.

썩은 물이 도는 인간의 내면적 지하.

그는 자신의 밑바닥을, 우리의 모습을 고백하고 있다.




나는 아픈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란 인간은 통 매력이 없다. P.9
즉, 나는 하다못해 나 자신 앞에서만큼은 완전히 솔직해질 수 있을까.
그 어떤 진실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p.65
그 당시 나는 겨우 스물네 살이었다. 나의 삶은 그때도 음울하고 무질서하고 야생에 가까울 만큼 고독했다. p.71
이는 우리 모두 삶으로부터 유리된 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너나할 것 없이 다 절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p.198




나는 과연 '그'처럼 내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 내 어떤 진실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난 꽤 나에게 솔직하다고 생각했는데 외면하고 있는 것들, 내 스스로에게 조차 자존심을 부리고 있는 솔직하지 못함을 보았다.


나를 납득시키기 위해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비겁함으로 나를 속이며 위로했던 지난 마음들이 떠올랐다. 외로움이 들키기 싫어 독립적인 척했으며, 나도 어울리고 싶지만 소외받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난 달라-라며 나를 특별함으로 포장했던 것들, 기분이 상했지만 외면당할까 두려워 웃음으로 나를 억눌렀던 것들. 내 속의 울분을 잠재워 버리고자 도망쳐야 했던 현실 속 도피처들. 마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신이라도 믿어보자하며 신앙을 나의 울타리로 삼았던 날들.


이렇듯 나는 인간의 근본의 낯을 면밀하고도 불편하게 토해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통찰에서 깨진 거울로 나를 보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때론 뜨거운 마음이 올라와 화가 나기도 했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의 기로에서 나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그리고 정직하게 나를 마주하는 것에 마음의 기울기를 정상의 궤도로 올려 놓기로 했다.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정직하게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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