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를 읽고.
그러면 나보고 사는 것을 그만두란 말이세요?
내가 여태까지 살아보았던가요?
나는 살고 싶어요, 생의 전부를 사랑해요.
당신은 생을 피해갔어요.
당신은 한번도 위험을 무릅쓴 일이 없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잃기만 했어요.
생의 유일성.
이것은 곧 고독을 연상시켰다.
생에 대한 집념이 강했던 니나. 그런 그녀를 자신의 생보다 사랑했던 슈타인. 그 두 사람의 사랑을 글자로 접하는 니나의 언니. 사실 니나의 언니는 독자의 시선이다. 니나와 슈타인의 연결을 이어주는 사람. 그리고 끝내 평범했던 자신의 생이 흔들리는 사람 = 독자.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삶이 괴로웠다. 삶의 고독과 외로움, 철저하게 혼자인 나의 세계를 직면하며 그 가운데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낯설지는 않았다. 내가 괴로웠던 이유는 심연 깊숙히 자주 느꼈던 생의 고독 때문이었다.
니나의 그 괴로움, 도무지 그 고독과 외로움을 알아주지 않는, 알 수 없는, 혼자만 감당할 수 있는 독단의 그것이 이해가 되어 괴로웠고,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죽고 싶은 강렬한 마음. 허나 이것은 생에 대한 지독한 집착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자신을 거부하고 싶은 회피의 힘 그리고 고통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외로움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 외로움이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라는 자각 때문이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 누구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생의 외로움.
내가 껴안고 가야 하는 생의 과업.
그 어떤 누구도 동정해주지 않는 혼자만의 길을 가야 하는 것.
루이제 린저의 생에 대한 고민과 통찰이 집착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그녀처럼 더 고민해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결이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쓸쓸하고 음울하다라고 생각하기엔 이 생각은 너무 얕다.결국 자신의 생을 살고자 하는 인간들의 분투 속에 단 한면만을 들여다 본 것이다.
확실한 것은 생에 대한 니나와 슈타인의 생각과 태도 속에서 그들의 생의 깊이와 묵도가 처절하다는 것.
그리고 한치앞도 모르는 인생에서 그들이 맞닥들이는 순간들은 곧 그들 자신을 드러내며 그 순간 자신들이 붙잡고 있는 철학과 생에 대한 태도와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며 나 또한 어떠한 태도와 가치를 마음으로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산다.
그리고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이 좋은 이유이다.
내 삶을 향한 태도와 가치.
늘 책은 나에게 묻는다.
나의 생에 손을 뻗고 안부를 묻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십니까' 라고.